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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에게 가해진 사회적 폭력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9.11.25 08:20 수정 2019.11.25 08:13

<하재근의 이슈분석> 우리 사회가 가한 집단폭력에 대해 반성해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우리 사회가 가한 집단폭력에 대해 반성해야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구하라가 24일 오후 청담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가사 도우미가 발견해 신고했다. 사망 원인 등 경위에 대해선 경찰이 수사 중이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예단해선 안 된다.

사망원인과 별개로, 구하라가 최근 힘들어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녀의 측근은 인터뷰에서 “힘든 일이 계속 겹쳐서 많이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올 5월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말도 나왔다.

구하라는 그 사건 전에 "힘들어도 안 힘든 척, 아파도 안 아픈 척", "한마디 말로 사람을 살릴수도 죽일수도 있다", "행복한 척 괜찮은 척 이제 그만하고 싶다. 걱정도 끼치기 싫다“는 글을 SNS에 올렸었다. 사건 하루 전날엔 "그렇게 계속 참고 살다 보니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엉망진창 망가지고 있다"라고 썼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엔 “이제부터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건강한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후 6월에 일본에서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솔로 앨범도 냈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차에 이번 비보가 전해져 충격이다.

사망에 이른 경위에 대해선 수사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구하라에게 생전에 가해진 집단적 가해 행위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작년 8월 전 남자친구와의 분쟁이 시작된 이후 구하라에게 엄청난 악플 세례가 퍼부어졌다. 남자친구의 상처 가득한 얼굴 사진이 공개되고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했다는 남자친구의 주장도 소개됐기 때문이다. 한쪽 말만 듣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대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구하라를 공격했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술에 취해 구하라를 먼저 찼다는 지인 증언이 나오고, 둘이 이별 과정이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별폭력의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면 바로 판단 유보 상태로 돌아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대중은 여전히 구하라를 일방적으로 공격했다. 남자친구 측의 주장만 맹신했다. 구하라 측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도 빌미가 됐다.

그러다 영상 협박 이야기가 나왔다. 남자친구가 영상을 가지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구하라 측의 소극적인 대응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남자친구가 “나는 지금 그럼 협박으로... (영상을) 올려버리(?) 협박으로 들어가도 돼.”라고 말하는 녹취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됐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구하라를 공격했다.

그리고 검찰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남자친구가 먼저 구하라에게 심한 욕설을 하며 폭행해서 시비가 붙었고, 구하라의 몸에 타박상을 입혔으며, 영상 유포 협박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구하라도 남자친구 얼굴에 상처를 내긴 했지만 먼저 폭행당했고, 영상 협박까지 받은 점을 참작해 기소유예로 처분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구하라를 공격했다. 영상협박 등 이별폭력을 당했을 가능성이 검찰 수사로 확인이 됐는데도 어떻게 그 피해자를 공격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재판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잘못을 확정할 순 없지만 최소한 그전에 예단해서 비난했던 것을 사과하고, 판단을 유보하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 사건으로 구하라는 남자 얼굴에 상처낸 여자라는 낙인이 찍혀 집중적인 공격과 조롱을 당했다. 대중은 영상협박이나 이별폭력의 문제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 연예인만 공격했다. 사생활 폭로 공격을 당하면 연예인은 원래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 그런 특수성도 무시했다. 그나마 중립적이라는 사람들은 쌍방폭행론을 주장하며 ‘둘 다 똑같다’라고 했다. 이렇게 싸늘한 시선 앞에서 영상협박 피해자는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을까?

이런 상황에서 구하라는 계속 재판 절차를 이행해야 했고 그때마다 대중의 입방아에 올라야 했다. 현재 1심이 끝나고 항소심이 남아있다. 대중의 응원도 없는 상태에서 계속 이어지는 사생활 법정싸움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구하라의 사망원인은 예단할 수 없다. 그것과 별개로 생전에 우리 사회가 구하라에게 가한 집단폭력에 대해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태 초기에 남자친구 측의 주장을 자세히 뜯어보면 이치에 닫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도 무조건 구하라만 공격했다. 영상협박 같은 사생활 까발리기가 얼마나 무서운 가해행위인지에 대해서도 고려하지 않았다. 최근에 구혜선이 안재현에게 가한 진흙탕 폭로 공격 때도 안재현을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한쪽 말만 듣고 너무 쉽게 누군가를 마녀로 찍어 집단공격하는 일이 반복된다. 구하라는 생전에 '한 마디의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여론공격에 그녀가 당했던 고통이 짐작된다. 이런 사회적 폭력이 다시 있어선 안 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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