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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 어른들의 속을 풀어주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9.11.04 08:20 수정 2019.11.04 08:13

<하재근의 이슈분석> 유튜브와 캐릭터 활용이 스타보다 더 파괴력 있어

<하재근의 이슈분석> 유튜브와 캐릭터 활용이 스타보다 더 파괴력 있어

ⓒEBS 제공 ⓒEBS 제공

EBS 연습생 캐릭터인 펭수가 화제다. 우주대스타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한류의 나라인 한국으로 헤엄쳐 왔다는 거대 펭귄 인형 캐릭터다. 원래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었는데 엉뚱하게 2030세대 사이에서 터졌다. 어른이들의 뽀로로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키덜트, 어른이라는 말이 보편화됐을 정도로 요즘 성인이 된 사람들은 유아 취향의 일부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어른들 대상의 캐릭터 피규어 시장이 커지는 이유다. 펭수 캐릭터도 그런 어른이 감성에 부합했다.

귀여운 인형이긴 한데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더 각광받는 것은 B급 감성 때문이다. 보통 어린이들이 선호하는 인형은 글자 그대로 귀여운 모습의 인형이다. 그런데 펭수는 눈동자가 작고 흰자위가 많이 보이는 모습이어서 전형적인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뭔가 조악하면서 순수하지만은 않은 느낌인데 이것이 성인 누리꾼의 B급 엽기 감성과 맞아떨어졌다.

요즘 누리꾼들은 유희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려 한다. 그래서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던 과거 영화의 캐릭터들이 뒤늦게 인터넷에서 뜨는 사건이 종종 벌어진다. 펭수는 그런 누리꾼들에게 발견되기 좋은 캐릭터였다.

무엇보다도 펭수의 언행이 이제 막 어른이 된 2030 세대의 속을 풀어주는 면이 있었다. 펭수가 처음 뜨게 된 계기는 ‘EBS 아육대’였다. 항상 착하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던 EBS 캐릭터들이 여기에선 선후배를 따지며 고참 행세를 했다. 펭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항의하고 다른 캐릭터에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속을 후련하게 한다.

특히 펭수는 고위층의 권위에 주눅 들지 않는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방송사 고위층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인데 펭수는 툭하면 김명중 EBS 사장을 불렀다. MBC에 가선 ‘최승호 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라고 했다. 이런 모습이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해 위계질서와 맞닥뜨린 2030 세대의 속을 풀어주는 것이다. PD를 로드 매니저로 부릴 정도로 ‘하극상’을 일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인기 요인이 됐다.

어린이보단 어른들이 공감할 만한 설정을 내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태프들과 놀이공원에 갔을 때는 방송사가 부르면 무조건 와야 하는 스태프들의 처지가 그려지기도 했는데 이런 갑을 관계는 어린이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니 어른들이 더 열광하는 것이다.

우주대스타가 꿈이라며 ‘못하는 것을 못한다’라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요즘 젊은 세대와 통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고압적인 사회 기득권에 짓눌린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과거와는 다른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기도 했다. 그것이 펭수의 거침없이 당당한 태도와 공명한 것이다.

펭수의 목소리와 순간적으로 말을 받아치는 재치가 상당히 우스꽝스러우면서 감각적이어서 대중이 원하는 재미와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당분간 펭수는 EBS를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방송국에 효자 노릇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와 귀여운 캐릭터 활용이 웬만한 스타보다 더 파괴력이 큰 시대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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