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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국 면세점, 거위의 배는 누가 갈랐나

최승근 기자
입력 2019.11.04 07:00 수정 2019.11.04 05:59

최근 3년간 시내면세점 두 배 늘었지만, 12곳은 문 닫아

탈출구 없는 사드 문제와 공급 위주 정책의 실패

최근 3년간 시내면세점 두 배 늘었지만, 12곳은 문 닫아
탈출구 없는 사드 문제와 공급 위주 정책의 실패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승자의 저주가 현실이 됐다. 치열한 경쟁 끝에 면세사업 특허권을 따낼 때만 해도 부러움이 대상이 됐던 기업들은 패배자로 전락해 시장 철수를 외치기 급급한 상황이다.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끌었던 면세산업은 이제 ‘미운 오리 새끼’라는 오명까지 얻게 됐다.

지난 9월 말 면세사업에서 철수한 한화에 이어 두산도 4년 만에 면세점 철수를 선언했다. 계속되는 적자에 대기업도 버티지 못하는 상황까지 몰리면서 중소‧중견 면세점들의 불안감은 더욱 높아졌다.

최근 3년 사이 서울 시내면세점 수는 두 배 넘게 늘었다. 면세점 수는 크게 늘었지만 주 고객이었던 중국 단체 관광객 수는 급감했다. 유커의 자리를 따이궁들이 대체했지만 이로 인해 빅3로 불리는 대형 면세점들에만 손님이 몰리는 구조로 바뀌었다.

서울 시내면세점의 경우 빅3의 시장점유율이 80%를 넘는다. 단 시간 내 많은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따이궁들은 큰 면세점이 밀집해있는 소공동과 장충동 일대를 선호한다. 여의도나 동대문에 터를 잡았던 한화, 두산 면세점이 외면을 받게 된 이유다.

중국 정부와의 외교 문제로 주 고객을 잃은 상황에서 정부의 면세점 확대 정책이 계속되면서 면세업계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빅3 면세점은 매년 최대 매출을 올리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기에 끼지 못한 기업들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가 됐다. 다음 타깃은 누가될지 업계에서는 알음알음 살생부까지 돈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최근 3년 여간 12곳의 면세점이 문을 닫았다.

면세점 특허가 늘어도 후발주자들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인 만큼 매장 수가 많은 면세점일수록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 입찰전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정부가 갈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입국장 면세점도 뒷말이 많다. 제대로 된 수요예측 조사 없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속전속결로 도입하다 보니 정부의 핑크빛 전망에 기대 입점한 업체들만 죽어난다는 비명 섞인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당장 다음달에도 서울 3곳을 비롯해 전국 6곳 시내면세점 특허에 대한 입찰이 진행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는 물론 정부에서도 유찰 가능성부터 염두에 두고 있는 듯 하다. 앞서 수차례 실패 사례를 목격한 만큼 전망만 믿고 입찰에 뛰어들 업체는 없다는 의미다.

한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고 한국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면세사업의 성장 잠재력도 높은 편이다. 단순히 면세점 수만 늘려서는 시장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최승근 기자ⓒ데일리안 최승근 기자ⓒ데일리안
정부는 공급을 늘려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부추기기 보다는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유커의 귀환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국에만 의존하는 관성도 버려야 한다. 익숙해짐의 유혹을 이겨내기는 어렵지만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임을 명심해야 한다.

최승근 기자 (csk34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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