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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헤이그(만국평화회의), 2019년 제네바(WTO)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9.07.29 08:30 수정 2019.07.29 08:26

<김우석의 이인삼각> 문재인정부와 고종, 국민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형태

현실을 직시해야…지금과 같은 수준이면, 우리의 실패는 시간문제일 뿐

<김우석의 이인삼각> 문재인정부와 고종, 국민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형태
현실을 직시해야…지금과 같은 수준이면, 우리의 실패는 시간문제일 뿐


ⓒ데일리안 ⓒ데일리안

역사는 반복된다. 헤겔에 의하면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했다. 희극과 비극은 느낌의 차이일 뿐이지, 결국 본질은 하나다.

우리역사 또한 반복되고 있다. 100여년전과 같이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항일운동’이 뜨겁다. 그런데, 지금 반복되는 항일운동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코미디’(희극)라는 사람이 많다. ‘웃프다(웃긴 동시에 슬프다)’는 사람도 있다. 평가는 보는 입장과 거리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본질은 같다. 문재인정부와 고종의 조정이 국민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것이 같다. 뒷감당 못할 일을 벌이며 결국 책임을 지지도 못하는 것도 같다. ‘우물안개구리’로 국제정세도 모르고 국민에게 ‘희망고문’을 가하는 것도 같다. 필자는 역사에서 구한말을 공부하며 ‘어떻게 저리 무능하고 무책임할 수 있을까’싶었는데, 현 정부를 보며 ‘그럴 법 하겠다’싶다.

종로통에 전봉준 동상을 세우고 방송사가 관련 드라마를 만들며 ‘동학혁명’을 추켜세울 때부터 알아봤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태평천국운동’과 ‘동학운동’은 많은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총알이 피해간다’는 부적에서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태평천국(太平天國)>은 청(淸)나라 말기 홍수전(洪秀全)과 농민반란군이 세워 14년간 존속한 국가(1851∼1864)였다. <동학운동>은 조선 고종 31년(1894)에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봉건·반외세 운동이다. 둘 다 한 때는 ‘난(亂)’이라고 칭했다. ‘민란’이었다는 뜻이다. 이후에 ‘운동’이라는 가치중립적인 이름으로 승격됐다. 그런데 정치적 이유로 호칭의 운명이 갈렸다. ‘태평천국’은 단명했지만 국가로서 구조를 갖추었다. 하지만 ‘운동’이라 칭한다. ‘동학운동’은 국가구조를 갖출 능력과 시간이 없었음에도 ‘혁명’이라고 칭한다. ‘촛불혁명’에서 정통성을 찾는 문재인정부에서 보인 ‘호칭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동학운동’을 ‘혁명’이라 칭하기에 결과가 너무 초라했다. 실패는 분명했고, 피해가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동학전투에서 우리 농민군 수만명의 목숨이 일본군 병사 한명의 목숨과 같은 무게였다’는 사실을 이번에 전국민이 알게 됐다. 자존심이 상해 애써 외면했던 것을 무능한 현 정부가 다시 상기시킨 것이다.

현 정부의 헛발질은 이뿐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정부에 ‘외교적으로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현 정부는 엉뚱하게 일본과의 담판을 멀리하고 국제여론전을 펴고 있다. 미국에 특사를 보내고(이는 미국의 중재라는 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일본을 성토한 것이다. 이 또한 고종의 ‘헤이그특사 파견’과 유사하다. 고종은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고 러시아 황제에게 편지를 써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중립국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러시아 황제의 제안으로 국제평화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WTO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국제기구다. 스위스는 영세중립국이다. ‘평행이론’이 이렇게 구현되는 사례도 별로 없을 것이다.

최근 정부와 언론은 연일 ‘국제여론전’의 성과를 보도한다. 외국이 ‘공감했다’, ‘묵시적 지원을 보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과 WTO에 파견된 공무원들은 자의적으로 성과를 자평한다. 일부언론은 일본이 ‘궁지에 몰린’ 듯 분위기를 전한다. ‘외신도 동조하는 기사를 실었다’는 보도도 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나라도 속시원하게 나선다고 하지 않는다. 나아가 점잖게 ‘한일당국 양자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헤이그도 마찬가지였다. 정식으로 초청받지는 못했지만 우리대표단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언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다. 일본과 일본의 동맹이었던 영국의 방해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사로 파견됐던 이준(1859∼1907)은 분을 이기지 못해 자결했고, 이상설(1870~1917)과 이위종(1887~미상)은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와 군사항쟁으로 돌아섰다. 고종은 이를 계기로 강제로 하야했고, 일본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완전히 장악하는 수순을 가속화했다. 이 모두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대한제국 정부의 무지몽매(無知蒙昧) 때문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관계엔 ‘힘의 논리’만이 작용한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정글이다. 누가 누구를 도와줄 수도, 이를 기대할 수도 없다. 6·25전쟁과 그 후 미국이 우리나라를 도와줬던 것도 미소냉전의 우위를 위해서였을 뿐이다.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를 액면그대로 믿고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던 ‘3·1 운동’때 미국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명분’은 ‘힘’을 과시하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정부는 ‘명분’만 내세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병탄을 경험했음에도 우리에겐 발전이 없다. 이런 조직에게 남는 것은 도태(淘汰)뿐이다.

이제라도 제발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잠시 상황이 좋아질 수는 있다. 일본이 눈치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정부가 지금과 같은 수준이면, 우리의 실패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구한말 일본이 ‘삼국간섭’으로 우리 땅에서 잠시 물러났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낭비했다. 그때 일본은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치밀하게 준비했다. 결국 우리정부는 일본이 (그들이 주장하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한제국을 접수하도록 방치한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대한제국 정부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글/김우석 (현)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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