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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재앙의 그림자-4] “투자메리트 떨어져간다”...짐 싸는 외국인

백서원 기자
입력 2019.06.20 06:00 수정 2019.06.20 06:05

지난달에만 증시에서 2조9170억 팔아…원화가치 불확실성에 수급 비우호적

경상수지 적자·기업 이익 모멘텀 둔화…외국계 금융사 "언제든 철수" 모드

지난달에만 증시에서 2조9170억 팔아…원화가치 불확실성에 수급 비우호적
경상수지 적자·기업 이익 모멘텀 둔화…외국계 금융사 "언제든 철수" 모드


미·중 무역협상 불확실성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코스피시장은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미·중 무역협상 불확실성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코스피시장은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미·중 무역협상 불확실성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가운데 한국 자본시장의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은 지난 한달간 한국 주식을 내다 팔며 코스피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의 상승 속도 둔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기대감으로 수급은 다소 진정된 모습이다. 그러나 수출 둔화 속 한국 경제 위기론이 부각됐고 이에 따른 환율 재급등 여지가 남아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경기 불안 가중은 한국 정부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내수 부진을 더욱 아래로 끌어내렸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0.4%로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국민총소득(GNI)도 0.3% 감소했다. 지난 4월에는 경상수지가 7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앞서 골드만삭스는 올해 외국인 배당금 지급 규모가 90억달러(약 10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 경상수지 적자를 예고했다.

변동성 확대 국면, 한국 경제지표 어디로…길 잃은 투자자금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는 전장 대비 26.07포인트(1.24%) 오른 2124.78에 거래를 마쳤다. 미·중 무역갈등 완화 기대감과 글로벌 중앙은행의 경기부양책 가능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로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우리는 다음 주 일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장시간 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완화적 통화정책 시행, 유럽중앙은행(ECB)의 경기부양 정책 도입 가능성 시사도 주가를 끌어올렸다.

지난달 급격하게 내려앉은 코스피는 이달 들어 2100선을 회복했다. 지난 5월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며 증시 하락을 주도했다. 코스피 2000선이 무너진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의 최대 규모였다. 6월 들어선 소폭 순매수로 돌아섰다.

김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의 상승 속도가 둔화되며 매도보다는 관망하는 모습”이라며 “글로벌 증시 전반의 거래감소,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고려한다면 단기간에 외국인의 뚜렷한 움직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외국인의 본격적인 컴백은 환율이 고점을 확인하는 이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앞서 미·중 무역갈등이 해소될 것이란 기대감이 불발됐고 중간재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 입장에선 좋지 않은 여건 속에 화웨이 제재 여파가 이어졌다”면서 “여기에 또 트럼프 대통령이 화해 제스처를 취한 트위터 하나에 주가가 춤추고 있는 만큼, 예측이란 게 무의미해진 상황이라서 환율의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진단했다. 결국 원화의 방향성에 외국인 수급이 결정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환율의 고점에 대한 확신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또 원화 방향성에 대한 불확실성과 함께 경상수지 적자, 기업 이익 모멘텀 둔화도 외국인 자금 유입을 막는 요인이 됐다.

이예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외국인의 유의미한 자금 유입이 지연되는 이유는 전반적인 신흥국향 자금 흐름 개선이 미흡하고 신흥국 내에서도 기업 이익 모멘텀 둔화, 경상수지 적자 전환 등으로 한국 펀더멘털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금 유입이 악화될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아직은 대기 모드란 분석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적별 자금 흐름을 보면 지난 달 외국인은 2조9170억원을 순매도했는데 이 중 미국계 자금과 조세회피처 자금 이탈 규모가 각각 1조원,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연구원은 “이 자금의 귀환을 위해선 달러 캐리 환경 개선과 한국 펀더멘털 저점 도달에 대한 확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2분기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정부 경제전망이 어긋난 가운데 전통 주력 제조업은 여전히 맥을 못추고 있다. 지난달 수출액은 전년 대비 9.4% 줄어 최근 6개월째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30.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선 코스피 기업 실적 전망치 하향조정이 진행 중이다. 자연스럽게 코스피 자본이익률(ROE)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2017년말 11.7%였던 코스피 12개월 선행 ROE는 현재 7.8%로 하락했고 전저점이었던 2016년 2월 8.5%보다 더 낮아졌다. ROE의 하락은 기업들의 이익창출능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만 외국인의 증시 자금 이탈은 한국 증시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체적인 위험자산 축소 차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 연구위원은 “국내 상장 기업들의 이익률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글로벌 주식시장과 비교해봤을 때 특히 이머징마켓 쪽에서 한국시장의 중요성은 여전히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황 연구위원은 “미·중 무역갈등 격화로 글로별 경기 위축 우려가 증가하게 되면, 외국인들은 한국 시장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위험자산에 대한 비중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정책 당국의 금리 대응, 경제침체 증폭 가능성 외국인에 시사”

한국 경제 하방 위험이 커지면서 시장의 눈은 또다른 변수를 향하고 있다. FOMC의 기준금리 발표다. 미국의 인하 의지가 뚜렷해지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의 인하 가능성도 커진다.

과거 한미 간의 금리 역전 현상이 두 차례 있었고 두 번째 시기는 2005년 8월부터 2007년 8월 사이에 2년 동안 역전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상회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금의 대규모 유출은 없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경제 전망 책 ‘3시 코리아 시리즈’의 저자인 정동희 실천연대 대표는 “2008년부터는 한국 GDP 성장률이 세계 평균 GDP 성장률을 하회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어서 현재는 한국 경제의 상대적 취약성이 더 나타나는 시기”라며 “앞으로의 금리정책 실기는 이전과 달리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출로 이어질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정동희 대표는 “외국인 투자자금 중 지수추종형이 아니라 시장 모멘텀을 중시하는 소위 액티브스탁피킹(Active Stock Picking, 적극적·전략적인 자산선택을 우선하는 투자) 자금의 경우, 최근 한국 금리정책에 대한 우려를 고려한다고 판단된다”며 “즉 한미 금리 역전 갭이 축소되는 정책 모멘텀이 필요한데, 오히려 한국 정부정책 당국은 추가적인 금리인상에 상당히 소극적인 상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금리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는 결국 한미 금리 역전 해소에 대한 향후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고, 글로벌 경제추세를 하회하는 한국적인 경제침체 요인이 향후 증폭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외국인에게 주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따라 그는 헤지펀드 자금이 자금원인 일부 투자은행의 경우, 한국시장에 대해 지속적인 비중 축소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했다. 정 대표는 “상대적으로 시장 모멘텀이 양호한 다른 국가에 비중 확대와 같이 맞물리게 될 전망”이라며 “이런 점에서 한국 비중 축소와 함께 일본·중국·인도·대만·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점진적인 비중 확대가 예상된다”고 했다.

외국계 금융사의 철수설에 따른 시장 불안감도 여전하다. 고배당으로 인한 외부 유출과 외화 변동성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은 100% 외국인 주주인데 적자 상태에서도 배당을 해서 논란이 됐다"면서 "정당하고 합리적인 배당인지, 한국을 떠나려는 수순인지 걱정이 된다. 국내에서 영업이익을 벌어들이면서도 추가 투자나 사회적 책임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SC제일은행과 씨티은행은 올해 1조5000억원을 배당했다. 각각 227%, 300%의 배당성향을 보였다.

당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이들의 배당이 과도하다는 데 동의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배당에 관해선 양면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배당은 기업의 자율적인 운영 사안이기 때문에 각 은행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다. 최 위원장은 “배당을 제한할 마땅한 근거가 없고 자유롭게 돈을 가져가야 자유롭게 돈을 가져온다는 점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계 금융사들이 국내시장에서 발을 빼기 앞서, 당기순익보다 훨씬 높은 고배당을 지급한다는 의혹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들도 지난해 벌어들인 돈을 대부분 해외본사로 송금해 논란에 일조했다.

최근 업계에선 외국계 모 자산운용사가 국내 시장 철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골드만삭스자산운용과 2017년 JP모간자산운용코리아 등이 수탁액 감소로 국내 시장 철수를 결정한 사례가 있다. 이들 외국계는 그동안 번 돈의 대부분은 본사로 송금하면서 한국 투자에 인색하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다.

자본시장 관계자는 “금융투자업계와 주요 상장사 대부분이 외국인의 영향력 속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라며 “외국인 투자자금의 장기화를 이끌면서 한국 자본시장 단물 빼먹기나 먹튀가 아닌, 한국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성장과실 공유 방안이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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