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귀를 안 열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정부 비판하면 무조건 극우인가…누구는 노숙투쟁까지 하더니 <@IMG1> 자유한국당이 지난 20일 광화문에서 대중집회를 가졌다. 황교안 대표 체제 들어서는 처음 시도된 장외 투쟁이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문재인 대통령이 저 먼 우즈베키스탄에서 전자결재로 강행한 데 대한 한국당의 반발·저항이었다. 정말이지 예사문제가 아니다. 언론들이 분류하기로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이 진보성향이다. 2명은 중도, 그리고 보수로 분류되는 재판관은 단지 1명에 불과하다. 진보 재판관 가운데 3명은 문 대통령이 지명했고, 2명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나머지 1명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명했다. 귀를 안 열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재판관 중 5명은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민변 등 진보성향 단체 출신이다. 전체 법조인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단체들은 물론 아니다. 재직 판사들, 그리고 변호사들 가운데 상대적 소수가 참여하는 연구단체이거나 사회운동단체다. 이들이 헌법재판관의 과반수를 차지하게 됐다. 이런 저런 연고로 재판관들 사이에 이념적 동조화현상이 뚜렷해지면 헌재의 특성상 입법권‧사법권까지 ‘대통령의 손바닥 위에’ 바쳐질지 모른다. 아니라도 사법부의 이념적 지형은 진작 바뀌었다. 대법관 14명 가운데 9명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았다. 나머지 5명 가운데 4명이 또 문 대통령 임기 안에 자리를 뜨고 새 대법관들이 그 자리에 앉는다. 당사자들은 아니라거나 불쾌하다 할지도 모르지만 상식의 눈으로 보자면 문 대통령 사람들이 대법원을 거의 완전하게 장악했다고 할 수 있다. 국가권력구조의 3축 중 문 대통령 측에 의해 점령당하지 않은 곳은 입법부뿐이다. 그렇다고 국회가 자유우파의 보루로 남아 있다는 것이 아니다. 겨우 ‘덜 점령된’ 상태로 버티고 있는 정도라고 하겠다. 자유우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곳도 거의 대부분이 침수된 상태다. 다만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통나무를 끌어안고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신세나 다를 바 없다. 이 같은 상황인식에서 보자면 20일의 자유한국당 광화문 집회는 자유민주주의 정체(政體)의 존속, 자유우파 정치세력의 존립에 대한 위기감 표출이었다. 국회 내의 소수파로서 끈질기게 버티어내는 한편 내년 총선의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자각이 스스로를 광장으로 내몬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정치민주화’ 이후 야당이 지금 같은 위기국면에 떨어졌던 적은 없었다. 그간에는, 고도의 전문성·자존심·자부심·책임감으로 무장한 사법부가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믿음이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신뢰가 많이 퇴색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찰과 법원은 수사와 재판을 통해 ‘적폐 인간’을 양산했다. 그 대부분은 지난 정권에서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지금도 현정권의 구정권 단죄 및 징벌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자유우파 국민들의 눈에는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도 정권의 의지를 처벌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국가권력의 핵심부를 특정 이념으로 채워 넣는다는 의심이 생기면 저항은 당연한 반응이자 대응이다. 정권 측의 독선·독단·독주를 멈추게 할 다른 수단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이끄는 청와대와 정부는 정치적 반대자들의 비판이나 호소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빛이다. 정책에서도 그렇고 인사에서도 그렇다. ‘소통’을 유난히 강조했지만 ‘귀는 닫고 입만 여는’ 소통이다. 정부 비판하면 무조건 극우인가 그러니 야당이나 그 지지세력으로서는 국민을 향해서나 호소할 수 있을 뿐 달리 구사할 수단을 못 가졌다. 그 탓이겠지만 자유우파 시민들의 토요집회가 탄핵정국 이후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지도부와 당원들까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태가 이에 이르렀으면 정부 여당은 놀라고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옳을 텐데 오히려 비난하기에 열을 올린다. “한국당의 광화문 장외투쟁은 ‘색깔론’을 앞세워 사람을 동원한 구태정치이자, 국민을 분열시키는 무책임한 선동이 난무하는 ‘난장판’이었다. 한국당은 즉시 국회에 복귀하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의 말이다. “자유한국당이 민생을 내팽개치고 장외투쟁이라는 이름하에 구태정치를 하고 있다. 태극기부대의 적개심에 의존한 채 극우화되는 것이 공당으로서 옳은 것인지, 그런 전략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라.” 이는 민주당 부대변인의 논평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권력을 비판하고 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야당의 권리이자 의무이지만, 지지층 결집을 위한 망언·시대착오적 색깔론·가짜뉴스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혹세무민은 결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부디 자유한국당이 헌법을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제대로 된 야당으로서 국정운영의 한 축이 되어주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입장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될 텐데, 여당 인사들에게는 망각증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야당의 장외투쟁을 이런 식으로 매도할 수 있는지 기이할 정도다. 우선 ‘극우’라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 광장과 거리에 나서서 시위를 하면 그게 ‘극우화’라는 것인가. 검은 셔츠를 입고 파시스트정당화를 외치며 광화문에 몰려든 사람들이라는 뜻인가. 갈색셔츠를 입고 세종로를 행진하며 나치정당화를 외치는 군중이라는 뜻인가.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한다고 ‘망언’이니 ‘혹세무민’이니 혹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이니 하는 것도 어이없다. 상대방의 주장을 망언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은 민주적 정당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실토나 마찬가지다. ‘색깔론’ 시비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라는 말에 대해 격렬한 반감을 드러내며 ‘친일잔재’로 매도하던데, 그 말을 흉내 내는 것인가. 누구는 노숙투쟁까지 하더니 ‘빨갱이’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주장이 있는 것 같던데, 어쨌든 ‘붉은 색’은 공산주의자들 스스로 내건 상징색이다. 그 표현이 ‘청산해야 할 친일잔재’라면 공산주의자에 비유되는 것을 대단한 모욕으로 여긴다는 뜻이겠다. 그러면 그 점을 분명히 하면 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더러 ‘빨갱이’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다만 사회주의적 이념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유적으로 그런 표현을 쓰기는 한다. 혹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사회주의자일 뿐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므로 빨갱이라고 부르지 마라”고 말하면 될 일이다. 정당의 광장‧거리 시위가 바람직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 민주적 정당정치가 성숙된 나라라면 야당이 거리에 나가서 국민에게 호소해야 할 까닭이 없다. 정부가 정당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것을 국정에 반영하려 애쓸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예 야당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여당이 일방적으로 정부편만 드는 상황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청문회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고, 그 때문에 야당과 여론이 임명을 반대했음에도 들은 척도 않는 헌재 재판관 임명권자에 대해 야당이 취할 수 있는 항의의 방법으로 장외투쟁 말고 달리 뭐가 있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은 한국당의 광화문 집회를 비난하고 비판할 도덕적 정치적 자격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 2013년 8월 2일,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하며 서울광장에 천막당사를 차렸다. 그리고 그달 27일부터는 당 대표가 천막당사 옆에 텐트를 치고, 이른바 ‘노숙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 대표는 10월 10일에, 당은 11월 10일에 각각 텐트와 천막을 걷었다. 진보좌파 사회단체들이 주도한 촛불집회는 그 이전부터 매주말 청계천 광장에서 열렸다. 그 집회의 연장선상에서 현직대통령 탄핵과 투옥이라는 정변이 발생했고, 끝내 정권이 바뀌었다. 문 대통령과 정권의 주요 구성원들, 그리고 지지자들은 새정부를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촛불정부’ 또는 ‘혁명정부’로 명명했다.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치닫던 2017년 12월, 문재인 당시 민주당 전 대표는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뿐”이라고 했었다. 그처럼 야당이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경우에 따라선 선동도 주저치 않았던 촛불집회가 당시 정권 붕괴의 결정적 단초가 되었음을 민주당 인사들이 잊어버리기야 했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재미’를 봤지만(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후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득표에 도움이 됐다며 구사한 표현), 자유한국당은 장외집회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구태정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는 너무 염치없는 말 아닌가. 정치의 품격을 높이는 제1조건은 정부와 여당의 솔선수범이다. 그 제1보는 귀를 크게 열고 입을 작게 오므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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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 3축의 이념 규격화로 어떤 나라 꿈꾸나

이진곤 언론인 | 2019-04-22 09:00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귀를 안 열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정부 비판하면 무조건 극우인가…누구는 노숙투쟁까지 하더니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자유한국당 장외집회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자유한국당이 지난 20일 광화문에서 대중집회를 가졌다. 황교안 대표 체제 들어서는 처음 시도된 장외 투쟁이었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문재인 대통령이 저 먼 우즈베키스탄에서 전자결재로 강행한 데 대한 한국당의 반발·저항이었다.

정말이지 예사문제가 아니다. 언론들이 분류하기로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이 진보성향이다. 2명은 중도, 그리고 보수로 분류되는 재판관은 단지 1명에 불과하다. 진보 재판관 가운데 3명은 문 대통령이 지명했고, 2명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나머지 1명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명했다.

귀를 안 열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재판관 중 5명은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민변 등 진보성향 단체 출신이다. 전체 법조인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단체들은 물론 아니다. 재직 판사들, 그리고 변호사들 가운데 상대적 소수가 참여하는 연구단체이거나 사회운동단체다. 이들이 헌법재판관의 과반수를 차지하게 됐다. 이런 저런 연고로 재판관들 사이에 이념적 동조화현상이 뚜렷해지면 헌재의 특성상 입법권‧사법권까지 ‘대통령의 손바닥 위에’ 바쳐질지 모른다.

아니라도 사법부의 이념적 지형은 진작 바뀌었다. 대법관 14명 가운데 9명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았다. 나머지 5명 가운데 4명이 또 문 대통령 임기 안에 자리를 뜨고 새 대법관들이 그 자리에 앉는다. 당사자들은 아니라거나 불쾌하다 할지도 모르지만 상식의 눈으로 보자면 문 대통령 사람들이 대법원을 거의 완전하게 장악했다고 할 수 있다.

국가권력구조의 3축 중 문 대통령 측에 의해 점령당하지 않은 곳은 입법부뿐이다. 그렇다고 국회가 자유우파의 보루로 남아 있다는 것이 아니다. 겨우 ‘덜 점령된’ 상태로 버티고 있는 정도라고 하겠다. 자유우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곳도 거의 대부분이 침수된 상태다. 다만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통나무를 끌어안고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신세나 다를 바 없다.

이 같은 상황인식에서 보자면 20일의 자유한국당 광화문 집회는 자유민주주의 정체(政體)의 존속, 자유우파 정치세력의 존립에 대한 위기감 표출이었다. 국회 내의 소수파로서 끈질기게 버티어내는 한편 내년 총선의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자각이 스스로를 광장으로 내몬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정치민주화’ 이후 야당이 지금 같은 위기국면에 떨어졌던 적은 없었다.

그간에는, 고도의 전문성·자존심·자부심·책임감으로 무장한 사법부가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믿음이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신뢰가 많이 퇴색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검찰과 법원은 수사와 재판을 통해 ‘적폐 인간’을 양산했다. 그 대부분은 지난 정권에서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지금도 현정권의 구정권 단죄 및 징벌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자유우파 국민들의 눈에는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도 정권의 의지를 처벌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국가권력의 핵심부를 특정 이념으로 채워 넣는다는 의심이 생기면 저항은 당연한 반응이자 대응이다. 정권 측의 독선·독단·독주를 멈추게 할 다른 수단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이끄는 청와대와 정부는 정치적 반대자들의 비판이나 호소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빛이다. 정책에서도 그렇고 인사에서도 그렇다. ‘소통’을 유난히 강조했지만 ‘귀는 닫고 입만 여는’ 소통이다.

정부 비판하면 무조건 극우인가

그러니 야당이나 그 지지세력으로서는 국민을 향해서나 호소할 수 있을 뿐 달리 구사할 수단을 못 가졌다. 그 탓이겠지만 자유우파 시민들의 토요집회가 탄핵정국 이후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지도부와 당원들까지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사태가 이에 이르렀으면 정부 여당은 놀라고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옳을 텐데 오히려 비난하기에 열을 올린다.

“한국당의 광화문 장외투쟁은 ‘색깔론’을 앞세워 사람을 동원한 구태정치이자, 국민을 분열시키는 무책임한 선동이 난무하는 ‘난장판’이었다. 한국당은 즉시 국회에 복귀하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의 말이다.

“자유한국당이 민생을 내팽개치고 장외투쟁이라는 이름하에 구태정치를 하고 있다. 태극기부대의 적개심에 의존한 채 극우화되는 것이 공당으로서 옳은 것인지, 그런 전략이 과연 성공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라.” 이는 민주당 부대변인의 논평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권력을 비판하고 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야당의 권리이자 의무이지만, 지지층 결집을 위한 망언·시대착오적 색깔론·가짜뉴스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혹세무민은 결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부디 자유한국당이 헌법을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제대로 된 야당으로서 국정운영의 한 축이 되어주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입장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될 텐데, 여당 인사들에게는 망각증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야당의 장외투쟁을 이런 식으로 매도할 수 있는지 기이할 정도다. 우선 ‘극우’라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한다. 광장과 거리에 나서서 시위를 하면 그게 ‘극우화’라는 것인가. 검은 셔츠를 입고 파시스트정당화를 외치며 광화문에 몰려든 사람들이라는 뜻인가. 갈색셔츠를 입고 세종로를 행진하며 나치정당화를 외치는 군중이라는 뜻인가.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한다고 ‘망언’이니 ‘혹세무민’이니 혹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이니 하는 것도 어이없다. 상대방의 주장을 망언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은 민주적 정당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실토나 마찬가지다. ‘색깔론’ 시비도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라는 말에 대해 격렬한 반감을 드러내며 ‘친일잔재’로 매도하던데, 그 말을 흉내 내는 것인가.

누구는 노숙투쟁까지 하더니

‘빨갱이’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주장이 있는 것 같던데, 어쨌든 ‘붉은 색’은 공산주의자들 스스로 내건 상징색이다. 그 표현이 ‘청산해야 할 친일잔재’라면 공산주의자에 비유되는 것을 대단한 모욕으로 여긴다는 뜻이겠다. 그러면 그 점을 분명히 하면 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지지하는 사람더러 ‘빨갱이’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다만 사회주의적 이념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유적으로 그런 표현을 쓰기는 한다. 혹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사회주의자일 뿐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므로 빨갱이라고 부르지 마라”고 말하면 될 일이다.

정당의 광장‧거리 시위가 바람직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 민주적 정당정치가 성숙된 나라라면 야당이 거리에 나가서 국민에게 호소해야 할 까닭이 없다. 정부가 정당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것을 국정에 반영하려 애쓸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예 야당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여당이 일방적으로 정부편만 드는 상황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청문회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고, 그 때문에 야당과 여론이 임명을 반대했음에도 들은 척도 않는 헌재 재판관 임명권자에 대해 야당이 취할 수 있는 항의의 방법으로 장외투쟁 말고 달리 뭐가 있을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은 한국당의 광화문 집회를 비난하고 비판할 도덕적 정치적 자격이 없다. 민주당은 지난 2013년 8월 2일,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등을 요구하며 서울광장에 천막당사를 차렸다. 그리고 그달 27일부터는 당 대표가 천막당사 옆에 텐트를 치고, 이른바 ‘노숙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 대표는 10월 10일에, 당은 11월 10일에 각각 텐트와 천막을 걷었다.

진보좌파 사회단체들이 주도한 촛불집회는 그 이전부터 매주말 청계천 광장에서 열렸다. 그 집회의 연장선상에서 현직대통령 탄핵과 투옥이라는 정변이 발생했고, 끝내 정권이 바뀌었다. 문 대통령과 정권의 주요 구성원들, 그리고 지지자들은 새정부를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촛불정부’ 또는 ‘혁명정부’로 명명했다.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치닫던 2017년 12월, 문재인 당시 민주당 전 대표는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뿐”이라고 했었다. 그처럼 야당이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경우에 따라선 선동도 주저치 않았던 촛불집회가 당시 정권 붕괴의 결정적 단초가 되었음을 민주당 인사들이 잊어버리기야 했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재미’를 봤지만(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후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득표에 도움이 됐다며 구사한 표현), 자유한국당은 장외집회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구태정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는 너무 염치없는 말 아닌가. 정치의 품격을 높이는 제1조건은 정부와 여당의 솔선수범이다. 그 제1보는 귀를 크게 열고 입을 작게 오므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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