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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개혁 득실 논란-1] 총대 멘 여당, 군불 때기 속내는

부광우 기자
입력 2019.04.12 06:00 수정 2019.04.12 06:03

논의 불붙이는 민주당…리디노미네이션 드라이브

끝 안 보이는 경기 불황 타개 꼼수? 적절성 논란

화폐개혁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인 리디노미네이션. 이름은 어렵지만 내용은 단순하다. 현재 쓰고 있는 돈의 단위에서 0을 몇 개 덜어내고, 그 만큼 작아진 숫자로 새 화폐를 만들어 유통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감춰져 있다. 국내에서 화폐개혁이 하필 왜 지금 다시 사회적 논쟁거리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속내가 숨어 있는지 들여다봤다.

논의 불붙이는 민주당…리디노미네이션 드라이브
끝 안 보이는 경기 불황 타개 꼼수? 적절성 논란


화폐개혁이 10여년 만에 다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화폐개혁이 10여년 만에 다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화폐개혁이 10여년 만에 다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여당이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이 쏠린다.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기 위해 화폐개혁이 가진 인위적 경기 부양 효과를 노리고 여당이 정부 대신 총대를 메고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화폐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 "필요할 때는 됐다고 본다"고 답했다. 다만, 정치권에서 먼저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며 확대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이를 계기로 화폐개혁은 순식간에 핫 이슈로 떠올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판을 주도하고 있어서다. 이 총재에게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던져 해당 논의를 수면으로 끌어올린 당사자도 민주당의 이원욱 의원이었다. 여당은 관련 공개 토론회를 계획하는 등 화폐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회에서 가장 최근 화폐개혁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던 것은 5만원권 도입여부를 두고 논쟁이 뜨거웠던 2005년이다. 이보다 앞선 2003년에는 한은이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자는 내용의 화폐제도 선진화 방안을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 보고하기도 했다. 이듬해 민주당은 이 같은 방안을 담은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하기도 했다.

당시 한은은 거래 편의성과 후진국 이미지 개선 등을 꼽았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에 비해 화폐의 액면 단위가 너무 작아 국민 순자산이 1경원 대로 기록되는 등 표기나 거래에 불편함이 따른다는 지적이었다. 이와 함께 지하 경제 양성화도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주요 논리였다. 화폐개혁을 통해 숨어 있는 자산들이 시장에 돌게 만들어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화폐개혁이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던 가장 큰 요인은 경제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의 반대 때문이었다. 기재부는 화폐개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예를 들어 화폐 단위를 1000대 1로 바꾸면 현재 950원짜리 물건은 0.95원이 돼야 맞지만, 현실에서는 1원으로 오를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리디노미네이션 시행 시 물가 상승은 사실상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재점화하고 있는 화폐개혁 주장이 이런 인플레이션 효과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물가 지표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로 리디노미네이션이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최근 국내 소비자물가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동시에 소비자물가와 체감물가의 간극은 커지고 있다. 경제 심리 위축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4%에 그쳤다. 지난해 9~10월 2%대로 올라섰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같은 해 12월 1.3%로 추락하더니, 올해 1월(0.8%)과 2월(0.5%)에 이어 3개월째 0%대 상승률에 머물고 있다. 이는 한국은행 목표치인 2%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이런 와중 체감 물가 상승률은 2%대로 소비자물가와 큰 차이를 보였다.

경제계와 금융권은 이런 여건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으로 화폐개혁이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리디노미네이션으로 물가 지표를 어느 정도 개선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는 제대로 된 경기 회복이 아니라 단지 수치적 변화를 노리는 꼼수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여당이 리디노미네이션을 들고 나서다 보니 타이밍 상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실질적으로 디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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