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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연락사무소 철수…'썸 타던 김정은, 떠나가나'

이배운 기자
입력 2019.03.23 06:16 수정 2019.03.23 06:19

'북한대변인' 논란 자초한 南…한미동맹·안보태세 약화 책임만 남아

대북 최대압박이 비핵화 견인…저자세·퍼주기 대북기조 재고해야

'북한대변인' 논란 자초한 南…한미동맹·안보태세 약화 책임만 남아
대북 최대압박이 비핵화 견인…저자세·퍼주기 대북기조 재고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녀 관계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호구나 다름없다"
"대체 우리가 왜 이렇게 굽히고 들어가는지 이해가 안된다"


지난 한해동안 한반도 정세에 대해 외교 안보 전문가들이 탄식하며 내놓은 말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관적인 '저자세' '퍼주기' 대북정책은 우리를 얕잡아 보게 할뿐, 완전한 비핵화 달성은 오히려 더 요원하게 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은 지난 22일 '북측 연락사무소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철수한다'는 입장을 일방 통보하고 북측 인원을 사무소에서 철수시켰다. 지난해 초 북측의 손짓으로 남북 관계가 뜨거운 로맨스로 발전하는 듯 싶더니 '썸'에 그치고 만 것이다.

조짐은 3주전부터 보였다.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매주 금요일에 열리던 남북 간 소장 회의는 우리측의 재개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썸 타던 그이가 갑자기 메신저를 읽어도 답장을 안 하는 '읽씹' 모드에 들어가더니 곧 '수신차단'을 걸어 벌인 셈이다.

남녀관계에서 생겨난 아픔은 훌훌 털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외교에서는 쉽지 않다. 지난 한 해 동안 정부는 한반도 평화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북한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며 ▲한미연합훈련 중단·취소 ▲'무장해제' 논란을 불사한 남북군사합의 졸속 비준 ▲북한 자극 표현 제거 ▲남북경협 추진 등을 밀어붙였다.

이러한 화해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은 핵물질 시설을 계속 가동하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조하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비핵화 진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수차례 불거졌다.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외 핵시설을 함구하고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도 의구심을 가중시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진정성이 있음을 국제사회에 설득시키는데 급급했고, 정작 북측에는 쓴소리 한번 안 하는 탓에 '북한 대변인' 역할을 자처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밀당(밀고 당기기)'을 벌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오직 저자세로 일관하는 '당기기'만 시도한 셈이다.

정부가 북한의 환심을 사기위해 '당기기'만 하는 동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인 미국과의 우정에는 먹구름이 낀 분위기다. 최근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은 한미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해법을 둘러싸고 불화를 빚고, 정부가 내놓은 중재자론에 대해 워싱턴내 부정적인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를 잇따라 내놨다.

회복된 남북관계로 북미대화를 견인하겠다며 외교력을 쏟아 부은 정부는 결국 얻은 것 하나 없이 한미동맹과 안보태세를 스스로 내던지고 남남갈등만 부추겼다는 책임을 안게 됐다. 이 와중에 북한 대남 선전매체는 22일 통일부 업무계획을 겨냥해 "푼수 없이 헤덤비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며 정부의 중재 외교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못 박았다.

이배운 정치사회부 기자 ⓒ데일리안 이배운 정치사회부 기자 ⓒ데일리안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희박함을 인정하고, 지난해 갑작스러운 유화제스쳐는 단지 미국과 유리한 협상을 벌이기 위한 수단 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개성연락사무소 철수는 미국과의 협상이 안 풀리니 긴장 분위기를 조성해 유리한 상황 변화를 만들어보려는 전형적인 패턴 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밀당도 필요하다는 기초적인 관계 이론을 되새기기를 바란다. 현 국면에서의 '밀기'의 원리는 어렵지 않다. 그동안 국제사회와 트럼프 행정부가 누누이 언급했던 '대북 최대압박이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원칙을 충실하게 이행하기만 하면 된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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