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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대통령을 비판하면 매국이라네요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9.03.18 08:30 수정 2019.03.18 08:37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검은머리’가 기사 쓰면 안 되나

언론자유 그렇게 강조하더니…듣고 읽는 사람이 경계삼아야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검은머리’가 기사 쓰면 안 되나
언론자유 그렇게 강조하더니…듣고 읽는 사람이 경계삼아야


지난 12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김정은 수석 대변인”, “헌정농단”, “좌파 포로 정권”등의 발언을 하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의장석으로 나가 항의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 12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 도중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김정은 수석 대변인”, “헌정농단”, “좌파 포로 정권”등의 발언을 하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의장석으로 나가 항의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나경원 ‘文 수석대변인’ 진원지, ‘검은머리’ 외신기자”

어느 언론매체의 기사제목이다. 본문엔 없는 표현인 것으로 미뤄 데스크나 편집부에서 정한 제목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기사를 쓰고 제목을 붙인 사람들의 심리에 관심이 간다. 한국인 리포터여서 외신에 신뢰성 있는 기사를 올릴 주제는 못된다고 여긴다는 말일까? 외신기사라고 할 만한 글을 쓰려면 노랑머리나 갈색머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자신들의 인종적 편견 자랑일까? 검은머리들이 쓰는 국내 언론의 기사는 아무래도 외신보다는 한 급 아래라는 말도 하고 싶었을까? 그러니 자신들의 기사나 그 제목도 썩 읽을 만한 것은 못 된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건가?

‘검은머리’가 기사 쓰면 안 되나

‘검은 머리’ 제하 기사도 여러 단계의 검증 판단 과정을 거쳤을 터이다. 기사 취재 및 작성 단계까지는 이○○ 기자(이름이 이미 보도됐는데 굳이 ○○로 표기할 필요가 있느냐 할지 모르나 그래도 구설에 덜 오르게 하고 싶다) 혼자서 한 일이겠지만 한국지사와 미국본사의 데스크, 그리고 편집회의 등을 거치고 나서야 <블룸버그>의 기사로 보도될 수가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왜 <블룸버그>가 아니고, ‘검은머리 기자’인가. 국내 대다수의 검은머리 기자들은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나 맘에 들지 않는 논조조차도 언론의 장에서 그것이 토론되는 과정에서 스스로 비판되고 도태되어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옳지, 거기에 정치권력이 직접 개입해 좌지우지 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옳거니!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정치인의 그 다운 의식이고 언설이라 할 만하다. 이 정치인은 2014년 11월 25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서 당당히 그 같은 소견을 피력했다. 이 정치인은 재작년 4월 7일 ‘신문의 날’을 맞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시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한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는 “한 시대의 언론 자유는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척도다. 언론의 자유야말로 정론직필의 정신을 지키려는 언론인들의 노력과 함께 언론을 좌지우지 하지 않겠다는 정치권력과 자본의 탐욕억제로 만들어 진다.”

바로 문재인 대통령의 언론자유 예찬이다. 문자 그대로 ‘주옥’ 같다. 앞의 것은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으로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재판과 관련해 한 말이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이른바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을 칼럼에 올렸다가 명예훼손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사건이었는데, 국내외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었다. 어느 시민단체의 고발에서 비롯됐지만 청와대의 반응이나 검찰의 수사 및 기소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었고 문 대통령도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그 분위기를 거들었다.

뒤의 것은 대통령 후보 때의 언급이다. 마침내 박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밀어내는데 성공한 당시 야권의 리더로서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과 자본의 탐욕억제’를 다짐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직계 선임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내내 보수언론과 긴장관계에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그의 말은 언론에 대한 화해와 화합의 선언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지금까지도 문 대통령과 그의 정부 및 여당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유우파 정당에 대해서는 아주 인색하다. 다만 작년 하반기부터 이른바 메이저 언론 중 일부가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청와대의 언론에 대한 불평불만이 점점 늘어나고, 이른바 진보매체들이 정권 측 역성을 드는 예가 많아지는 상황이다.

언론자유 그렇게 강조하더니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못할 말을 한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을 향해, 남으로부터 그런 모욕적인 비유를 당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그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요구이기도 하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라면 왜 ‘북핵 폐기 협상’ 과정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모호한 태도를 보이느냐고 따질만하지 않은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김정은의 입장을 거드는 듯한 발언을 이어온 문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따라서 국민 다수는 나 대표가 민심을 거스르는 발언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나 대표가 자신의 말로 공격하지 않고 남의 말을 인용하는 데 그친 것만으로도 자제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즉각 의원총회를 열어 ‘국가원수모독죄’ 운운하며 위협했다. 바로 다음날 민주당은 나 대표를 국회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이해식 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나 대표와 블룸버그통신 이 기자를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그는 나 대표가 외신을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한 점을 지적하며 “지난 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제목으로 <블룸버그> 통신의 이○○ 기자가 쓴 바로 그 악명 높은 기사”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기사에 문제가 있다면 일단은 해당 매체에 대해 항의하든 정정요청을 하든 하는 게 순서다. 기사를 쓴 사람은 기자이지만 그걸 지면이나 방송을 통해 내보낸 측은 매체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이 기자의 개인매체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악명 높은’이라는 표현은 일국의 집권당이 공식 브리핑에서 구사하는 용어로는 너무 독하다.

그의 기자 모욕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 당시에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맹폭을 가했다. 이 말을 하기 전에 해당 기자의 경력이 일천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도 잊지 않았다. ‘국가원수를 모욕하면 매국’이라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박 전 대통령 재임 때 가해졌던 그 숱한 비난과 조롱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는가.

“당시에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는 말은 작년 9월에도 지금처럼 격분했었다는 것인가? 미안하지만 그런 기억이 없다. 그때는 흥분할 기회를 놓쳐서 속앓이를 하다가 나 대표가 이를 인용하자 물실호기(勿失好機)로 여겨 들고 일어났다는 것인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고, 그 바람에 정부가 공들여 준비했던 남북경협플랜이 (적어도 당장은) 허사가 된 데 대한 분풀이인가. 일련의 대미 대북 대외정책의 중대한 차질에 대한 초조감의 표시는 아닌가.

듣고 읽는 사람이 경계삼아야

옛날 왕조시대에도 통치자와 조정에 대한 감찰과 간언(諫言)은 필수적 제도였다. 감찰관 및 간관(諫官)제도는 이미 중국 한나라 때부터 시행되었다. 당연히 황제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 이전 주(周)나라 때는 채시관(采詩官) 제도가 있었다. 민간의 시가를 수집해서 정리하는 관직이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채시관 제하의 시에서 ‘언자무죄(言者無罪 聽者足戒)’, 즉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다, 다만 듣는 사람이 경계로 삼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관직이 없었다면 시경(詩經)이 전해질 수 있었겠는가. 물론 우리의 역대 왕조들도 감찰관, 간관의 제도를 운용했다. 그게 민주주의가 비로소 구현되었다고 주장되는 지금에 와서 오히려 사라져 버렸다. 청와대 특감반은 대통령 주변, 고위 공직자들을 제대로 감시하기는커녕 시키지 않은 감찰을 하고 그 정보를 밖으로 흘렸다며 해당 직원을 징계하는가 하면 오류를 시정하는 대신 내부단속에만 열심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 왜 그렇게 듣기 싫은가? 주나라 이전의, 전설시대로 분류되는 요순 때에도 비방지목(誹謗之木) 감간지고(敢諫之鼓)의 제도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임금의 통치를 비방하는 나무 기둥이나 북을 대궐 앞에 두어 누구나 대자보를 써 붙이고 북을 쳐 간하게 했다는 고사다.

3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억이다. 필자가 쓴 기사로 인해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사주 측이 심각하게 반응할 내용이 기사에 담겼고, 그게 보도됐다. 일주일 쯤 후에 문제가 터졌다. 사주측이 격하게 분노를 표하며 사장 겸 발행인을 몰아세운 것이다. 들리기로 1시간 반을 전화로 호통 당한 사장은 편집국장을 불러 다시 1시간 이상 질책 했다. 소리 잘 지르기로 소문났던 편집국장은 사장실을 나서기 무섭게 온 건물이 떠나갈 듯 화를 내며 편집국으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아서도 그의 질책은 멈추지 않았다. 기사를 쓴 필자에게가 아니라 데스크들에 대해서였다.

전해들은 이야기로 사장이 편집국장에게 한 말이 이러했다.

“이 기자는 잘못이 없어. 기자는 쓰는 게 임무니까. 문제는 데스크야. 도대체 데스크를 어떻게 봤기에 그런 내용이 나가게 해!”

밖으로 알려지면 오히려 사주 측을 더 난처하게 할 일이어서 아예 없었던 일로 처리됐다. 사장의 사주 측에 대한 설득과 해명이 간곡했다고 들렸다. 돌아가신 분도 있고 안부를 모르는 분도 있고…, 그렇게 세월이 많이 갔다. 그래도 늘 마음에 위안을 주는 말은 “기자는 쓰는 사람이야!”라고 했다는 사장의 말 한 마디다. 기자출신 사장이어서 그 소신이 더 뚜렷할 수 있었겠지만 멋진 분이었다. 미안하게도 필자 또한 ‘검은머리 기자’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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