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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휘의 화담숲> 김민수, 자유한국당, ‘조직위원장 공개 오디션’ 입문 정치인 만나보니현장에서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9.03.07 06:00 수정 2019.03.11 09:30

<이상휘의 화담숲-첫번째> 김민수 자유한국당 성남분당을 당협위원장

정치가 순수한 열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답할 것인가가 관건

<이상휘의 화담숲-첫번째> 김민수 자유한국당 성남분당을 당협위원장
정치가 순수한 열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답할 것인가가 관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잘사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이 아닌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장사를 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인지, 청년과 기성세대의 생각은 뭔지를 물어보고 그 마음을 담을 까 합니다. 따뜻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듣고 옮기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는 이유와 방법을 배울까 합니다. 새벽의 밝음과 같은 삶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번 주부터 4회에 걸쳐 정치권에서 화제가 되었던 자유한국당의 ‘조직위원장 공개 오디션’을 통해 정치에 입문한 젊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편집자주>

김민수 자유한국당 성남분당을 당협위원장 ⓒ데일리안 김민수 자유한국당 성남분당을 당협위원장 ⓒ데일리안

영화배우인줄 알았다. 180센티미터의 키에 준수한 용모다.

어? 내가 사람을 잘 못 찾았나?

금방 알았다. 습관적으로 정치를 하거나 희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던 탓이다. 대개 안경을 썼다. 체격의 비율(?)이 살짝 뒤틀려 있다. 십중팔구 작달막한 키에 머리가 약간 크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관찰을 통한 과학적 근거는 아니다.

아무튼 눈이 호강할 만큼 미남이었다. 김민수 자유한국당 성남분당을 당협위원장의 첫 모습이다. 도대체 정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용모다.

궁금했다. 마흔을 갓 넘은 젊은 기업인이 왜 정치를 하려 하는지, 그리고 자유한국당이라는 당을 왜 좋아하는지가 말이다.

그는 연매출 100억원, 약 400명의 직원을 거느린 중소기업의 대표다. 상당한 능력을 가진 청년 실업가다. 더구나 자신의 경영노하우를 사회에 전파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자금을 투입하고 앞장서서 만든 창업협회활동이다.

창립한지가 십년도 넘었다. 국가지원도 없다. 순수한 개인 사비를 들여 창립했다.고 한다. 주로 젊은 청년들의 창업을 돕고 있다. 건축으로 말하자면 기초공사에서 완공까지 컨설팅을 해주는 일이다.

창업학 박사다. 국내에서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는 분야라고 한다. 상당한 긍지를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20명 이상의 창업 지원했다. 성공을 했고, 이들의 경험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다. 돈을 벌기에 급급한 것이 세상인데,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아무런 대가 없이 나눠 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싶다.

궁금했다.

“성공하신 사업가인데, 왜 욕을 먹는 정치를 하려 하십니까?”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몰랐을 뿐입니다. 정치를 하면 내가 가진 생각들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기업을 하느라 바빴는데, 자유한국당에서 조직위원장을 공모한다고 해서 신청을 했고 공개 오디션에서 합격을 한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보수 정당인데, 원래 보수성향을 갖고 있습니까?”
“솔직히 보수나 진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자본주의를 신봉합니다.. 능력을 발휘하면 대가가 따르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 이지요. 뭐, 어려울 게 있습니까? 그래서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이고 경제가 움직이는 것이라 봅니다. 정치를 하면 그런 활발한 자본시장을 만드는데 노력할 생각입니다.”

간단하지만 핵심을 말했다. 기업가로서 자본시장을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답 이었다. 정치를 하는 것이 어렵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사실 그렇다.

정치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그 길을 제대로 모른다. 대개 유명한 정치인을 찾아가 읍소를 한다. 아니면 국회보좌관이나 비서를 통해 입문하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은 선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정당은 항상 인재를 찾아야 한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인재찾기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사당화가 되는 것이다. 소위 ‘줄서기’를 하게 된다는 말이다.

지난 1월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자유한국당 조직위원장 선발 공개오디션이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 1월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자유한국당 조직위원장 선발 공개오디션이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 위원장은 조직위원장 공개 오디션을 통해 정치에 들어왔다. 신선했다고 말했다. 기업으로 치면 공채를 한 셈이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일이다.

“자유한국당이 계파문제로 시끄럽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문제로 지지도가 낮은데...“

슬쩍 떠보았다.
자유한국당이 좋냐는 우문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직위원장 공개 오디션 제도는 그 동안 정치권에서 보지 못했던 것 이었습니다. 저 같은 정치 지망생들을 상당히 좋은 기회죠. 들어가서 바꿔보고 싶었고, 또 그런 제도를 시행한다는 것이 앞으로 기대를 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깔끔한 현답을 내 놓았다.

젋은 기업가로 사업수완도 궁금했다. 외모로 보면 이른바 2세 경영자의 모습이다. 시쳇말로 ‘빈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하신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깜짝 놀랐다. 나이가 41세인데, 사업한지가 20년이 되었다면 상식적이지 않는 일이다.

“대학교 때 부터 창업을 했습니다.. 정확히 4학년 때 부터였지요, 24살이었습니다. 군대도 가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사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당시는 1인 창업 이었습니다.”

재미있었다. 식상할 수 도 있는 뻔한 정치이야기 보다. 그의 삶이 궁금해진 것이다.

“대학교 때...그 때 창업해서 지금까지 이끌고...”

질문이 채 끝나기 전에 그는 말했다. 눈동자가 빛났다. 그 만큼 자긍심이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었다.

“빗자루 하나, 대걸레 한 자루로 시작했습니다.. 빌딩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청소용역 사업을 한 것이죠. 젊은 대학생이니까 힘이 넘치지 않습니까. 신나게 했습니다. 재미있기도 했구요. 망해봤자 망할 자본도 없었습니다. 청소용역에 자본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밑천 없이 하는 사업이라서 더 용기를 냈던거죠. 그때는 90년대 말이긴 했지만 청소용역이라는 게 생소할 때였습니다..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청소용역을 의뢰하는 수요도 늘기 시작했구요. 대학생으로서는 아마 제가 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까?” “대학교 4학년이라 수업이 적었습니다. 뭐, 별로 공부라는게 특별하지도 않았구요”

“창업지원이나 누구의 권유도 없이...” “예, 당시에는 벤처붐이 있긴 했어도, 창업에 대한 정부지원이나 컨설팅 같은 게 없었지요 그냥 나 혼자의 무모한 용기였습니다.”

“자본은 있었습니까?” “백 만원이었습니다.. 방학 때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받은 돈을 모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위원장을 하고 있는 분당에서 시작했는데, 당시 창업벤처 사무실 좀 비쌌습니다. 그래도 사무실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서 월 70만원에 사무실을 얻었지요, 나머지 30만원은 공장으로 치면 기계를 샀지요, 대걸레와 빗자루를 사고, 명함을 새겼습니다. 영업을 해야 하니까요”

아...참 똑똑하고 능동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나이 때 무얼 했나’라는 부끄러움도 스쳤다.

“반대는 없었습니까?” “당연히 있었지요, 원래 부모님은 제가 사법고시나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법대를 갔지요. 게다.가 아버님이 공무원이셨습니다. 깐깐한 분이시지요. 깡촌에서 자라 초중고를 검정고시로 하셨어요. 그러고는 7급 공무원에 합격하셨으니 대단하신 분이지요. 그러니 당연히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지요. 그것도 맏아들이니까요. 그랬는데, 어느 날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와 사업을 한다고 하니 기가 막히셨지요. 역정도 내셨고 말리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집을 나가라고 했습니다. 바로 큰 절을 하고 집을 나왔지요. 뭔지 몰라도 제 의지가 확고했습니다. 성공을 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좋았습니다. 나 자신이 스스로 시작했고, 그것을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고, 특히 땀에 대한 댓가가 분명하다는 것에서 자신 있었습니다.”

첫 영업은 작은 개인다. 세대 주택이었다. 월 관리를 하는 것인데, 일주일에 두 번 계단청소를 하면 월 10만원을 받았다.

그는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실현해 낼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입체적으로 실현해 낼 수 있는 것이 창업이라는 설명이었다.

독특한 사고였다.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까?”

웃으면서 에피소드를 말했다.

“하루는 대걸레를 들고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데, 어떤 젊은 아주머니가 꼬마를 데리고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한참을 웃었다.

희망과 가치를 가지고 하는 노동과 체념적 상황의 노동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그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종업원도 숫자가 늘어갔다.

김민수 자유한국당 성남분당을 당협위원장 ⓒ데일리안 김민수 자유한국당 성남분당을 당협위원장 ⓒ데일리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정상적인 땀의 가치를 아는 건실한 기업가인데, 정치라는 비생산적(?)인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까? 현실에 실망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제가 생활신조가 있습니다.. 특별히 유명한 격언은 아닙니다.. 그냥 사업을 하면서느낀 것입니다.”

“뭡니까?” “세상은 희한하게도 노력하면 노력한 거 보다. 조금씩 더 많은 댓가를 줍니다. 그러니까 약간만 노력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노력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거지요“

“정치도 그럴까요?”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닥치지 않는 일을 미리 생각하고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치나 기업이나 근본적인 것은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김민수라는 상품이 이런 것이며, 이렇게 정치를 할 것 이다 라는 것을 꾸준히 설득시키고 노력해 나간다면 댓가는 그 보다. 많은 것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당당한 것과 움츠리는 것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있다. 해도 당당하게 주장을 하고 설득을 시킬 것입니다.”

어쩌면 정치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대학 때 창업을 했다. 그 기업을 20년간 이끌었다. 지금은 남부럽지 않는 기업가가 되었고, 성공을 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정치가 복잡하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들은 떨쳐내어야 할 문제들이다. 분명한 것은 정치나 기업이나 노력에 대해서는 답을 해준다는 점이다. 소통이 그렇고 협치가 그렇다. 투표로서 국민에게 선택받는 것 또한 노력의 결과다.

정치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민수 위원장의 신념은 정치에도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젊은 기업가의 스토리는 어울리지 않는 농익은 경험으로 드라마틱했다.

정치권 최초로 시도된 공개오디션에서 선발된 신인 정치인이다. 평범한 질문을 몇 개 더했다.

“우스운 질문입니다만 정치를 할 려면 운도 따라야 할 텐데요”

“(웃으면서)...그런 얘기들을 많이 듣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봅니다. 진짜 저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하늘은 노력한 것 보다. 조금더 많이 줍니다.. 제 운은 그런 것이라 봅니다. 노력은 결국 모든 것에 기본이 되는 것이지요. 정치도 그럴 겁니다. 장담합니다만, 진실한 신념으로 노력한다면 제가 원하는 정의로운 정치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개 오디션 장면을 보니까 아이가 네 명이던데, 애국을 제대로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태원 김씨입니다.. 전국에 3천명 정도 밖에 없는 귀한 성씨입니다. 손이 귀하다보니 네 명을 낳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성장하면서 자식은 세 명 정도는 적다는 생각을 했고 네 명이 적당하다.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제가 바글거리고 북적거리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결혼도 그런 조건을 제시했지요. 집사람이 처음에는 장난인줄 알았다가 결혼 후에 진짜라는 것을 알고는 기가 막혀 했습니다. 결국 합의하에 네 명을 낳기로 했습니다. 대단히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하고 차별된 생각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뭐랄까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짚어내듯이 삶의 목표도 지극히 단순한 것 같지만 철저한 실행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타입이다.

정치를 해도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치가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표를 어떻게 실행해 나가느냐가 문제다. 백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김 위원장은 알곡같은 정치적 소양을 갖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 질문을 했다.

“만약에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시면 어떻게 정치를 하시겠습니까?”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만 당선이 되면 재선을 목표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국회의원을 두세번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3선과 4선을 했다고 멋있게 보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국회의원이냐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습니다.’입니다. 재선과 3선을 목표로 한다면 악수하러 다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싶습니다.”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경로를 들은 나로서는 욕심에 자신을 묻을 사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치는 봉사이며 희생이다. 인생의 목표가 되고 출세의 척도가 된다.면 좋은 정치를 할 수 없다. 욕심에 모든 것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공개오디션, 그 오디션의 목적이 바로 그러한 인재의 발굴이 아닌가 싶다.

공채로 들어온 기업의 신입사원처럼 그는 패기가 있었다. 그 동안 보아왔던 기성 정치인과는 확연히 달랐다. 다만, 정치가 그의 순수한 열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답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그의 바람대로 어릴 때부터 꿈꾸어 왔던 정치를 실현해 주기를 바란다.

낡아버린 보수의 핏줄에 시원한 그의 외모처럼 청량감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흐르길 기대해 본다.

글/이상휘 세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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