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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북한을 큰소리치게 만들었나

이배운 기자
입력 2019.02.18 15:00 수정 2019.02.18 15:13

비핵화 조건 연이은 후퇴…협상력 강화한 北, 요구사항 높여가는 듯

원인은 ▲한미연합훈련 중단 ▲남북관계 과속 ▲한미일 공조약화 등

비핵화 조건 연이은 후퇴…협상력 강화한 北, 요구사항 높여가는 듯
▲한미연합훈련 중단 ▲남북관계 과속 ▲한미일 공조약화 ▲트럼프 내치위기 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9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기대 수위가 갈수록 낮아지는 모양새다. 북한이 핵협상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합의점 도출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각)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 관련해 “우리는 단지 실험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이 향후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는 수준의 협상으로도 만족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해 초 북미대화가 급물살을 탈 당시 미국은 핵협상 목표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성사를 못박았다. 북한은 고도화된 핵 능력을 갖춰 손쉽게 핵무력을 재건할 수 있는 만큼 철저한 비핵화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연이은 반발과 침묵지연 전술에 부딪힌 미국은 CVID 대신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한층 완화된 조건을 내걸었고, 최근에는 실무협상을 진행하면서 ‘단계적 비핵화’로 후퇴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상황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 장관이 지난달 “미국민의 안전이 최우선 목표”라고 밝힌 것은 결국 합의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에 그치고, 중단거리 핵미사일은 남겨두는 ‘나쁜합의’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당초 미국이 압도적인 협상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핵화 조건이 거듭 후퇴한 원인으로는 ▲한미연합훈련 중단 ▲남북관계 과속 ▲북중러 관계 회복 ▲한미일 공조 약화 ▲트럼프 대통령 내치(內治)위기 등에 따른 대북 협상력 약화가 지목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미연합훈련 중단
우선 한미는 지난해 한반도 평화분위기를 고취시킨다는 취지로 ‘독수리훈련’과 ‘키리졸브훈련’의 강도를 대폭 축소시켰고,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과 한미해병대연합훈련을 중단했다. 또 ‘비질런트에이스’ 등 총 3개 연합훈련에 대한 유예를 결정했고, 올해 예정된 키리졸브훈련과 독수리훈련도 축소·유예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핵 협상이 성사되기 전부터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한 것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임해야할 절박함을 떨어트린다고 지적한다. 핵협상 불발 시 한미가 즉각 단호한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북측도 핵협상에 진지하게 응하고 미국의 요구가 더욱 강력하게 수용되지만 이같은 카드를 섣불리 소진했다는 설명이다.

▲남북관계 급가속
한반도 평화분위기 고조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시급히 이행해야 할 긴장감을 잊게 하며, 작전지역에 배치된 군 병력 일부를 경제현장에 투입시킬 수 있도록 하는 여유를 제공한다. 이같은 차원에서 지난해 9월 체결된 ‘남북 군사분야 합의’는 북한이 핵협상 테이블에서 목소리를 높이게 된 요인이 됐다는 평가다.

또 전문가들은 남북 평양공동선언 이후로 정부의 중재외교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고 지적한다. 북한과 국제사회의 상호 불신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측에 편향적인 태도를 잇따라 보이면서 중재자로서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더이상 한국에 큰 역할을 기대하지 않고 미국의 안보이익을 실현하는데 더욱 집중하게 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북중러 관계 회복
북중 정상은 최근 1년 동안 4차례 회동하는 유례없는 친선외교를 선보이면서 강화된 연대를 과시했다. 아울러 북러 관계도 회복기류에 들어서면서 북중러의 반미(反美) 전선이 구축되는 모양새다. 북측은 대북제재 강화 및 군사옵션 발동에 대한 견제 수단을 마련함으로써 미국의 협상결렬 엄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구사항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또 김 위원장의 광폭 외교는 폐쇄적인 지도자 이미지를 쇄신하고 정상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간의 ‘악마 지도자’ 이미지를 벗어나 대내외적으로 통치 정당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의 대북 최대압박에 구멍을 뚫고 대북지원 재개 여론전을 펼치는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데일리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데일리안

▲한미일 공조 약화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중단거리 핵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다. 따라서 한일의 굳건한 외교적 공조는 북미간의 졸속 핵합의 체결 사태를 막을 수 있다. 또 한미일군사력의 상호 보완은 북핵 위협에 대한 억제력 및 방어력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한일갈등은 양국의 군사 교류·협력 중단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북한에 전략적 측면에서의 반사이익이 된다.

특히 ‘국익우선주의’, ‘고립주의’를 밀어붙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우방국들과 방위비 분담, 무역문제를 놓고 연일 언성을 높이고있다. 한미일 공조에 균열이 커졌다고 판단한 북한은 중·러의 이해관계에 발맞춰 주한미군 철수를 협상 안건으로 제시할 수 있으며, 동맹을 거래 수단으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의 그간 태도에 비쳐 이에 응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내치 위기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연방정부 최장기 셧다운 사태, 미국증시 급락 등 겹악재를 맞으면서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 센터가 미국 성인 1505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7%가 트럼프가 ‘실패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란 응답자 29% 보다 1.5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에 재선을 꿈꾸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측의 반발을 피하고 당장의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졸속합의를 체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북미가 베트남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해 놓고도 실무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은 북한이 미국의 신중한 실무진 인사를 건너뛰고 충동적인 성향의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공략해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잇따른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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