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메인 네비게이션

최고인민회의 사절단의 말인 줄 알았네요

이진곤 전 언론인 | 2019-02-18 09:00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김정은이 개과천선하는 날 올까
뻔히 보이는 종전선언 이후 상황…“베트남처럼 친미국가로 바뀌면”


지난해 12월 7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김정은 서울 방문 결사반대 긴급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지난해 12월 7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김정은 서울 방문 결사반대 긴급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아라비아 사람이 추운 날 천막 속에 혼자 앉아 있었다. 낙타가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머리만 이 속에 넣게 해 주세요.” 같이 살아가는 처지라서 주인은 그러라고 했다. 잠시 후에 낙타는 앞다리를 천막 속으로 넣었다. “다리가 아파서 그러니 좀 봐주세요.” 그 정도는 괜찮겠다고 여겨 허락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 낙타는 아예 천막 속으로 쑥 들어오고 말았다. “천막을 들치고 있자니까 바람이 들어와서 안 되겠네요.” 낙타가 천막을 다 차지하고 주인은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 전래 설화가운데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있다.

김정은이 개과천선하는 날 올까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여느 때처럼 품팔이를 하고 밤늦게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잔칫집에서 얻은 떡을 함지박에 담아 이고 아이들 생각에 밤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호랑이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머니는 떡을 하나 꺼내 주었다. “하나 더 주면 안 잡아먹지.” 그래서 또 하나를 줬다. 그렇게 떡이 다 떨어졌는데도 호랑이의 요구는 계속됐다.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다리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체제의 생존을 건 협상에 관한 한 한국 정부는 북한 김정은 집단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북한의 기형적 왕조체제, 사이비 신정체제가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하면서도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저들의 실력은 입증되고도 남음이 있다.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초의 그 가공할 무력시위에 대해 오히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대응했다. 그러다 갑자기 평화공세를 펴면서 대화국면을 조성했다. 신년사 말 한 마디로 문재인 대통령을 심리적으로 휘어잡는데 성공했고, 그의 중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이끌어냈다.

트럼프는 대단한 성과를 거둔 양 허풍을 떨어왔지만 손에 쥔 게 없다. 반면에 김정은은 범죄집단의 두목이 아닌 한 나라의 정상으로서 국제사회에 전입신고를 했다. 게다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핵문제를 논의하는 장면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는 성과를 올렸다. 야금야금 챙기고 빼앗는 그들의 교활한 협상술, 적이지만 정말 대단하다.

문제는 그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CVID, 그러니까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 압박은 퇴색된 대신 미‧북 정상간 핵협상이 되레 ‘불가역적’ 프로세스가 되고 말았다. 트럼프로서는 확실한 성과가 보장되든 안 되든 김정은과 만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지금 와서 안 만나겠다고 하면 그가 작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에게 농락당했음을 실토하는 격이 된다. 과시욕이 남다른 트럼프가 그걸 감수하려 하겠는가.

일전 워싱턴포스트(WP)에 실린 칼럼이라며 언론들이 옮긴 조시 로긴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의회가 북한에 대해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경고하다’라는 제목의 이 칼럼에서 로긴은 “한국은 성급하게 북한의 경제제재 완화를 도우려 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서울의 잘못된 조언의 길을 따라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고 했다.

뻔히 보이는 종전선언 이후 상황

그는 “한국이 북한과 경제협력을 시작해 미국의 압박이 효과가 없어지게 되면 북한 비핵화 동력은 사라질 것이다. 어떤 이들은 윈스턴 처칠을 인용해 ‘장시간의 협상이 전쟁보다는 낫다’고 하지만 이러다 자칫 북한을 비핵화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진심은 뭘까? 북한을 믿지는 못할 것이다. 북한이 ‘영변핵시설 폐기+a’ 정도로 미국과 협상에 성공한다면 그것으로 좋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내심으로 미‧북 양측이 협상을 통해 핵을 동결하고 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 및 발사실험을 포기하는 선에서 합의를 이뤘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른다. 그래야 ‘종전선언’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므로!
핵을 가진 북한의 협박 속에 살아야 하는 사람은 우리 5천만 국민인데, 그 점에 대해서 특별히 고민하는 빛이 안 보인다. 미국을 향해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 ‘한반도에서의 전쟁 불용’ 등을 강조해왔을 뿐이다. “남‧북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알아서 할 테니까, 미국과 북한 사이의 거래나 빨리 끝내라.”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실상부한 자주국가의 지위를 확보하는 첫 걸음이기 때문일까? “외세는 물러가라”는 좌파의 오랜 비원이 마침내 실현될 것이어서? 우리 정부 관계자,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까지도 종전선언은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한‧미‧북이든 한‧미‧북‧중이든 정상들 간의 합의에 따른 선언이라면 현실적으로는 협정이나 다를 바 없는 효력을 갖는다. 그렇지 않다면 문 대통령, 그리고 북한의 김정은이 집요하게 추구 또는 요구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종전선언이 나오면 북한이 맨 먼저 들고 나올 게 유엔사령부 해체, 한‧미동맹 폐지, 주한미군철수일 것은 불문가지다. 유엔사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당사국 정상들이 ‘종전’을 확인하고 선언까지 했는데도 유엔사가 존속해야 할 까닭이 없다.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하는 것인 만큼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또한 현실성 부족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6.25의 산물이다. ‘종전’이 선언되면 동맹 유지 자체가 당위성을 상실한다. 북한을 겨냥한 군사동맹의 존속을 북한이 절대로 용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또 집요하게 동맹 해체를 요구하고 나설 게 틀림없다. 동맹이 폐지되면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이나 이유도 주장할 수가 없게 된다. 북한이 바라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정부까지 이를 서두르는 배경이나 이유는 뭔가?

더 심각한 걱정거리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북한 비핵화를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로 몰아가려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다. 마치 미국이 맞닥뜨린 재난적 상황에 대해 조언자를 자처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미국을 돕겠다는 뜻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가능하면 김정은의 말을 경청하고 그 입장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인상이다.

“베트남처럼 친미국가로 바뀌면”

지난 12일 문희상 의장을 비롯한 한국 국회대표단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논쟁이 있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 미국 하원의장의 안이한 인식에 한국 대표단이 우려를 표하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다. 한국 대표단, 그 중에서도 문 의장과 더불어민주당‧민주평화당‧정의당 대표 등은 북한 김정은의 ‘진정성’을 펠로시에게 인식시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고, 펠로시 의장은 김정은에 대한 깊은 불신감을 표출하느라 벌인 언쟁성 대화였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예건대 이런 식이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 한국이 기대하는 게 뭐냐?”(펠로시)

“북한이 베트남처럼 미국의 우방, 친미국가로 바뀌면 미국의 국익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느냐. 한국 국민도 탈냉전으로 가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정동영)

“나는 북한을 믿지 않는다. 전 세계를 여행했지만, 북한 주민들의 가난과 비참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부터 북한 정권을 믿을 수 없다.”(펠로시)

“북한은 과거 고난의 행군 시절과는 많이 변했다. 지금 북한은 경제개발을 원할 만큼 많이 달라졌으니 가까운 시일 내 다시 방북해보라.”(이정미)

아마 펠로시는 어이없었을 것이다. 그런 감정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그는 이날 대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진정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을 무장 해제(demilitarization)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당과 그 우호 정당의 리더들은 정말로 김정은 체제의 본질과 속성을 몰라서 그런 훈수를 들었다는 것인가.

한국 국회 대표단의 김정은 역성들기에 지친 듯 펠로시는 “나는 결과를 낙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당신들 이야기처럼 내가 틀리고 당신들이 맞기를 바란다”는 말로 대화를 끝냈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그나마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펠로시와 같은 입장”이라고 분명히 말했다니 약간 위안이 되기는 한다. “핵무기를 이고 사는 처지에 어떻게 저처럼 태평일 수 있을까. 우리가 저 사람들을 돕는 게 잘하는 일일까?” 이런 황당한 기분을 그가 갖지 않았기를 바랄밖에!

≪삽화≫ 이 자리에서 문 의장이 펠로시에게 족자 한 점을 선물했다. 자신이 한자로 쓴 ‘만절필동(萬折必東)’이었다. 황하가 만 번을 굽이쳐도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른다는 뜻이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결국 북한 핵 문제가 잘 풀리고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구축될 것이라는 의미라고 했다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참으로 한심하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이 미국 하원의장에게 준 선물이 하필이면 한자로만 채워진 족자였는가. 우리글이 없어서?

펠로시가 서예에 대해 조예가 깊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글씨 자랑하려고 그걸 선물한 것은 아닐 터이다. 국회의장 쯤 되었으니 자신의 철학을 전해 주고 싶었을까? 그런데 그게 중국의 은혜를 칭송하는 글귀였다니! 정권 측의 높은 분들, 제발 정신 좀 제대로 차리고 삽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데일리안 채널 추가하기
데일리안과 카카오플러스 친구가 되어주세요

존포토

더보기
Go to previous page Go to top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