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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차별 아닌 언어 차별 존재하는 사회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9.02.16 06:00 수정 2019.02.16 06:13

<알쓸신잡-스웨덴㊱>난민 대한 부정적 시각 시민들 증가

스웨덴어 비사용자들이 느끼는 낯섦에서 오는 경계심 심화

<알쓸신잡-스웨덴㊱>난민 대한 부정적 시각 시민들 증가
스웨덴어 비사용자들이 느끼는 낯섦에서 오는 경계심 심화


최근 스웨덴 내에서도 스웨덴어 비사용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전보다 심해지고 있다. '스웨덴에서 살면서 왜 스웨덴어를 배우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 이석원) 최근 스웨덴 내에서도 스웨덴어 비사용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전보다 심해지고 있다. '스웨덴에서 살면서 왜 스웨덴어를 배우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한국인 정남 씨(가명)는 최근 회사 내 분위기가 전 같지 않은 것을 느낀다. 전에는 회사 동료들이 피카(Fika)를 하거나 모여서 담배를 필 때, 그 중에 스웨덴어를 못하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당연하듯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다고 한다. 정남 씨는 아직 스웨덴어를 못한다. 그런데 팀원들이 회의 할 때는 물론 피카를 하거나 함께 밥을 먹을 때도 스웨덴어로만 이야기를 한다. 정남 씨가 “영어로 얘기하자”고 말해야 그제서 영어로 대화를 한단다. 정남 씨는 “이거 혹시 의도적인 인종차별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웨덴에서 1년 반 째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선영 씨(가명)는 최근 단골인 한 의류매장에서 언짢은 경험을 했다. 그 매장 직원이 선영 씨의 체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더라는 것. 키가 작고, 다리의 길이가 짧아서 오늘은 맞는 옷이 없다느니, 피부 색깔이 옷하고 어울리지 않다느니 하는 등등.

선영 씨는 기분이 상했지만 단골이기에 농담 반 진담 반 살짝 웃으며 “너 그거 인종차별처럼 들려”라고 얘기했더니 얼굴을 붉히면서 자기들끼리 스웨덴어로 떠들더란다. 정색을 하면서.

진짜로 기분이 상한 선영 씨는 좀 더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매장 매니저를 찾았고, 매니저에게 “난 지금 인종차별적 처사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했으며 그래서 이를 정식으로 문제 삼을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인종차별 행동이 아니다”고 단언하면서 직원의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스웨덴에서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외국 사람들이 종종 느끼는 이런 일들이 생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에게 너무 친절했던 그들인데 언제인가부터 달라진 눈과 입을 가진 이들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편치 않은 마음을 가지는 한국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해 “시리아를 비롯한 아랍계 난민들과 이민자들 때문에 사회적 분위기가 나빠졌다”고 나름의 분석들을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설득력이 없지 않은 분석이다. 지난 2015년과 2016년 2년에 걸쳐 스웨덴은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의 분쟁 지역 난민들을 15만 명 이상 수용했다. 유럽연합(EU)이 난민 의무할당제를 실시한 이후 스웨덴은 독일에 이어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난민이 아니더라도 스웨덴은 현재 중동 지역 국가들은 물론 인도나 한국과 중국 등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이민 대상국이기도 하다. 그에 따라 매해 적지 않은 ‘이방인’들이 스웨덴에 정착하고 있다. 그러니 이를 바라보는 ‘원래’ 스웨덴 사람들이 불편해 할 수도 있다.

지난 해 9월에 실시된 스웨덴 총선에서 반난민, 반이민 정책을 내건 극우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70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도 이런 스웨덴 시민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

그러다보니 스웨덴 내 거주하는 한국인 사이에서도 스웨덴의 인종차별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이 적지 않게 터져 나온다. 회사는 회사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또 지역 사회는 지역 사회대로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한 인종차별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인종차별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인종차별이라기보다는 언어 차별 정도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실제 이들이 차별하는 것은 피부색으로 대변되는 인종에 대한 차별이라기보다 스웨덴어를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대한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스웨덴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스웨덴은 아직까지 유럽에서도 인종 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로 통한다. 영국과 독일의 언론들이 매년 조사하는 통계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은 아직까지 유럽에서도 인종 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로 통한다. 영국과 독일의 언론들이 매년 조사하는 통계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 (사진 = 이석원)

앞서 스웨덴 회사에서 차별을 느낀 정남 씨는 스웨덴어를 하지 못해서 오는 이질감을 겪고 있다. 오히려 정남 씨보다 외모의 이질감이 더 강한 한 인도인 직원은 스웨덴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로부터 차별을 느끼지 않는다.

선영 씨는 스웨덴의 옴부즈만(Ombudsman)에 문제 제기를 했다.(세계 최초의 옴부즈만 제도는 1909년 스웨덴에서 시작했다.) 옴부즈만에서는 이를 명백한 차별로 규정하고 해당 매장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그 일로 매장 직원을 해고하지는 않았지만, 문제의 매장 직원과 매니저는 수차례에 걸쳐 선영 씨에게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약속을 했다. 해당 매장이 옴부즈만의 감시 아래 모든 직원에 대한 재교육을 강화한 것은 물론이다.

OECD 국가 중 이민자에게 자국어를 국가가 완전 무료로 교육해주는 나라는 아마 스웨덴뿐이다. 스웨덴에는 각 지방정부(Kommun. 코뮨)에서 운영하는 SFI(Svenska för Invandrare.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라는 것이 있다. 완전 무료로 스웨덴어를 배울 수 있다. 심지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은 SFI를 듣는 것만으로도 국가에서 매월 보조금이 지급되기도 한다. ‘자기들의 세계’에 편입된 사람들에 대한 ‘파격적’인 배려인 셈이다.

어떤 경우의 차별이든 차별은 부당하다. 하지만 그 어떤 사회에서도 모든 형태의 차별이 완벽히 차단되지는 않는다. 스웨덴은 지난 20여 년간 외국인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점점 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제대로 세금을 내지도 않고 자신들의 복지 혜택을 공짜로 받고 있다는 ‘오해’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웨덴 복지를 만들고 유지했던 사민당이 정권 유지의 위태로움을 느끼기도 했고, 지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8년 간 실제로 이민 정책에 보수적인 보수 연정에 정권을 내주기도 했다. 지난 총선에서도 겨우 집권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보다도, 같은 유럽에서도 영국이나 프랑스나 독일보다도 이민자들에 대한 포용력이 강하다. 그건 인식만의 문제가 아니고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영주권을 심사하면서 자국어를 강요하지 않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명백한 인종차별을 느낀다면 위의 선영 씨처럼 옴부즈만에 신고하면 된다. 하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스웨덴은 EU에서 수년 째 인종차별이 가장 적은 나라다. 두려움이 적으면 느껴지는 차별도 적다.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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