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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비하 논란의 옥석과 '위훈삭제'

정도원 기자 | 2019-02-12 04:00
5·18 비하 논란, 주장별로 옥석 가려서 살펴야
'유공자' 검증은 개혁파 '위훈삭제'와 일맥상통
"북한군 개입설은 '보수의 역적'이 할 법한 말"


지난 8일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을 위한 자칭 국민대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지난 8일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을 위한 자칭 국민대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조선 중종 때 정국의 핵심 쟁점으로 위훈삭제(僞勳削除) 문제가 있다.

중종을 새 임금으로 추대한 뒤 반정의 주역들이 서로의 자제와 이런저런 지인·측근들을 계속해서 공신으로 추천하고 스스로 심사하니, 거사에는 조금도 참여한 게 없는데 공신록에 오르는 숫자만 불어났다.

심지어 중종 스스로도 "윤탕로는 거사할 때 비록 (도성) 밖에 있어 참여하지 못했으나, 잠저(潛邸)에 있을 때 배종한 수고가 있으니, 녹공하는 게 어떠냐"고 외숙부를 공신으로 추천하고, 조정 신료들은 "거사할 때 탕로는 마침 밖에 있었기 때문에 미처 오지 못했으나 추대하려는 마음은 반드시 다른 이의 배였을 것"이라고 동조하는 등 점입가경의 양상이 펼쳐졌다.

개혁적 소장 세력이었던 사림파는 여기에 칼을 들이댔다. 조광조는 "그다지 공도 없이 함부로 기록된 자들에 사람들이 다 웃는다"며 "도성 문밖에 있으면서 공을 얻고, (중종반정 당시) 겨우 17세인데 원훈에 참여됐으니 통탄할 일"이라고 부르짖었다.

'5·18 비하 논란'으로 정치권이 소란스럽다.

여야 정당이 의원직 제명 논의로 떠들썩하며, 상경 집회에 국회 앞 농성, 면담 요구까지 거세다. 청와대도 이례적으로 국회 몫으로 교섭단체가 추천한 진상조사위원을 돌려보내며 사태를 키우고 있다.

'망언'이라 두루 묶지만, 옥석(玉石)은 구분해야 한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하태경 바른미래당 수석최고위원이 11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말한대로 '보수의 역적'이나 할 법한 망언·망동이다. 반면 유공자의 진위를 검증해보자는 주장은 '진짜 유공자'를 위해서라도 꺼내볼만한 문제제기다.

"거사할 때 도성 밖에 있었지만, 참여하려는 마음이 컸을 것"이라는 이유로 중종반정의 공신이 된 사람처럼,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광주에 있지도 않았고 1980년까지 광주에 한 번 가본 적도 없지만 민주화 유공자가 됐노라고 스스로 실토한 집권여당 핵심 실세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부분은 어디까지가 '유공'인지 우리 사회의 합의를 다시 한 번 구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선 때 공신으로 책봉되면 나라에서 쌀과 비단, 전답과 노비가 나갔듯이, 지금 시대에서도 유공자로 책봉되면 혈세의 지출을 수반하기 때문에 '납세자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으로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위훈삭제 논란이 불거진 중종 14년은 때마침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00년 전인 1519년이다. 500년 전 소장개혁파의 외침만도 못해서야 되겠는가. '진짜 유공자'의 입장에서는, 가짜 유공자가 공훈을 위조해 유공자 명단에 끼어든 것처럼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이 다시 없을 것이다.

징계 대상 거론 의원도 한묶음 매도해선 안 돼
현장 없거나 진솔히 사과한 의원 정상 참작해야
수 개월간 지속·반복 주장한 의원 징계가 마땅


지난 8일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을 위한 자칭 국민대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지난 8일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을 위한 자칭 국민대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반면 '북한군 개입설'은 역대 수 차례의 정부 공식 조사와 법원 판결을 통해 부정된 요설(妖說)이다.

우리로 치면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지내고 있던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행정부장 등 최고위급 인사를 포함한 특수군 600명이 1980년 직접 광주에 침투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국보위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조차 '신동아' 2016년 6월호 인터뷰에서 "뭐라고? 600명이 뭔데?"라며 "나는 오늘 처음 듣는다"고 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 침투설 주장자들은 황장엽 등을 특수부대원으로 몰고 있다"며 "'태양은 동쪽에서 뜬다'는 것처럼 이미 확정된 사안을 두고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은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냐, 아니냐'를 놓고 토론회를 개최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일축했다.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8선의 서청원 의원은 "현장을 직접 취재한 기자로서 600명의 북한군이 와서 광주시민을 부추겼다는 것은 찾아볼 수도 없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그 많은 인원이 육로로 왔단 말인가, 해상으로 왔겠는가"라고 질타했다.

이렇게 보면 헌법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문제제기를 한 의원과 그렇지 않고 잘못된 요언·요설에 부화뇌동해 대의대표로서 품위를 저버리고 소속 정당을 위기로 몰고간 의원에 대한 징계도 달라야 한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이 의원직 제명 대상으로 나란히 거론되는데, 이 중 김진태 의원은 당시 공청회장 현장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김진태 의원은 이날 제주도당에서 가진 당원간담회에서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는데 이의가 없다"며, 문제가 된 공청회는 주최하기는 했지만 참석하지 않았고, 참석자들이 주관적인 말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신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5·18 유공자 명단이 공개가 안 돼서 의구심을 키우고 있으니, 국민 앞에 모든 것을 당당하게 공개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순례 의원은 최고위원으로 출마선언을 한 이튿날에 관례적인 선거운동의 일부로 공청회장에 내빈으로 참석했다가 천수백 명이 모여 있자 군중심리에 휩쓸린 것으로 보인다.

이날 김순례 의원은 "북한군 개입설을 비롯한 각종 5·18 관련 비하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오로지 5·18 유공자 선정기준을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만들어서'허위유공자'를 철저히 걸러내는 것이 '유공자'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동시에 국민과 5·18 민주화 유공자·유족에게 진솔히 사과했다.

김진태·김순례 의원의 해명은 이날 비대위원회의에서 최병길 비대위원이 "북한개입 주장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으로, 자유한국당은 결코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만에 하나라도 순수한 민주화 희생자 이외에 정치적 고려로 희생자로 둔갑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분명히 가려낼 필요가 있다"고 한 발언과 큰 범주에서 다르지 않다.

특정 의원, 前 원내대표 때부터 정치적 부담 줘
現원내대표 모욕한 인사에게 멍석 깔아주기까지
제명 열린 마음으로 논의해 호남에 성의 보여야


지난 8일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을 위한 자칭 국민대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지난 8일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을 위한 자칭 국민대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반면 이 중 한 비례대표 의원은 김성태 전 원내대표 때부터 비대위와 원내지도부가 부담을 느끼는데도 5·18 진상조사위원에 끈질기게 이날 공청회에서 발제를 맡아 물의를 빚은 인물을 추천해 이 사태를 촉발했다.

지난해 12월에 원내대표가 새로 선출되자, 또다시 나경원 원내대표와 문제 인사의 면담을 주선했다. 당을 위해 만나지 못하도록 막아도 모자랄 마당에 다리를 놓아 사달을 초래했다.

결국 제1야당 원내대표의 자택이 이들의 표적이 되고 '미친 여자', '개념 없는 여자', '내가 죽인다', '내 앞에 무릎 꿇리겠다' 등의 '막말'을 듣게끔 만들었다. 해당 비례대표 의원이 소속 정당의 원내대표를 간접정범으로 모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없는 해당행위다.

이도 모자라 소속 정당 원내대표를 공개 모욕한 인사를 의원회관으로 초청해 공청회까지 열어, 그가 당을 파멸로 몰아갈 발언을 하게끔 멍석까지 깔아줬다.

비례대표 의원이기 때문에 해당행위로 출당하면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다. 출당(黜黨)도 아깝다. 지난 원내대표 때부터 꾸준히 벌여온 해당행위를 고려하면, 당장 당원권 정지 징계를 내리고, 해당 의원에 대한 여야 4당의 윤리위 제소와 의원직 제명 논의에 열린 마음으로 응해야 한다.

어차피 비례대표 의원은 제명되더라도 정당의 다음 순번 후보자가 승계하기 때문에, 갑자기 예기치 않은 보궐선거를 치러야 할 일도, 의석이 줄어들어 집권여당 견제에 차질이 생길 일도 없다.

때마침 한국당 비례대표의 차순위 승계 후보자는 전북 김제 출신이다.

20대 총선에서 수십 년만에 어렵게 당선시킨 전남과 전북의 의석을 이정현·정운천 의원의 탈당으로 잃었다. 오랫동안 공들인 당의 서진(西進) 전략이 물거품이 됐다.

명색 제1야당인데 호남권에서는 합동연설회조차 열지 못할 정도로 당세가 위축됐다. 2016년 8·9 전당대회 때 전북 전주 화산체육관을 가득 채운 인파 속에서 명창의 노랫가락에 후보자들이 부채춤을 추며 예향의 멋을 한껏 느끼던 시절이 불과 3년 전인데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당을 파멸로 몰아가는 해당행위를 전현직 원내대표 시절에 걸쳐 오랫동안 꾸준히 반복해온 비례대표 의원을 제명하고, 호남 출신 인사를 새로이 당의 자산으로 등원시킨다면 '5·18 비하 논란'으로 격노한 호남에도 성의 있는 사과가 되지 않을까.[데일리안 = 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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