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언자무죄 문자계’라고 했는데 친절하지 못했던 대통령 답변…대통령의 턱밑에 간관을 둬야 <@IMG1> 또 옛날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경우 한나라 때부터 공직자 감찰제도가 있었다. 부재상격인 어사대부가 감찰권을 행사했다. 중앙 지방 그리고 왕실과 궁정내부까지 감찰 대상이었다. 부(副)어사대부격인 어사중승이 왕실과 궁정을 감찰했는데, 이는 곧 황제에 대한 감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뒷날 어사대 체제가 되자 황제 및 궁정에 대한 감찰 권한은 없어졌다. 그러나 정부 관직 가운데도 황제를 감찰하는 관리가 있었다. 일컬어 간관이라고 했는데 한대(漢代)엔 간의대부로서 광록훈(光祿勳: 광록사의 장관으로 구경 중 하나. 궁전 문을 지키고 황제를 모시는 일을 맡았다)에 속했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간관은 모두 문하성에 속하게 됐다. 해당 관직명으로는 간의대부 습유(拾遺) 보궐(補闕) 사간 정언 등이 있었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가 바로 습유를 지냈다. ‘언자무죄 문자계’라고 했는데 이들은 지위가 높지 않고 권력도 없었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 존중받았다. 젊고 학문에 뛰어난 사람 중에서 선발했다. 기개와 절개가 있고, 정치적 경험은 깊지 않은 사람이 선호됐다. 황제는 문무백관을 만나보는 조회를 빨리 끝내는 대신 재상과 별도로 독대해서 정사를 토론했는데, 이 때 간관이 옆에 앉았다. 재상이 황제에게 직접 말하기 곤란할 때 간관이 말을 시작하고, 황제가 성을 낼 때도 재상 대신 간관이 말을 했다. 간관의 말이 가볍고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이해됐다. 백거이의 시 ‘채시관’에 ‘언자무죄문자계’(言者無罪聞者誡)라는 구절이 있거니와 간관의 경우도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듣는 사람이 경계로 삼을 뿐’이었다(전목, 중국역대정치의 득실). 우리의 옛 왕조들도 물론 간관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임금들로서는 몹시 성가시고 때로는 화도 났겠지만 그래도 제도를 없애지는 않았다. ‘채시관’의 부제 ‘감전왕난망지유야’(監前王亂亡之由也: 선왕들이 난리를 만나 멸망한 까닭을 살피다)만으로도 설명은 부족하지 않을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각본 없는 기자회견을 한다고 언론들이 요란스레 예고했다. 사회자가 따로 없는 타운홀 방식의 회견으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정하고, 즉석 답변을 하는 새로운 방식의 회견일 것이라고 했다. 이런 회견 스타일은 ‘스스럼없는 질문과, 꾸밈없는 답변’을 전제로 한다. ‘물을 것만 묻고 대답할 것만 대답하는’ 형식의 기자회견을 기대했다면 그처럼 요란스레 선전성 예고를 할 일이 아니었다. 경기일보 김예령 기자는 아마 그런 분위기를 예상 또는 기대하며 질문내용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친절하지 못했던 대통령 답변 “경제 기조를 바꾸시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시려는 그런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왜 필요한지 우리 사회의 양극화,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오늘 제가 모두 기자회견문 30분 내내 말씀드린 것이었고. 그래서 그에 대해서 필요한 보완들은 얼마든지 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정책기조는 계속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은 이미 충분히 드렸기 때문에 또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김 기자의 질문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따지듯 물은 것이 대통령에 대해 결례라고 본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으나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해서 의문 나는 점을 질문하는 것이 죄일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은 그리 친절한 편이 못되었다. 많은 국민들이 민생악화 경기부진 기업환경악화를 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정책기조와 그 방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야말로 ‘사람중심 경제’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그렇게 역설했다. 그래서 김 기자가 물은 것 아니겠는가. ‘그 자신감’ 어디서 나오느냐고…. 아마도 문 대통령이 좀 언짢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새로운 답변’을 거부했다. “내가 모두 발언을 할 때는 뭘 했기에 한 말을 또 하게 하느냐”는 기분이었을까? 대통령은 국민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줄 도덕적 정치적 의무를 지고 있다. 그게 민주정치의 요체 가운데 하나다. 질문하기를 주저하게 하는 권력자를 민주적 리더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자신감이냐고 대통령께 들이대다니…. 김예령 기자는 술 먹고 푸념했나?” “언론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국민을 대표해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김예령 기자의 질문을 듣고) 황당했다.” “어떤 자신감이냐고 대통령께 들이댈 때는 경제문제에 대해 수치나 근거를 갖고 질문하고, 해법이 뭐냐 이런 식으로 나왔어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국민이 힘들다’ ‘왜 경제 정책 기조를 안 바꾸냐’는 건, 술 한 잔 먹고 푸념할 때 하는 얘기다.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 전파낭비를 한 게 아쉽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김예령 기자는) 그런 식으로 허비했다. 싸가지 문제보다 실력 부족의 문제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김 기자를 비난하는 언급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을 불쾌하게 했을 것 같은 기자에게 말의 몰매를 보낸 심리적 배경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용기 있는 비판이라고 말해줄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지금은 이른바 ‘심기 경호’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대통령도 당황할 정도의 비판을 면전에서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약속하더니 그만 일로 뭇매질인가. 대통령의 턱밑에 간관을 둬야 간관이 필요한 쪽은 대통령이지 기자가 아니다. 기자가 곧 간관이라고 말하던 때도 있었지만 본질에서 많이 빗나간 인식이다. 간관은 권력자의 턱밑에 있는 관리여야 한다. 관리가 어떻게 대통령을 봉박하느냐고 하겠지만 바로 그 점에 간관제도의 위대성이 있다. 현 집권세력이 여전히 독점 욕구를 과시하고 있는 ‘민주화 투쟁’의 목표가 바로 권력내부의 그 같은 자기 교정 구조였을 듯한데, 아닌가? 어느 여당 의원은 오히려 김 기자를 거들었다. “자기가 이것은 꼭 해야 하겠다 싶으면, 물어뜯어야 기자다. 대통령도 화를 안 냈는데 왜 다른 분들이 화를 내냐. 대통령이 갖고 있는 포용능력이 충분히 된다. 그러니까 ‘기자가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과하게 (화를) 내는 건 동의할 수 없다.” 요란스런 ‘바담 풍’합창 속에 ‘바람 풍’ 독창을 듣는 기분이다. 여당에도 이런 의원이 많이 있어야 정치인 및 정치조직의 자기쇄신과 발전이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반면에 어느 기자 선배라는 사람은 오히려 김 기자를 을러대듯 훈계했다. “이렇게 해서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 국민을 대표로 해서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자리고 영광이다. 조금 더 공부를 하라. 너무 쉽게 상투적인 내용으로 질문하지 말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막강한 행정권력,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말이냐.” 대통령에 대한 질문은 ‘영광’이 아니라 독자나 국민에 대한 기자의 ‘책무’다.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질문에 ‘상투적인 것’은 없다. 어떤 질문이든 질문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대통령 기자회견’이다. 대통령에게 질문하기 위해 더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듣느니 처음이다. 후배 기자에겐 그런 훈계보다 소망스러운 것이 격려다. 중국의 고대왕조 주나라는 민간에서 유행하는 노래와 시를 모으는 일을 담당하는 채시관을 두었다. 그들이 채집한 시가 있었기에 ‘시경’(詩經)이 전해질 수 있었다. 그 속에는 당대 지식인들의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이 담겨졌다. 군주는 그것을 통해 민심을 읽고 자신의 정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게 곧 통치자의 지혜다. 듣기 싫은 말은 안 들을 수 있다. 남의 입을 막고 자신의 귀를 닫으면 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주위에 심기경호원도 촘촘히 배치할 일이다. 그런 다음엔 벌거벗은 임금이 되건, 당나귀 귀를 가진 왕이 되건 비판이나 조소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만 훗날 그로 인한 국정의 실패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건 자신에 의해 초래되는 자신의 실패다. 심기경호원들이 그 책임을 나눠 져 줄까? 천만에! 그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 이게 정치사의 교훈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검색

메인 네비게이션

대통령에게 질문을 잘못하면 몰매를 맞아야 하나요?

이진곤 언론인 | 2019-01-14 08:26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언자무죄 문자계’라고 했는데
친절하지 못했던 대통령 답변…대통령의 턱밑에 간관을 둬야


지난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2019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또 옛날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경우 한나라 때부터 공직자 감찰제도가 있었다. 부재상격인 어사대부가 감찰권을 행사했다. 중앙 지방 그리고 왕실과 궁정내부까지 감찰 대상이었다. 부(副)어사대부격인 어사중승이 왕실과 궁정을 감찰했는데, 이는 곧 황제에 대한 감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뒷날 어사대 체제가 되자 황제 및 궁정에 대한 감찰 권한은 없어졌다.

그러나 정부 관직 가운데도 황제를 감찰하는 관리가 있었다. 일컬어 간관이라고 했는데 한대(漢代)엔 간의대부로서 광록훈(光祿勳: 광록사의 장관으로 구경 중 하나. 궁전 문을 지키고 황제를 모시는 일을 맡았다)에 속했다. 당대(唐代)에 이르러 간관은 모두 문하성에 속하게 됐다. 해당 관직명으로는 간의대부 습유(拾遺) 보궐(補闕) 사간 정언 등이 있었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가 바로 습유를 지냈다.

‘언자무죄 문자계’라고 했는데

이들은 지위가 높지 않고 권력도 없었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 존중받았다. 젊고 학문에 뛰어난 사람 중에서 선발했다. 기개와 절개가 있고, 정치적 경험은 깊지 않은 사람이 선호됐다.

황제는 문무백관을 만나보는 조회를 빨리 끝내는 대신 재상과 별도로 독대해서 정사를 토론했는데, 이 때 간관이 옆에 앉았다. 재상이 황제에게 직접 말하기 곤란할 때 간관이 말을 시작하고, 황제가 성을 낼 때도 재상 대신 간관이 말을 했다. 간관의 말이 가볍고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이해됐다. 백거이의 시 ‘채시관’에 ‘언자무죄문자계’(言者無罪聞者誡)라는 구절이 있거니와 간관의 경우도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듣는 사람이 경계로 삼을 뿐’이었다(전목, 중국역대정치의 득실).

우리의 옛 왕조들도 물론 간관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임금들로서는 몹시 성가시고 때로는 화도 났겠지만 그래도 제도를 없애지는 않았다. ‘채시관’의 부제 ‘감전왕난망지유야’(監前王亂亡之由也: 선왕들이 난리를 만나 멸망한 까닭을 살피다)만으로도 설명은 부족하지 않을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각본 없는 기자회견을 한다고 언론들이 요란스레 예고했다. 사회자가 따로 없는 타운홀 방식의 회견으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정하고, 즉석 답변을 하는 새로운 방식의 회견일 것이라고 했다. 이런 회견 스타일은 ‘스스럼없는 질문과, 꾸밈없는 답변’을 전제로 한다. ‘물을 것만 묻고 대답할 것만 대답하는’ 형식의 기자회견을 기대했다면 그처럼 요란스레 선전성 예고를 할 일이 아니었다.

경기일보 김예령 기자는 아마 그런 분위기를 예상 또는 기대하며 질문내용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친절하지 못했던 대통령 답변

“경제 기조를 바꾸시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시려는 그런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왜 필요한지 우리 사회의 양극화,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오늘 제가 모두 기자회견문 30분 내내 말씀드린 것이었고. 그래서 그에 대해서 필요한 보완들은 얼마든지 해야 하겠지만 오히려 정책기조는 계속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은 이미 충분히 드렸기 때문에 또 새로운 답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김 기자의 질문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따지듯 물은 것이 대통령에 대해 결례라고 본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으나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해서 의문 나는 점을 질문하는 것이 죄일 수는 없다. 이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은 그리 친절한 편이 못되었다.

많은 국민들이 민생악화 경기부진 기업환경악화를 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정책기조와 그 방향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야말로 ‘사람중심 경제’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그렇게 역설했다. 그래서 김 기자가 물은 것 아니겠는가. ‘그 자신감’ 어디서 나오느냐고….

아마도 문 대통령이 좀 언짢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새로운 답변’을 거부했다. “내가 모두 발언을 할 때는 뭘 했기에 한 말을 또 하게 하느냐”는 기분이었을까? 대통령은 국민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줄 도덕적 정치적 의무를 지고 있다. 그게 민주정치의 요체 가운데 하나다. 질문하기를 주저하게 하는 권력자를 민주적 리더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자신감이냐고 대통령께 들이대다니…. 김예령 기자는 술 먹고 푸념했나?” “언론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국민을 대표해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김예령 기자의 질문을 듣고) 황당했다.” “어떤 자신감이냐고 대통령께 들이댈 때는 경제문제에 대해 수치나 근거를 갖고 질문하고, 해법이 뭐냐 이런 식으로 나왔어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국민이 힘들다’ ‘왜 경제 정책 기조를 안 바꾸냐’는 건, 술 한 잔 먹고 푸념할 때 하는 얘기다.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 전파낭비를 한 게 아쉽다.” “대통령에게 질문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김예령 기자는) 그런 식으로 허비했다. 싸가지 문제보다 실력 부족의 문제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김 기자를 비난하는 언급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을 불쾌하게 했을 것 같은 기자에게 말의 몰매를 보낸 심리적 배경은 능히 짐작할 만하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용기 있는 비판이라고 말해줄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지금은 이른바 ‘심기 경호’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대통령도 당황할 정도의 비판을 면전에서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약속하더니 그만 일로 뭇매질인가.

대통령의 턱밑에 간관을 둬야

간관이 필요한 쪽은 대통령이지 기자가 아니다. 기자가 곧 간관이라고 말하던 때도 있었지만 본질에서 많이 빗나간 인식이다. 간관은 권력자의 턱밑에 있는 관리여야 한다. 관리가 어떻게 대통령을 봉박하느냐고 하겠지만 바로 그 점에 간관제도의 위대성이 있다. 현 집권세력이 여전히 독점 욕구를 과시하고 있는 ‘민주화 투쟁’의 목표가 바로 권력내부의 그 같은 자기 교정 구조였을 듯한데, 아닌가?

어느 여당 의원은 오히려 김 기자를 거들었다.

“자기가 이것은 꼭 해야 하겠다 싶으면, 물어뜯어야 기자다. 대통령도 화를 안 냈는데 왜 다른 분들이 화를 내냐. 대통령이 갖고 있는 포용능력이 충분히 된다. 그러니까 ‘기자가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과하게 (화를) 내는 건 동의할 수 없다.”

요란스런 ‘바담 풍’합창 속에 ‘바람 풍’ 독창을 듣는 기분이다. 여당에도 이런 의원이 많이 있어야 정치인 및 정치조직의 자기쇄신과 발전이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반면에 어느 기자 선배라는 사람은 오히려 김 기자를 을러대듯 훈계했다.

“이렇게 해서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 국민을 대표로 해서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자리고 영광이다. 조금 더 공부를 하라. 너무 쉽게 상투적인 내용으로 질문하지 말고. 그렇게 해서 어떻게 막강한 행정권력,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말이냐.”

대통령에 대한 질문은 ‘영광’이 아니라 독자나 국민에 대한 기자의 ‘책무’다.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질문에 ‘상투적인 것’은 없다. 어떤 질문이든 질문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대통령 기자회견’이다. 대통령에게 질문하기 위해 더 공부해야 한다는 말은 듣느니 처음이다. 후배 기자에겐 그런 훈계보다 소망스러운 것이 격려다.

중국의 고대왕조 주나라는 민간에서 유행하는 노래와 시를 모으는 일을 담당하는 채시관을 두었다. 그들이 채집한 시가 있었기에 ‘시경’(詩經)이 전해질 수 있었다. 그 속에는 당대 지식인들의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이 담겨졌다. 군주는 그것을 통해 민심을 읽고 자신의 정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게 곧 통치자의 지혜다.

듣기 싫은 말은 안 들을 수 있다. 남의 입을 막고 자신의 귀를 닫으면 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주위에 심기경호원도 촘촘히 배치할 일이다. 그런 다음엔 벌거벗은 임금이 되건, 당나귀 귀를 가진 왕이 되건 비판이나 조소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만 훗날 그로 인한 국정의 실패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건 자신에 의해 초래되는 자신의 실패다. 심기경호원들이 그 책임을 나눠 져 줄까? 천만에! 그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 이게 정치사의 교훈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데일리안 채널 추가하기
데일리안과 카카오플러스 친구가 되어주세요

끝FUN왕

더보기
Go to previous page Go to top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