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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t Korea] '보수 민심'의 향배를 찾아서

정도원 기자
입력 2019.01.01 04:00 수정 2019.01.04 16:38

민주당에 기대 건 중도보수, 오만과 무능에 이탈

'보수대체' 노리던 바른미래 통합 구상도 좌초

한국당, 선거에서 이길 가치·좌표 설정 '절실'

文대통령·민주당에 기대 걸었던 중도보수 일각
오만과 경제무능에 지쳐 이탈…文 40%대로 복귀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희망을 머금은 황금빛 태양을 발판삼아  힘차게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새해에는  정치,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사회의 모든 요소가 안전하게 도약해 순항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지난 12월 2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인근에서 촬영)ⓒ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희망을 머금은 황금빛 태양을 발판삼아 힘차게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새해에는 정치,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사회의 모든 요소가 안전하게 도약해 순항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지난 12월 2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인근에서 촬영)ⓒ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자유한국당은 2019년 새해, 보수의 지지를 받던 원래의 외연을 복원할 수 있을까.

지난 2016년 10월, 국정을 농락한 최순실 씨의 존재가 폭로된 이후 2년여간 계속됐던 보수 민심의 방황도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그사이 '집토끼'를 노리던 여러 세력들은 번번이 보수 민심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

최순실의 국정농락과 뒤이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보수 분열을 거치면서 한때 보수의 공통분모였던 중도보수층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기대를 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재인 대통령(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지난해 1월 2일 설문에서 70.8%로 시작했다.

우리 국민의 정치성향을 '보수40·중도20·진보40'으로 분류하는 전통적 시각으로 보면, 국정지지율이 70%대를 넘어 80%에 육박했다는 것은 일부 보수진영에서도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마음을 줬었다는 뜻이 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씽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중순 '대한민국 중심정당의 길'이라는 소책자를 냈다.

이 책자에서 민주연구원은 "보수정당은 극단적 이념층만을 대변하는 주변정당이 됐고, 민주당은 진보성향 유권자의 압도적 지지와 함께 중도성향의 대다수, 나아가 보수성향에서 경쟁가능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중심정당이 됐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치의 중심·주변정당 체제로의 재편을 전망하며 "여당은 사실상 여야의 역할을 모두 함으로써 여야 정권교체가 중심정당 내에서 일어나는 1.5당, 야당은 수권능력을 상실한 항의정당이자 대권이 아니라 당권에 집착하는 불임정당으로 전락한 0.5당"이라고 설명했다.

보수 성향의 일부까지 민주당의 범주 내로 포섭함으로써 정권교체가 민주당의 계파 내에서 일어나는 형태로의 장기집권을 노린 것이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당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당내 우파,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을 당내 좌파로 놓고, 당내에서 좌우가 바뀌며 집권하는 게 중심정당"이라고 구상했다.

이처럼 보수 민심의 일부까지 차지해 '1.5당 체제'를 구현하겠다는 민주당의 야심은 채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오만과 무능으로 허물어졌다.

12월 예산안 처리 민주·한국 '짬짜미'의 의미
민주, '적대적 공생 관계'의 양당제 복귀 선택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8월 25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직후, 추미애 전 대표로부터 당기를 건네받아 휘날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8월 25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직후, 추미애 전 대표로부터 당기를 건네받아 휘날리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폭 연루 의혹에 휩싸인 은수미 당시 성남시장 후보는 자신의 의혹을 향한 취재진의 질문에 돌연 "대통령 지지율이 80%에 육박하는 시기"라며 "즐겁고 축제같은 선거여야 한다"고 답했다.

은수미 후보 본인은 성남시장에 당선됐지만, 진보·보수와 관계없는 도덕적 의혹을 돌파하면서도 '대통령 지지율'을 소진하는 행태는 민주당의 중심정당으로의 도약 잠재력을 빠르게 소모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해 8·25 전당대회에서 보수층이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이해찬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된 것도 보수 일각까지 포섭하는 '중심정당'으로서의 민주당의 가능성을 일소에 부쳤다. "보수 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말했던 이 대표와 같은 지붕 아래에 있을 보수층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오만하더라도 유능했더라면 그 오만은 오만이 아닌 자신감으로 포장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극도의 무능이 오만의 뒤를 따랐다. 보수 민심의 양대 관심사는 경제와 안보로 칭해진다. 대체로 중도보수는 경제, 전통적 보수는 안보에 관심이 많다.

이 중 안보 관심층은 민주당의 포섭 전략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경제에 관심이 많은 중도보수층은 반드시 잡았어야 보수 민심의 일부를 가지고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의 획일적 시행, 탄력근로제 확대 거부, 친노조·반기업으로 일관하는 경제정책이 문제였다.

게다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이니 자신있게 설명하라"는 말로 시작해서, 한 해의 마지막까지 "성과가 있는데도 '경제 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어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끝맺은 문 대통령의 경제 인식은 중도보수층의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월 30일 설문에서 74.1%로 정점을 찍었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마지막 조사였던 12월 24~25일 설문에서 42.9%로 주저앉았다. 원래 자신의 영역이던 진보 40%로 되돌아간 셈이다. 보수 민심마저 품겠다던 야심찬 '중심·주변정당론', '1.5당 체제'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12월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이 소수정당들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요구를 받느니 차라리 한국당에 손을 내밀어 '짬짜미'를 한 것은 적대적 공생 관계로의 복귀를 모색한 것"이라며 "중심·주변정당체제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 보수 민심과 진보 민심을 결집해먹는 '적대적 공생'의 양당제를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보수 민심 노리고 달려든 안철수·유승민 통합
"보수에서 제일 큰 정당으로 총선" 장밋빛 기대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와 유승민 전 대표가 지난해 1월 18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통합 공동선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와 유승민 전 대표가 지난해 1월 18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통합 공동선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보수 민심을 향해 달려든 또 다른의 세력은 바른미래당이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이끌며 치렀던 지난 2017년 대선의 패배로 한계를 절감했다. 호남 표심을 의식해 끝까지 한국당과의 후보단일화를 거부했다. 심지어 홍준표 당시 대선후보를 향해 "얼굴을 보지 않고 말씀드리겠다"고까지 했지만, 호남은 결국 문 대통령을 선택했다.

유승민 의원을 향해 적극적으로 구애한 것은 결국 유 의원을 징검다리 삼아 보수로 건너가겠다는 의미였다. 양당 통합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바른미래당의 한 의원은 "결국 제대로 된 보수를 우리가 해보겠다는 뜻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1월 18일, 안철수·유승민 전 대표가 함께 국회 정론관으로 나아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중도"를 공동으로 선언한 것은 안 전 대표 본인이 중도보수로 이동하겠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었다.

통합을 마친 유 의원은 지난해 3월경 기대섞인 희망을 가졌다. 유 의원은 "지방선거가 끝나면 자유한국당은 정말 더 망할 것"이라며 "한국당이 부서져 바른미래당이 상당 부분 흡수해 보수에게 제일 큰 정당이 되면, 그 상태에서 총선을 치르는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 의원실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중심·주변정당체제를 꿈꿨던 민주당보다 한국당에게 더욱 위협적인 구상이었다"며 "민주당은 한국당에게 0.5당의 지위는 용인해주겠다는 구상이었지만, 바른미래당은 아예 한국당이 갖고 있는 보수대표정당의 자리를 빼앗고 보수 민심을 가져오겠다는 야심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작 안철수 전 대표의 움직임이 분명치 않았던 게 문제였다. 모순이 분명히 드러났던 것은 그 자신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6·13 지방선거 때였다.

안철수 '갈짓자 행보' 끝 '보수대체'구상 좌초
"1루에서 발 떼지 않고 2루 도루할 수 있느냐"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는 지난해 6·13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냈으나, 2017년 대선 때와 동일한 전철을 밟으며 3위에 그쳤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대표는 지난해 6·13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냈으나, 2017년 대선 때와 동일한 전철을 밟으며 3위에 그쳤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선 때와 달리 안철수 전 대표는 물밑에서 김문수 한국당 당시 서울시장 후보와의 단일화 교섭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러면서도 단일화의 형태는 김 후보가 자신을 위해 일방적으로 후보를 양보해주는 형식을 원했다.

단일화 '딜'을 하게 되면 잃게 될 표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문수 후보와의 회동 사실이 보도되자 박주선·주승용·김동철 의원 등은 반발했는데, 이들 뿐만 아니라 서울의 호남 출향민들의 표도 잃을 판이었다.

바른미래당의 한 의원은 "보수 쪽으로 발을 옮겨딛으려고 하면서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중도~중도진보도 계속 유지하려고 과욕을 부렸다"며 "1루에서 발을 떼지 않고 2루로 도루하려 한 꼴이었으니, 될 수가 있었겠느냐. 그게 안철수의 한계"라고 혀를 찼다.

'정치 9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당시 안철수 전 대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국민의당을 깰 때, 이미 이런 로드맵이 있었을 것이다. 김문수·안철수 두 후보는 단일화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걸 관철하지 않으면 굳이 멀쩡한 당을 깨고 보수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전 대표의 '갈짓자 행보'는 '정치 9단'의 예측마저 어긋나게 했다.

안 전 대표는 김문수 후보와 결국 후보단일화를 하지 못했고, 대선 때 3등을 했던 전철을 정확하게 따라밟으며 똑같은 방식으로 또다시 3등을 했다. 보수 민심을 얻는데 실패한 것이다.

6·13 지방선거 이후 새로 당을 이끌게 된 손학규 대표는 '보수'라는 단어를 입에 선뜻 올리지 못하며, 개혁 등으로 우회 표현하고 있다. 보수대표정당의 자리를 대체하겠다던 애초의 전략이 좌초했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연말에 이학재 의원의 탈당을 시작으로, 이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이나 신용한 전 충북도지사 후보 등 봇물터지듯 탈당 행렬이 이어진 것은 보수대체전략의 파탄에 따라 보수 인사들이 당을 나가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경쟁자 자기파탄에 한국당 돌아오는 '보수민심'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가치·좌표' 설정 절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함께 손을 맞잡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처럼 지난 한 해, 보수 민심을 빼앗으려 달려들던 경쟁자들이 스스로 넘어지는 자기파탄의 결과, 보수 민심은 좋든 싫든 자유한국당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29일 설문에서 16.1%로 시작했던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은 6월 18~19일 설문에서 14.3%로 바닥을 치고, 마지막 설문이었던 12월 24~25일 설문에서는 24.0%까지 급등했다.

기사 중에 인용한 대통령·정당 지지율 등 모든 여론조사는 데일리안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가 설문했으며,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나 알앤써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 당의 지지율이 24.0%까지 올랐다지만, 중도보수까지 포함하는 원래의 외연을 되찾았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며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과 1대1 양당 경쟁 체제를 복원하려면, 올해 '보수의 가치'의 확실한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한 해는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가며 길을 찾는 여정이었다. 6·13 지방선거 이후 난파선의 키를 잡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아이노믹스(경제)·아이폴리틱스(정치)·평화이니셔티브(남북) 등의 구상을 연이어 발표했다.

김 위원장이 불을 붙인 당 가치·정체성 논쟁은 12월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경선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정용기 한국당 신임 정책위의장은 선출 직후 가진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보수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가치로 △투명한 보수 △유능한 보수 △따뜻한 보수 △로하스(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보수를 제시했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보수의 가치 논쟁이 새해에도 계속되는 것은 좋지만, 그 가치는 국민 다수의 공감을 얻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가치여야 한다"며 "선거에 지고나서 그래도 옳은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넋두리"라고 일축했다.

보수 민심의 향배 또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보수 정당의 존재와 떼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국당의 유력 정치인인 4선 중진 정진석 의원은 일찍이 "정치는 곧 선거"라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선거라는 것이 정치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새로운 좌표도 선거를 통해서 생긴다"고 단언했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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