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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③] 숙청의 희생자들…421명 이상

이배운 기자 | 2018-12-13 05: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앞두고 한국에 때 아닌 '김정은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시민환영단·백두칭송위원회 등 환영단체가 우후죽순 등장했고, 급기야 광화문 광장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위인이다"는 외침이 울렸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은 한반도 비핵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 김씨 일가의 손에 묻은 희생자들의 피는 씻을 수 없을 정도로 짙으며, 김정은은 그에 따른 사죄는커녕 오히려 남한에 책임을 지우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왜 김정은이 환영 받을 수 없으며, 또 그래야만 하는지 김씨 일가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을 헤아려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①] 전쟁으로 죽어간 희생자들
[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②] 테러로 죽어간 희생자들
[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③] 숙청의 희생자들
[김정은, 환영할 수 없는자④] 앞으로 죽어갈 희생자들

2013년 12월 13일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장성택 재판 현장. ⓒ노동신문2013년 12월 13일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장성택 재판 현장.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오늘 밤에도 잠자리를 뒤척일 가능성이 높다. 아침에 충성을 맹세한 부하가 내일 새벽에 총부리를 겨누지는 않을까 늘 근심걱정에 시달리는 탓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집권 전에는 비교적 날씬한 체형이있던 김정은이 집권 이후에 급격하게 살이 찐 것은 반란에 대한 스트레스가 누적된 탓이라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3대 세습 독재자로 태생적으로 정통성이 취약하다. 비교적 안정적인 승계절차를 거쳤던 아버지 김정일과 달리 권력이양이 급격하게 이뤄졌고 후계자 교육기간도 짧았다. 김정일 사후에 북한 내부붕괴론이 불거졌던 이유다.

김정은은 취약한 정통성을 극복하고 강건한 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역사속의 독재자, 그리고 아버지의 권력 유지 방법인 ‘공포정치’를 그대로 답습했다. 집권하자마자 잠재적인 도전 요인을 가차 없이 처단하고, 권력 엘리트를 신진 세력으로 재구성했다.

공포의 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잔인한 처형 방식을 사용했고, 때로는 친인척 처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복형 김정남이 맹독성 화학물질에 암살당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누군가의 증언에 그쳤던 잔혹함을 온 국제사회가 직시하게 됐다.

지난해 2월 한 말레이시아 시민이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 1면에 실린 김정남의 피살 직후 모습이 담긴 신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지난해 2월 한 말레이시아 시민이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 1면에 실린 김정남의 피살 직후 모습이 담긴 신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사회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김정은이 ‘자기 사람’을 얼마나 죽였는지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탈북민 출신 학자인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김정은 집권이후 고위층 인사만 최소 421명이 처형당했다고 추산했다.

강철환 대표는 “고위탈북자 14명의 서면·심층인터뷰, 중국 현지 관계자 7명의 정보, 북한 처형장에서 일했던 탈북자의 정보, 이외 탈북자 3명의 목격을 취합한 것”이라며 “이들 25명이 알고 있는 사례에 국한되고 이름·직책이 확인된 것만 추린 만큼 실제 희생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성택 처형 당시만 해도 북한 당국 내 조직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다”며 “카운팅 방식에 따라 처형된 사람만 300명 이상이고 숙청자만 수만명에 달할 수 있지만 이름과 직책이 확인되지 않았으니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2016년 말에 펴낸 ‘김정은 집권 5년 실정 백서’에서 김정은 집권 5년간 총살·숙청된 인원이 340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백서에 따르면 숙청 인원은 해마다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으며 2016년 한 해 동안만 고위간부와 일반 주민을 포함해 140여명을 처형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공포정치의 역설은 피지배자들이 공포를 느끼는 만큼 지배자 또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포정치는 일단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피지배자들을 옭아매는 ‘공포심’이 조금이라도 약화되는 순간 불만세력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늘밤에도 김정은이 잠을 설치게 되는 이유다.

시간이 지나면 공포심도 흐려지기 마련이다. 즉 공포정치는 주기적으로 피를 뿌려야만 그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이 권력을 포기하거나 통치체제를 개혁하지 않는 이상, 피와 공포의 행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주듯이 공포는 영원할 수 없다. 고려시대 광종은 왕권강화를 위해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했고, 조선시대 연산군은 간언하는 신하들을 족족 베어내 절대왕권을 구축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로베스피에르는 수많은 민중과 의원들을 단두대로 밀어 넣었고, 소련의 스탈린은 대숙청을 통해 강철의 권력을 구축했다.

이들의 말로는 대부분 비극이었고, 학살의 후폭풍으로 오히려 민족의 미래를 짓밟았다는 역사의 심판을 면치 못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반란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려 늘 발작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기록도 다수 전해진다.

2011년 반정부 시위로 사살당한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 ⓒPsychology Today 2011년 반정부 시위로 사살당한 리비아의 전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 ⓒPsychology Today

한편 전문가들은 북한의 혁명 발발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독재 정권은 억압 및 통제로 유지되는 탓에 정권에 대한 여론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탓이다. 정권에 대한 불만이 깊을수록 불만 여론의 분출 여파는 돌발적 상황으로 이어진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북한 혁명의 시작은 김정은 개인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독재자가 과욕을 부리거나 변화를 시도할 경우 통제 불능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장 센터장은 “체제의 운명이 한 개인에게 과도하게 의존된 경우 그 개인이 보여주는 작은 변화에도 체제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며 “독재자의 새로운 변화 시도는 주변 엘리트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맹목적인 충성경쟁을 벌이던 북한 엘리트 전체가 김 위원장의 변화 시도에 불안감을 갖고 변심과 이탈의 추세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며 “정권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믿음이 엘리트 사이에 퍼지기 시작하면 예상보다 빠르게 연쇄적으로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관측했다. [데일리안 = 이배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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