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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간성, 그들의 명예를 존중하시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8.12.10 09:00 수정 2018.12.10 08:35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풍화돼 흔적조차 사라진 그들

장군들에게 모멸감을 안기면…권력의 세기는 시간과 반비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풍화돼 흔적조차 사라진 그들
장군들에게 모멸감을 안기면…권력의 세기는 시간과 반비례


송영무 국방부 장관 및 주요 지휘관들이 지난 2017년 12월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2017년 연말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송영무 국방부 장관 및 주요 지휘관들이 지난 2017년 12월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2017년 연말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군인은 영예로워야 한다. 어느 누구도 군인의 영예를 훼손시킬 수 있는 권한이나 권력을 갖지 않았다. 국민 모두는 그들의 영예를 지켜줘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단 GP에 전시된 유해‧수통‧철모‧M1총신 등을 보며 온 몸으로 느낀 것이 그 의무의 무게다. ‘한때는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아들이었던 분들’이 거기서 백골로 누웠거나 이미 풍화되어 흔적조차 사라졌다.

풍화돼 흔적조차 사라진 그들

“(전략)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후략)”
조지훈의 종군 시 “다부원에서” 한 부분이다. 시의 후반부는 이렇게 이어진다.
“(전략)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그 모진 운명을 그분들은 온몸으로, 마침내 목숨으로 감당해야 했다.

유해발굴단 GP에서 조금 멀리 건너다보이는 곳에 백마고지가 있다. 산의 형상이 말 같아서 붙였다는 이름이라는데, 포격이 너무 심해 풀 한 포기 제대로 남기지 못한 채 허연 속살을 다 드러냈다고 해서 ‘백마’고지라 했다던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화살머리 고지, 공작새 능선, 백마고지 일대에서, 조국의 이름으로 목숨을 바쳤을까를 생각하면 고맙고 죄송하고 안타깝고 애절한 생각이 마음속에 회오리를 일으킨다.

그곳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는 이들을 포함, 우리의 모든 군인들 또한 유사시엔 그분들의 뒤를 따를 호국의 간성들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칠 것을 서약한 용사들이다. 그들이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하루인들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것이며, 두발 편히 뻗고 잠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군인들은 소중히 여겨지고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건 그들의 당연한 몫이고, 국민들의 마땅한 도리다.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지난 7일 지인의 사무실이 있는 송파구 문정동 법조타운의 한 건물에서 투신 사망했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이었다. 그 나흘 전, 그러니까 3일 그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했다. 수갑을 찬 채 법정으로 가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예비역 3성 장군이 이른바 ‘은팔찌’를 끼고 수사관에 이끌려 카메라정글을 헤쳐 나가던 심정이 어땠을까?

영장실질심사에 나가는 것일 뿐이었는데, 굳이 수갑을 채울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 많다.

그날 법원은 검찰의 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엄청난 중죄인이나 되는 듯이 요란하게 끌고 갔지만 구속 요건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으면서도 검찰은 당당하다. “법적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던가. ‘인간중심’을 내세우는 정권의 검찰이 ‘적법성’으로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는 기가 질릴 수밖에 없다. 담당 검사는 단 한번이라도 피의자의 처지에 자신을 세워본 적이 있었을까?

장군들에게 모멸감을 안기면

인간이 계급으로 구분될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말단 사병이라도 인권‧인격이라는 점에서는 장군과 차별 당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사병에게도 모욕을 줘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장군이랴!” 장군에게 모멸감을 안기면 그 수치감은 휘하 모든 장병에게 전해진다. 군대는 상하 일체성이 강조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장군 한 사람을 만들어내는데 얼마나 많이 시간과 비용이 드는지 모를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게 키운 장군 내동댕이치기를 이처럼 쉽게 하다니! 하긴 국민직선의 대통령을 구속하고 아주 쉽게 중형을 구형하는 문재인 정권의 검찰이다. 혁명정부라고 스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말하자면 혁명검찰이라 하겠다. 그래도 그렇지! 장군을 이렇게 대하면서 군이 명예롭게 임무를 수행하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장군의 죄는 덮어주라는 게 아니다. 죄가 확인될 때까지 예우를 갖춘다고 문제될 게 뭔가. 박정희 정권 이후 승승장구하던 장군들은 김영삼 집권으로 수난기에 들어섰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10일만이던 1993년 3월 8일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하나회 회원이라고 해서 전격 경질했다. 그 직후에 소집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그는 “어떻노, 다들 놀랬제?”라며 미소를 지은 것으로 알려졌었다.

아마 YS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을 시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의 명분으로 전직 대통령 두 명을 비롯, 군 출신 인사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감행했다. 이후 군의 위세는 크게 꺾였다. 특히 장군들의 위상이 심하게 저하됐다. 그래서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법치주의의 요체는 ‘법 앞의 평등’이다. 그 점에서는 장군들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그렇더라도 그 명예는 중히 여겨져야 한다.

그러잖아도 국방‧안보에 대한 정권 측의 인식과 정책이 크게 변하고 있는 시절이다. 주적(主敵)을 잃어버린 군은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다. ‘필승’보다는 ‘평화’를 강조해야 하는 아주 희한한 시대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고 있는 군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 분위기 속에서 어느 예비역 장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명예를 지킬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에 대한 혐의 내용은 알지 못한다. 그 때문에 그의 무죄를 주장해 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의 명예를 위해서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대한민국의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범법자를 옹호하자는 것인가?”라고 따질 생각은 마시라. 대한민국과 그 국민들이 키운 장군의 명예를 국민 아니고 누가 지켜주겠는가.

물론 다른 공직도 중요하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역시 국리민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군인처럼 목숨을 국가에 바치고 근무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군인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특별한 존경과 배려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 기무사령관은 판사 앞에 서기도 전에 검찰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당한 셈이 됐다. ‘자살’이었음을 강조하겠지만 충분한 배려가 주어졌는데도 그랬을까?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수갑 채우기’였으니 그의 죽음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변명 같은 것은 제발이지 듣고 싶지 않다.

권력의 세기는 시간과 반비례

‘인간중심’의 나라를 만들겠다니까 말인데 피의자가 수사 도중에 자살하는 일이 더는 없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장군의 경우만이 아니다. 정치민주화 이후에 유사한 경우가 너무 많이 빚어졌다. 정권 차원의 ‘과거 정부 청산작업’은 필연적으로 무리수를 동반한다. 청산작업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상대를 거악(巨惡)으로 몰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거악에 대해서는 당연히 가혹한 책임추궁과 단죄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정부 때의 적폐를 설거지 하다보면 그릇을 깨뜨릴 수도 있는 것이지, 그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심사가 되어선 곤란하다. 그러다보면 감정은 무디어지고 오히려 적폐청산에 대한 사명감만 부풀어 오르게 된다. 정권 핵심부의 어느 누구도, 적폐청산 수사과정에서 피의자가 자살한 경우들에 대해 진지한 유감표시가 없는 게 바로 그 같은 심리의 반영이 아닐까?

특히 YS정권 때 뚜렷했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사정(司正) 위주의 개혁작업은 국민 정서의 피로감을 유발한다. 처음엔 박수를 보내던 국민이 언젠가부터 돌아서고 만다. 아마 현 정부의 책임자들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적폐청산을 매듭짓고 싶다고 하겠지만 한번 관성이 붙으면 멈춰서기는 어렵다. 그러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고 만다. 역대 정권이 임기 후반기가 되면 어김없이 레임덕에 직면하는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장군은 유서에서 “떳떳하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사고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그는 밝혔다. 검찰 수사가 계속되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건 검찰의 몫이고 사법적 판단의 영역이니까 가타부타할 까닭이 없다.

다만 정권의 핵심인사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징벌로 정적을 다스리고 항복받으려 해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권력의 강도(强度)는 시간과 반비례한다.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아는 게 곧 지혜다. 인간세상은 집권세력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다단하다. 세상을 완전히 개조하겠다는 것은 과욕이고 만용이다.

특히 군에 대해서는 징벌적 청산작업을 자제해야 한다. 군대의 사기를 꺾어 방어력을 약화시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되고 만다. 평화는 그걸 지켜낼 능력이 있을 때에만 누릴 수 있다. 전쟁을 피해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쟁을 피해 가는 길 앞에 놓인 것은 굴종이다. 자유인으로서의 평화를 지키고 누리려면 전쟁 위험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그 맞설 수 있는 힘이 군사력이고 그 주체가 군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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