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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서 백두칭송위원회 결성이라니

이진곤 전 언론인 | 2018-11-12 08:25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귤 선물 보내자고 군 수송기 동원
북 인권결의안 채택 참여는 다행…재연되는 권위주의적 통치행태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백두칭송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에서 회원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꽃을 흔들고 있다.@국민주권연대 SNS 자료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백두칭송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에서 회원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꽃을 흔들고 있다.@국민주권연대 SNS 자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우리 정부는 유엔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참여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07년 결의안 표결 시 기권을, 비서실장으로서 결정했느냐, 유도했느냐, 아니면 전혀 관여치 않았느냐를 싸고 지난 대선 기간 내내 큰 논란이 일었던 것을 감안하면 정권 측의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하겠다.

물론 북한 김정은 집단을 곤경에 빠뜨리는데 앞장설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지난 1월부터 적극화한 문 정부의 대북친화정책은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사상 최초의 미‧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그 연장선상에서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군수송기 4대가 제주산 귤 200톤을 평양 순안공항으로 실어 날랐다. 9월 정상회담 때 북측이 송이버섯 2톤을 선물한 데 대한 답례 성격이라고 했다. 쌍방의 일찍이 없었던 친애(親愛) 과시였다.

귤 선물 보내자고 군 수송기 동원

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문 대통령이다. 9월 19일 평양 능라경기장에서 그는 15만 북한 주민을 앞에 두고 연설을 했다.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소개로 여러분에게 인사말을 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는 김정은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새삼 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는 인권부재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참상을 염두에 뒀더라면 독재자 김정은에게 그처럼 과도한 찬사를 보냈겠는가(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 5,000만 국민에 대한 책임의식이 손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남쪽 대통령’이라는 자기 부정적 표현을 구사했을 리도 없지 않았겠는가).

어쨌든 한국 정부는 “북한인권결의안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밝혔었다. 당연하지만 바람직한 자세임에는 틀림없다. 아무리 남북 당국 간의 관계개선, 나아가 친선관계 구축이 절실한 과제라고 하더라도 인권이 배제된 상태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통일 또한 마찬가지다. 민족구성원들의 인권이 최대한 존중되는 조건 하에서의 통일일 때에만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유엔총회에서 인권문제를 담당하는 제3위원회가 지난 6일 홈페이지에 게시한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에는 “현재 진행 중인 남북의 외교적 노력을 환영하고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과 중요성에 주목하면서 2018년 8월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환영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이산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인도적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한 지난 9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환영하는 조항도 들어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 등이 작성한 초안이지만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인상이 짙다. 아마도 외교적 노력이 기울여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런 ‘고심의 흔적’이 북한에는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쪽 대외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11일 게재한 논평에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최근 ‘북 인권결의안’ 채택에 참여하거나 ‘기권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어 댔다. 이는 공화국의 존엄과 체제에 대한 악랄한 모독이고 대세의 흐름에 역행하는 망동”이라고 맹비난했다.

북 인권결의안 채택 참여는 다행

이게 북한 정권의 정체다. 김정은의 폭정에 신음하는 주민들 고통에는 아랑곳없다. 오직 ‘존엄과 체제’만이 중요할 뿐이다. 인권을 짓밟으면서도 그걸 중지하라는 국제사회의 충고를 수용하기는커녕 ‘악랄한’ 표현으로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 김정은 집단이 무슨 짓을 하든 우리사회 일각의 친북‧종북세력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국민주권연대’ 등의 단체들이 7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 결성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조선닷컴)
‘백두칭송’이란 ‘김정은 칭송’일 것이다. 이들은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위대한 결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문재인 대통령’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70여 명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환영 행사 때 평양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화다발을 흔들었다.

이들이 기자회견이라는 것을 갖고 쏟아낸 언사들은 어이가 없어 옮길 엄두도 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북한을 인권의 동토로 만들고, 폭압정치를 일삼는 김정은을 ‘가슴 벅차게’ 환영할 준비를 하자니! ‘통일을 위해 안위를 버리고 목숨을 걸겠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의지’라는 것은 또 무슨 해괴한 궤변인가.

좌파 세력들이 폐지하지 못해 안달해 온 국가보안법은 제2조에서 ‘반국가단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이 법에서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 그게 바로 북한 김정은 집단이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백두칭송위원회 결성과 회원들의 주장이 이 조항에 저촉되는지 여부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 몫이다. 그렇지만 상식의 법정이라는 게 있다면 ‘유죄’ 선고를 내려야 마땅하다. 하긴 대통령까지도 김정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시대다. 그러니 이 조항은 이미 사문화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긴 여야 정당들이 이 조항의 폐지 혹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니 효력을 갖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일이겠다.

극히 일부의 인사들이 저지르는 일탈이다. 그러므로 크게 신경 쓸 것 없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헌법상 양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들어 정당화할 것인가. ‘천리 둑도 개미구멍에 무너진다’고 한다. 우리사회는 정말 괜찮은 걸까?

재연되는 권위주의적 통치행태

해방 이후 한동안 ‘민주와 자유’는 한국사회의 ‘신어(新語)’였다. 사람들은 ‘제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이를 이해했다. “이제 산에 가서 마음대로 나무를 해도 되겠네?” 그것이 민주와 자유에 대한 인식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당시의 실화다. 그 이상의 정치적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다. 경제적으로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이해하는 사람 또한 거의 없었다.

그랬던 나라가 건국 40여년쯤 지나면서부터 경제적으로 세계적 강국의 지위를 차지하게 됐고, 반세기가 넘어서면서는 정치적으로도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다. ‘기적’이기에 충분했다.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가 어려운 대성공을 바로 우리가 이룬 것이다. 그래서 한 20여년 정치‧경제적으로 번영을 구가했는데 민주와 자유의 범람현상이 갑자기 닥쳤다. 물론 오래전부터 예비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어느 날 갑자기 험악한 형태로 분출했다. 오죽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러다가는 대통령을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까지 했을까.

생각해보면 대지에 굳건히 뿌리내린 게 아니라 부평초처럼 시대의 물결에 흔들리며 떠다니는 게 한국의 민주정치다. 아직도 그렇다. 우리가 이제 성숙단계에 들어섰다고 자만하는 순간 민주정치는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서도 한참이나 지난 지금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좌파적 경제정책은 폭주를 거듭하고 있다. 제동장치가 없는 기관차를 보는 느낌이다. 잘못 들어선 길이라는 판단이 서면 속도를 줄이면서 방향을 틀어야 할 텐데도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다. “좌파적 이념을 반영한 정책이 잘못되었을 리 없다! 조금만 더 가면 분명히 새 세상의 문이 있다.” 그렇게 믿어서 더 마음이 바빠지는 것인가.

이미 땅 속 깊이 묻혀버렸다고 여겨졌던 권위주의적 통치행태가 재연되고 있다. 대통령의 말이 바로 법이 되는 시절이다. 제도가 이끌어가는 정치가 아니라 지시가 앞서가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언제나 일방적이다. 그러면서도 친절한 설명은 없다. 대북정책, 대미정책에서 특히 독주의 양상이 뚜렷하다. 과거와는 상반되는 길을 거침없이 내닫는다. 시간이 가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정치‧경제‧군사 지형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계산을 하면서 가는 것인지, 아니면 신봉하는 이념이 가리키는 방향이기 때문에 가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된다. 그래서 국민은 불안한데, 정부는 오불관언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11일 정부-청와대 경제라인 교체에 대해 “이념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통령이 안쓰럽다”는 말을 했다는 언론보도다. “대통령이 남의 말 안 듣기로 유명하다는 게 근거 없는 말이기를 바랐는데, 이번 인사를 보면 대통령의 고집이 대단한 것 같다”는 비판도 했다. “내 말이!” 그런 추임새라도 넣고 싶은 심정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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