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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최대 미스터리 ‘올로프 팔메 암살 사건’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8.11.02 07:55 수정 2018.11.02 07:57

<알쓸신잡-스웨덴㉑>심야 차가운 공기를 가른 두발의 총성

32년 째 풀리지 않는 ‘스웨덴이 가장 사랑한 정치인’의 죽음

팔메2 - 스웨덴 복지 정책의 완성자로 평가받으며, 스웨덴 시민들에게 아직도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으로 알려진 올로프 팔메 전 총리. (사진 = 올로프 팔메 전기 캡처) 팔메2 - 스웨덴 복지 정책의 완성자로 평가받으며, 스웨덴 시민들에게 아직도 가장 사랑받는 정치인으로 알려진 올로프 팔메 전 총리. (사진 = 올로프 팔메 전기 캡처)

스웨덴에는 30년을 넘기고도 풀리지 않는 최대의 미스터리가 있다. 스웨덴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자 스웨덴 복지 정책의 완성자라고 불리는 올로프 팔메 전 총리(Olof Palme. 1927~1986)의 암살 사건이다. 만 32년이 지났지만 범인의 윤곽은커녕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스웨덴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이다.

1986년 2월 28일 금요일 저녁. 팔메는 부인 리스베트(Lisbet), 둘째 아들 모르텐(Mårten) 내외 함께 스톡홀름 스베아배겐(Saeavägen) 45번지에 있는 영화관 ‘그랜드’에서는 코미디 영화 ‘모차르트의 형제들(Bröderna Mozart)’을 관람했다.

밤 11시가 조금 넘어서 영화는 끝났다. 아들 내외와 헤어진 팔메 부부는 영화관에서 멀지 않은 회토리엣(Hötorget)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팔메의 경호원은 이미 오전 11시에 퇴근했다. 근무 시간이 아니면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팔메는 금요일이고 2월의 마지막 날이라 일찍 경호원을 퇴근시킨 것이다.

팔짱을 끼고 천천히 스베아배겐을 걸어 42번지 앞에 다다랐을 때 금요일 밤의 한적한 공기를 가르는 두 발의 총성이 울린다. 차가운 총소리와 함께 팔메가 쓰러졌다. 첫 번째 총알은 그의 등에서 가슴 위쪽으로 관통했다. 리스베트를 향했던 두 번째 총알은 빚나갔다. 팔메는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즉사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팔메 저녁 장소 - 스톡홀름 스베아베겐 42번지 인도 위에는 팔메가 저녁당했던 장소의 표시가 돼 있다. (사진 = 이석원) 팔메 저녁 장소 - 스톡홀름 스베아베겐 42번지 인도 위에는 팔메가 저녁당했던 장소의 표시가 돼 있다. (사진 = 이석원)

사건 당시 대여섯 명의 목격자가 범인을 봤고, 경찰은 3월 1일과 2일에 걸쳐 범인의 총에서 발사된 총알도 현장 부근에서 모두 찾았다. 하지만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용의자가 검거되기도 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수차례의 범인에 대한 신고도 있었지만 범인을 잡는데는 실패했다. 또 자신이 팔메의 암살범이라고 자처하고 나선 사람도 150명이나 됐지만 모두 허황된 주장이었다.

수년이 지나도 범인을 잡지 못하는 스웨덴 경찰의 무능을 비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높았고, 일부 시민들은 ‘팔메를 죽인 범인은 우리가 잡겠다’며 스스로 수사를 했다. 그렇게 속절없는 세월만 흐른 뒤 팔메의 암살 사건 수사는 2011년 2월 28일 영구 미제사건이 될 상황이었다. 스웨덴은 살인에 대한 공소 시표가 25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메를 사랑한 시민들의 원성을 무시하지 못한 의회는 특별 범죄에 대한 공소 시효를 없애기로 하면서 이 사건은 마침표를 찍지 않고 현재까지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던 중 최근 팔메의 부인 리스베트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사건 현장의 유력한 목격자마저도 세상을 뜬 것이다.

스웨덴 시민들은 여전히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는 없다”고 비판한다. 사건 초기 수사를 맡았던 경찰도, 이후 사건 수사를 이관 받은 스웨덴 비밀경찰 세포(Säpo. 우리의 국정원에 해당)도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헛손질뿐이다.

팔메 암살의 배후에 대한 음모론만 그치지 않는다.

한동안 친소련 성향이던 팔메를 고깝게 생각한 미국 CIA가 벌인 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극렬 반대했던 팔메는 언제나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였다. 팔메 때문에 미국의 북유럽 정책이 늘 발목 잡힌다는 국제 정세 평가도 있었다.

팔메 묘지 - 팔메가 저녁당한 곳에서 멀지 않은 아돌프 프레드릭 교회 마당에 있는 팔메의 묘지. 팔메 묘지 - 팔메가 저녁당한 곳에서 멀지 않은 아돌프 프레드릭 교회 마당에 있는 팔메의 묘지.

팔메의 급진적 사회주의 정책에 불만을 품은 극우 세력이 사주했다는 설도 나왔다. 팔메의 복지 정책으로 인한 과도한 조세 부담에 불만을 품은 부유층이 이런 극우 세력을 통해 팔메를 제거한 것이라는 추측이다.

넬슨 만델라를 지원한 팔메를 싫어한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추종자의 범죄라거나, 전쟁 억제, 해외 파병 반대 등 반전 일변도인 팔메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 유럽 군수산업계의 사주, 또 팔메가 터키와 유럽 내 쿠르드 노동자당이 저지르는 테러를 강도 높게 비난한 것 때문에 그들이 저지른 소행이라는 이야기도 회자됐다.

그렇게 지나온 32년의 세월. 팔메의 살인범은 과연 잡을 수 있을까? 진짜 스웨덴 정부는 이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아직 남아 있을까? 그러나 남녀노소를 막론한 스웨덴 사람들이 아직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사건은 영구 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가 자신이 진짜 팔메의 암살범이라고 나서기 전에는.

1969년 타게 에를란데르(Tage Erlander)로부터 총리 자리를 물려받은 후 1976년까지, 그리고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모두 12년 동안 총리를 역임하면서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 정책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올로프 팔메. 스웨덴이 가장 사랑하는 정치인이지만, 스웨덴 최대의 의혹의 사건의 주인공이다.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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