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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추상미 "탈북소녀와 동행…조건없는 사랑 느꼈죠"

부수정 기자
입력 2018.10.19 09:20 수정 2018.10.21 12:23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연출

"탈북 청소년들에게 관심 가졌으면"

배우 추상미가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로 감독으로 돌아왔다.ⓒ커넥트픽쳐스 배우 추상미가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로 감독으로 돌아왔다.ⓒ커넥트픽쳐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연출
"탈북 청소년들에게 관심 가졌으면"


"전쟁고아들을 돌봐준 폴란드 교사들을 보며 느꼈어요. 이런 '조건 없는 사랑이 있을까'하고요."

도시적인 이미지의 배우 추상미(45)가 감독으로 돌아왔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통해서다. 영화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비밀리에 폴란드로 보낸 1천500여명의 전쟁고아와 이들을 8년간 부모처럼 돌본 폴란드 교사들의 실화를 담았다.

영화 속 폴란드 교사들은 전쟁고아들을 살뜰히 보살피며 조건, 편견 없는 사랑을 쏟아붓는다. 교사들은 또 아이들과 헤어질 때를 떠올리며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일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영화를 보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이런 사랑이 있을까'하고. 추 감독도 같은 생각이란다.

그는 2011년 출산 이후 지독한 산후우울증을 겪던 중 북한의 '꽃제비(어린이 걸인)' 관련 영상을 보게 됐다. 비슷한 시기, 동유럽으로 보내진 북한의 전쟁고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추 감독은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탈북소녀 이송과 함께 폴란드 프와코비체로 향했고, 그곳에서 폴란드 교사들을 만났다.

18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추 감독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영화들이 판치는 요즘, 이렇게 밋밋한 이야기가 시선을 잡아끌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언론과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어서 기쁘다"고 밝혔다.

영화는 앞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당시 태풍을 뚫고 영화를 선보인 추 감독은 궂은 날씨에도 영화를 보러 온 관객 150명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추 감독은 내레이션, 출연, 연출 세 가지 모두를 맡았다. "혼자 다 해서 욕먹기 딱 좋은 포지션"이라고 웃은 그는 "제작비가 별로 없어서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며 "영화를 만들게 된 감독의 조사 과정을 담아야 해서 내가 모든 걸 해야했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는 추 감독의 아픔으로부터 시작됐다. 산후우울증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던 추 감독은 힘든 시기를 영화 작업을 통해 극복했다. 1년 6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다양한 조사를 거치며 역사 공부도 했다. 이후 오디을 열고 탈북민들을 만났다. 그들을 통해 아픔을 알게 됐고, '폴란드로 간 아이들' 속 교사 이야기를 먼저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은 "상처에 대한 시선을 달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커넥트픽쳐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은 "상처에 대한 시선을 달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커넥트픽쳐스

추 감독은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송이와 함께한 시간도 좋았다"고 미소 지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7년 큰 절망이 찾아왔다. 후반 작업을 홀로 2년 동안 하면서 몸이 아팠고, 아들 지명을 잘 돌보지 못했다. 서재에서 혼자 모니터링하고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남편은 모니터링 고문을 당했단다.

가장 좌절했던 건 시국이었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지금처럼 급진전되지 않았을 때다. 배급사 찾기기도 쉽지 않았고, 갈 데도 없었다. 사면초가였다. 그러다 2018년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기적 같은 일이 펼쳐졌다. 추 감독은 "대한민국 국민 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을 것"이라고 웃었다.

영화에 따르면 전쟁고아들은 폴란드 서부 도시 브로츠와프 근교 작은 마을인 프와코비체에 마련된 양육원에서 생활했다. 추 감독이 만난 당시 양육원 원장을 비롯해 생존 교사들은 지금까지 아이들을 잊지 않았다.

아이들 이야기는 폴란드 언론인 욜란타 크리소바타가 폴란드 한 공동묘지에서 '김귀덕'이라는 묘비명을 발견하고 그의 삶을 추적해 방송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폴란드에 온 전쟁고아였던 김귀덕은 백혈병에 걸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이후 2006년 폴란드 공영방송 TVP가 다큐멘터리 '김귀덕'을 방영했다. 추상미는 현지에서 욜란타 크리소바타를 만나 1천500여명의 아이 중 절반은 남한에서 온 아이들이었다는 사실도 듣게 된다.

추 감독은 "살아 계신 폴란드 교사들은 남북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셨다"며 "아이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도 항상 하셨고, 남북 통일에 대한 생각도 하셨다"고 설명했다.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도 아닌데, 이들은 왜 그토록 아이들을 사랑했을까. 교사들의 감정에 궁금해하던 추 감독은 이들의 사랑을 공감과 연민으로 정의했다.

전쟁고아들이 폴란드에 도착한 1951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한국전쟁 고아들이 전쟁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폴란드 교사들은 1951년 폴란드에 도착한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며 그들을 어루만졌다.

실제로 프와코비체 양육원에서 아이들을 보살폈던 양육교사 중 상당수가 전쟁고아 출신이었다. 폴란드 교사들은 아저씨, 아주머니, 원장, 교사 등의 호칭 대신 아이들에게 '아빠', '엄마'로 불리며 가족 같은 유대감으로 서로의 상처를 치유했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은 "연기보다 연출이 재밌다"고 했다.ⓒ커넥트픽쳐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연출한 추상미 감독은 "연기보다 연출이 재밌다"고 했다.ⓒ커넥트픽쳐스

추 감독은 "2차 대전을 겪은 현장에서 살아남은 분들"이라며 "전쟁고아들을 보면서 자기 상처와 삶을 돌아봤을 것"이라고 했다. "그분들에겐 전쟁의 상처가 유년 시절이 일상이었을 겁니다. 인생을 뒤흔들만한 가치관도 형성됐을 거예요. 상처가 깊을 수록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도 깊어진다고 생각해요. 폴란드 교사들을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유년 시절을 본 거죠. 피붙이보다 더 진한 연민으로 아이들을 감싼 거죠."

추 감독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다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들을 아이들 얘기를 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삶에서 가장 잘한 일이 아이들과 만나고, 함께 생활한 것이란다. 자신의 상처로 다른 사람을 품은 것이다. "진정한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에서 잊히지 않고 깊은 의미로 남는 선이요."

추 감독은 묻힐 뻔한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는 값진 일을 해냈다. 감독 추상미, 그리고 사람 추상미에게도 소중한 작업이었다. "우울증에서 벗어났고, 삶을 성찰하게 됐어요. 엄마로서 예술가로서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단단한 토양이 됐고요. 만약 우울증을 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싶어요. 상처를 극복하며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탐험한 기분이죠."

연극배우 고 추송웅 딸인 추상미는 영화 1994년 연극 '로리타'로 데뷔해 '생활의 발견'(2002),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와 드라마 '사랑과 야망'(2006), '8월에 내리는 눈'(2007)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누렸다.

그러다 2007년 뮤지컬 배우 이석준과 결혼했고, 4년 만인 2011년 아들을 얻었다. 2009년 드라마 '시티홀'을 끝으로 연기 생활을 접고 대학에서 연출을 공부한 그는 '영향 아래의 여자', '분장실' 2편의 단편을 선보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추 감독은 탈북 배우 이송에게 "배우가 되려는 사람에게 상처는 어떤 도움이 될까?"라고 질문했다. 배우이기도 한 추 감독의 답이 궁금했다. "전 도움이 됐죠. 사춘기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땐 몰랐어요. 빈자리가. 근데 서른이 넘어서 알게 됐어요. 그 상처가 얼마나 새겨졌는지. 연극 무대에 설 때마다 상처가 있는 자아를 연기했어요. 실제 상처를 겪지 않았으면 못했을 역할이죠. 송이가 북한에서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걸 나중에 알았는데, 전 생각했어요. 송이가 상처와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연기보다 연출이 더 재밌다는 추 감독은 북한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룬 극영화 '그루터기들'을 준비 중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민은 3만명을 웃돈다. 추 감독은 "국내 거주 탈북민 중 25%가 청소년"이라며 "우리가 탈북민과 탈북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선이 폴란드 교사들처럼 돼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개인과 역사의 상처가 다른 민족을 선하게 품는 데 사용됐잖아요. 우리가 우리 역사의 상처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생각해볼 때입니다. 상처에 대한 시선을 달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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