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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주간, 그러나 노벨문학상이 사라졌다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8.10.07 05:00 수정 2018.10.09 03:26

<알쓸신잡-스웨덴 ⑰>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세계 최상의 영광들’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의 스캔들로 얼룩진 2018년 노벨상

스웨덴 한림원이 있는 노벨 박물관 건물. 이 건물 2층이 스웨덴 한림원이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 한림원이 있는 노벨 박물관 건물. 이 건물 2층이 스웨덴 한림원이다. ⓒ(사진 = 이석원)

매년 10월 첫 주는 스웨덴(노르웨이까지 포함해서)에서 노벨상 주간이다. 노벨프리스 베칸(Nobelpris vackan)이라고 불린다. 올해는 10월의 첫 월요일인 1일 생리의학상 발표를 시작으로, 2일 물리학상, 3일 화학상, 5일 평화상, 그리고 8일 경제학상을 발표했다.

미국의 제임스 P 앨리슨과 일본의 혼조 타스쿠가 공동으로 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미국의 아서 애슈킨, 프랑스의 제라드 무루, 캐나다의 도나 스트릭랜드가 공동으로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영국의 그레고리 윈터와 미국의 프랜시스 아널드, 조지 P 스미스가 공동으로 화학상을 수상했다. 우리의 문재인 대통령이 수상하나 하는 기대를 걸었던 평화상은 공고민주공화국의 데니스 무퀘게와 이라크의 나디아 무라드가 공동 수상했다. 또 경제학상은 미국의 윌리엄 노드하우스와 폴 로머가 함께 받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 외에도 매년 노벨상 주간 때마다 한국의 수상을 기대하게 했던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지 않았다. 불행한 일이지만, 치명적이고 불명예스러운 스캔들로 인해 올해 노벨문학상은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5월에 결정된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스웨덴 한림원(Svenska Akademia. 이하 한림원)이다. 한림원에 있는 18명의 종신위원이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그런데 그 종신위원 중 한 명의 남편이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의 가해자가 됐다. 이 여파로 종신위원 중 8명이 그만뒀다. 남은 10명으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할 수 없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이 일이 벌어진 과정을 들여다보자.

한림원의 스캔들이 처음 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11월이다.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가 특종했다. 종신위원 중 한 명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Katarina Frostenson)의 남편 프랑스계 사진작가 장 클로드 아르노(Jean-Claude Arnault)가 1996년부터 2017년까지 한림원이 소유한 스톡홀름과 프랑스 파리의 아파트에서 여성 18명을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한림원은 발칵 뒤집어졌다. 칼 16세 구스타브 왕에게도 보고가 됐다. 한림원 종신위원을 위촉하는 권한이 국왕에게 있기 때문이다. 국왕은 한림원에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다가 지난 4월 초 한림원 측이 아르노가 아내 프로스텐손을 통해 지난 해 수상자인 밥 딜런을 포함해 최소 6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사전 유출했다는 혐의까지 드러났다.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한림원 종신위원들은 프로스텐손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자 종신위원 중 시엘 에스마르크(Kjell Espmark), 페테르 엥룬드(Peter Englund), 클라스 외스테르그렌(Klas Östergren)가 먼저 사퇴했다. 이어 한림원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인 사라 다니우스(Sara Danius)가 사건을 책임지고 사퇴했고, 사건의 당사지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도 사퇴하면서 서서히 올해 노벨문학상 선정에 대한 위기감이 돌았다.

지난 5월 4일 올해 노벨문학상을 선정하지 않기로 한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을 보도한 신문 기사.ⓒ(사진 = 다겐스 뉘헤테르 화면 캡처) 지난 5월 4일 올해 노벨문학상을 선정하지 않기로 한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을 보도한 신문 기사.ⓒ(사진 = 다겐스 뉘헤테르 화면 캡처)

엎친데 덮쳤다. 4월 27일 보수 성향 일간지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enska Dagbladet)는 장 클로드 아르노가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의 엉덩이를 더듬었다는 제보를 받고 이를 보도했다. 제보자도 한림원 종신위원의 부인이었다. 그야말로 기름에 물을 부은 것이다.

수 년 안에 여왕이 될 사람, 그것도 현 국왕보다 더 인기가 높은 공주다. 뉴스를 접한 스웨덴 시민들은 ‘아르노는 완전히 돈 놈’이라고 성토했다. 가뜩이나 지난 해 밥 딜런의 수상 논란으로 노벨문학상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한림원을 해체하라는 요구까지 있었다. 한림원에게 사무실을 임대해 준 건물 주인도 한림원에게 계약 해지 통보를 구상할 정도였다. 결국 5월 4일 한림원은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는고 내년에 함께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1786년 구스타브 3세에 의해 설립된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을 선정, 발표하는 스웨덴 최고 권위의 학술 단체다. 스웨덴 한림원이 세 들어있는 스톡홀름 구시가인 감라스탄(Gamla stan)의 옛 증권거래소 건물은 스웨덴을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고, 그 건물 1층에는 노벨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230여년 만에 그 명성과 자존심이 땅바닥에 곤두박질 쳐진 것이다.

최근 한림원은 더 큰 곤경에 처했다. 노벨상 주간을 목전에 두고 노벨 재단의 라르스 하이켄스텐 사무총장은 “스웨덴 아카데미가 정당성을 다시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른 기관에 노벨문학상 선정을 책임지도록 요구할 수 있다”며 “한 번 선정권을 잃으면 이를 다시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노벨 문학상 선정권을 영구 박탈 가능성을 시사했다.

만약 이 말이 현실화된다면 스웨덴 아카데미는 지난 1901년부터 선정해오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더 이상 선정할 수 없게 된다. 또 이는 스웨덴의 학계에서 스웨덴 아카데미의 존재감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될 수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는 것은, 그냥 없는 것이 아니라 스웨덴의 치욕이다.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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