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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등 올라탄’ 김정은과 갈피 못 잡는 보수야당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 2018-09-23 07:56
<칼럼> 역사적 사건 대부분은 ‘필연’과 ‘우연’의 합작품
보수야당은 이제 ‘관망’과 ‘경계’로 돌아서야 할 때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이틀째인 지난 1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집단체조와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이틀째인 지난 1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집단체조와 '빛나는 조국' 공연을 관람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독일의 통일은 필연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까?” 좀 엉뚱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의미있는 질문이다.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은 ‘필연’과 ‘우연’의 합작품이다. 비유하자면, ‘필연’으로 가스를 채우고 ‘우연’이라는 불씨가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다. 독일통일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였기에 ‘필연’이다. 그러나 통일의 순간은 뜻밖의 상황에서 ‘우연’히 찾아 왔다.

서독의 수상들이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도 어떻게 일관성 있는 통일정책을 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통일의 순간은 우연한 사건 때문이었다. 1989년 11월 9일 19시, 동독의 정치국원 샤보프스키는 ‘외국여행규제완화’정책을 발표했다. 내용은 ‘서독을 포함한 외국여행을 자유화한다’는 것이었다. 기자들이 ‘언제부터냐?’고 묻자, 그는 ‘지금 당장’이라고 말했다. 물론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의 실수였다. 방송을 보고 수많은 시민들이 베를린장벽으로 몰려들었다. 영문을 몰랐던 경비병들도 언론보도만 믿고 국경을 개방했다. 실수로 발표가 나온 지 4시간여 만이었다. 그렇게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우연이라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있다. 동독의 지도부에게는 ‘기정사실화’되기 전 수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막지 못했다. 왜일까? ‘미필적 고의’일까? 역사의 방향을 거스르면 누군가는 피를 흘리게 되어있다. 군중이 될 수도 있고, 의사결정을 한 지도부가 될 수도 있다. 역사적 사건에서는 대부분,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두 가지 경우가 구현되곤 한다. 독일 통일과정은 ‘역사의 방향’에 순응했기에 이 둘을 다 피할 수 있었다.

남북의 평화와 통일은 어떻게 올까? 문재인 대통령이 수많은 스캔들을 만들며 2박 3일 방북일정을 마쳤다.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10%이상 올랐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국정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하락할 때는 경제, 민생이 주목을 받았고, 올라가는 지금은 대북정책이 주목을 받았다. 3일 동안 모든 언론이 24시간 주입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자리’, ‘소득양극화’, ‘부동산’ 등 경제적 실정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훌륭한 이벤트였음에 틀림없다. 방북이후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공급정책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지만,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은 국민들에게 일정한 흥분제 역할을 하고 있다.

평양의 남북정상회담이 우리국민에게 흥분제라면, 북한 ‘인민’에겐 더 강력한 마약일 수 있다. 이런 마약은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많은 보수인사들이 남한의 위기를 경고하지만, 북한도 위기임에 틀림없다. 김정은은 김씨 세습정권과 인민을 건 도박을 하고 있는 중이다. 평양의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거듭 무리수를 두었다. 베일에 싸여있던 권력핵심과 내부를 너무 많은 노출을 한 것이다. 핵무기 폐기와 관련된 ‘알맹이 조치’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 많은 것을 보여줬다. 보여주는 것 뿐 아니다. 절대권력을 갖은 지도자로서의 권위도 상당부분 포기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시민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니 김정은도 함께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인민의 동요 요인도 제공했다. 문대통령을 평양시민 앞에 세워 연설할 기회를 준 것이다. 연설내용은 협의했겠지만, 평양시민들에게 심리적으로 무장해제 분위기를 심어줬다. 아마 돌이키기 힘들 것이다.

김정은이 중국과 싱가포르 같은 ‘발전된 독재국가’를 보고 와서 자신감을 갖았을 수는 있지만, 그런 나라들의 ‘권위주의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다. 북한에 접목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지금 북한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국내정치의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독일통일과정에서와 같은 ‘우연’이 벌어진다면 북한은 이를 막거나 돌이킬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북한의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

한편,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은 국내 보수야당을 난감하게 했다. 정부의 거듭된 경제실정에 정국주도권을 잡나 했는데, 뜬금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보수야당은 거칠게 성토했다. 제1야당 대표는 "비핵화 진전 없고 국방의 눈을 빼는 합의"라며 원색적으로 비판했고 2인자 원내대표는 더욱 흥분했다. 제2야당은 좀 점잖기는 했지만 곱지 않은 반응을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야당입장에서 더욱 난감한 것은 미국의 반응이다. 조만간 문대통령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가지고 트럼프를 만나 담판을 하겠지만,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첫 일성은 기대했던 것보다 긍정적이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1차 북미정상회담 때 보다 우선순위는 좀 밀렸지만 (중간선거는 ‘중국과의 무역전쟁’으로 돌파하려는 분위기였다), ‘역대정권이 실패했던 북핵문제를 대화로 풀었다’는 업적을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보수야당은 1차 미북정상회담 때처럼 다시 트럼프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제 야당은 현실을 인정하고 가능성있는 정책적 대안에 집중해야 할 때다. 어차피 트럼프는 자신의 국내정치를 위해 동지도 배신할 수 있는 캐릭터다. 그와 같은 배를 타려 했다면 너무도 위험한 발상이었다. 보수야당은 ‘한미동맹’을 강조한다. 현 정권의 ‘친북성향’을 강조하기 위함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김정은에 손을 뻗으면 그런 전략은 물거품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야당이 트럼프를 비판한다면, ‘한미동맹’을 부정하는 이율배반이 될 수도 있다. 앞뒤가 막힌 매우 곤란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북핵문제는 고도의 정보력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야당은 이에 너무도 취약하다. 정부는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미국은 우리 야당을 파트너로 생각지 않는다. 당연히 중요한 정보에 다가갈 수 없다. 정보도 없고, 동지도 없고, 지형도 나쁘고, 바람도 역풍이다. 승리할 수 없는 승부다.

보수야당은 이제 ‘관망’과 ‘경계’로 돌아서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기대감을 표할 필요도 있다. 어차피 평화나 통일은 부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슈를 빨리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 야당이 북핵문제를 비판하면 언론은 우선순위를 북핵이슈에 둘 수 밖에 없다. 울고 싶은데 뺨때려 주는 격이다. 북핵이슈는 위험요소를 경계하는 수준에 국한시키고, 논쟁을 피하며 민생이슈에 집중해야 한다. 어차피 국민입장에서 북핵은 눈앞에 위협이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현실적인 위협이다. 추석밥상 민심에서 북핵문제는 잠시 거론되겠지만, 결국 일자리, 부동산 등 민생이슈에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추석민심뿐 아니다. 장기적으로도 그렇다. 대북사업은 엄청난 돈이 들 것이고 예산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민생과 관련이 없을 수 없다. 미국은 제제국면이 지나도 자국의 자금을 들여 북을 도울 생각이 없다. 북이 요구하는 경협과 지원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이를 잘 아는 청와대가 방북단에 경제계인사를 대거 포함시킨 것이다. 민생을 집중하다보면 틀림없이 대북이슈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이런 국면에서 야당의 유의미한 역할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우연한 사건’으로 통일까지 구현되면 야당에게도 ‘대박’ 아닌가? 통일한국에서 남한의 진보진영과 북한의 좌익이 경쟁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김우석 (현)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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