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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行 '즉석제안'인데 '한라산 물' 미리 준비?

평양공동취재단 = 정도원 기자 | 2018-09-21 05:00
2박 3일 잘짜여진 연출… 종종 앞뒤 안 맞는 모습
北조연 "이재용 오라 했다" 애드립에 모순 폭로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즉석 제안'으로 백두산 천지에 올라, 서울에서 미리 준비해온 '한라산 물'을 담은 물병에 천지 물을 합수(合水)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박 3일 동안 잘 짜여진 한 편의 연극을 감상한 느낌이다.

평양과 백두산으로 무대를 옮기며 수고했던 주연 배우와 장막 뒤 밝혀지지 않은 연출가·각본가에게 박수를 보내며, 조금 진부하지만 완성도 높았던 연출이라는 전제 하에 미진했던 지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속편이 나온다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극 중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자체모순이 종종 눈에 띄었던 점이 안타까웠다. 극 3일차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무대를 평양에서 백두산으로 옮기게 된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즉석 제안'이 있었다는 배경이다.

시청자의 감동을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정작 백두산에 간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어울리지 않는 소품인 '한라산 물'을 꺼내들면서 극은 부조리에 빠지고 말았다.

백두산 천지행(行)이 이뤄진 것 자체가 '즉석 제안'이 있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사실인데, 천지에 갈 것을 어떻게 미리 알고 합수(合水)하려고 서울에서부터 '한라산 물'을 가져왔을까. 감동에서 시작해서 실소로 끝났다.

앞서 1일차에도 비슷한 모순이 있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레스센터 브리핑에서 "경제인 방북 관련 북측의 요청이 있었다는 보도를 봤는데 전혀 아니다"라며 "이번 방북 수행단은 전적으로 우리 정부에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불과 30분 뒤에 평양에서 시작된 리용남 내각부총리와 우리 측 경제인들과의 면담에서 황호영 북한 금강산국제관광특구 지도국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향해 "(우리가) 꼭 오시라고 말씀드렸다"고 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게 돼버리고 말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황호영이라는 분이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 각본에 대사가 주어져 있지 않은 조연 이하급 출연자라 미리 말을 맞춰놓지 않았는데, 뜻밖의 '애드립'으로 극의 모순이 폭로된 게 불쾌했던 것일까.

"해병대 동원해 김정은用 헬기패드 짓겠다"
곧 물러날 장관이라 속편 나올 일 없어 다행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오전 백두산 천지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주연 배우들의 행동과 대사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세심하게 연출돼 있는데, 조연 이하의 대사는 너무나 무신경했던 게 안타까운 대목이다. 조연은 일일이 신경쓰기가 어려우니 분위기에 맞춰 그 때 그 때 맞장구를 치도록 놔둔 것 같은데, 그러다보니 조연이 '오버'하다가 산통 깨지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모처럼 백두산 천지에 올라 한껏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김 위원장이 답방을 하면 한라산 백록담으로 모셔야겠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송영무 국방장관이 너무 나갔다. "해병대 1개 연대를 시켜 한라산 정상에 헬기 패드를 만들겠다"고 호언한 것이다.

송 장관은 후임자인 정경두 후보자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인사청문경과보고서까지 채택됐다. 서울로 돌아오면 얼마 안 있어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해병대를 동원해 백록담에 헬기 착륙장을 짓겠다고 '오버'한 것이다.

한라산 백록담 주변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그따위보다는 김 위원장만 잘 모실 수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것인가. 지금의 집권세력이 연출하는 극에 단골 배역으로 출연하던 '구럼비, 구럼비' 타령을 하던 일단의 사람들은 '백록담 헬기 패드 건설극'에서 어떤 대사를 맡게 되는가.

해병대는 김 위원장 착륙할 헬기 패드 조성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대였는가. 송 장관은 그 해병들이 희생당한 헬기 사고 당시 "유족들이 의전 문제에 있어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난 게 아니겠느냐"라는 실언을 했던 당사자다. 이번에 곧 물러나니 속편에서는 출연할 일이 없어 다행스러울 지경이다.

마지막으로 출연 배우와 스태프들끼리 스스로의 감동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시청자 의견을 너무나도 반영하지 않는 게 안타까웠다.

5000만 시청자가 이번 2박 3일 간의 극을 지켜보면서 바랐던 것은 북한이 과감히 핵무기·핵시설 등의 리스트를 신고해 비핵화의 실천적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핵 없는 한반도'라는 해피 엔딩으로 극의 흐름이 이어지길 바랐지만, 무슨 '작가주의'인지 몰라도 연출자는 끝내 시청자의 바람을 외면했다.

시청자의 의견을 반영하면 주연 배우 중 한 명이 출연을 거부할까봐 겁이 났던 것일까. 아니면 개런티가 확 뛸까봐 엄두도 못 냈던 것일까. 극의 완성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완성도는 대체 누구를 위한 완성도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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