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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 보수는 안나옴으로써 샤이하게 응징했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 2018-06-16 07:51
@데일리안 DB@데일리안 DB

필자의 아버지는 연세가 여든이 넘으셨다. 그 분이 “투표를 안하기는 평생에 이번이 처음”이라 하신다. 목소리는 힘이 없었지만, 눈빛은 추상같았다. 평생 쌓아 올린 것을 허무하게 무너뜨린 장본인들에 대한 소심한(샤이한) 응징인 듯 했다.

대부분 그 연세의 분들이 그렇듯,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셨다. 찢어지는 가난을 견뎌냈고, 전쟁의 폐허에서 희망을 현실로 만드셨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셨기에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치적 소신을 갖으신 것은 당연해 보인다. 평생을 자유한국당 계열을 정당을 지지하며 사셨다. 아버지같은 분들은 우리 정치에서 ‘보수’, ‘우파’로 부른다. 그런 분이 전쟁에도 했던 투표를 하지 않으셨다니 지금의 위기상황을 반증하는 것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도 하루아침에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 가치관이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바뀔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평생동안 조금씩 쌓아 온 것이기에, 그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 50~60대 진보가 많아지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진보적인 사람도 나이를 먹는 것이다. 평생을 한 방향으로 살아 온 사람들이 나이 먹어 ‘전향’ 하는 것은 결정적이고 획기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실망해도 보수적 정치관을 가진 사람이 진보정당에 투표를 하는 일의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하거나,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표를 안 할 수 있을 뿐이다.

대부분 나라에서 국민이념성향을 보면, 진보, 보수, 중도의 비율이 대략 3:3:4정도라 한다. 지금 우리사회처럼 갈등이 심하고 양극화된 사회에서 4:4:2일지도 모른다. 혼란사회일수록 ‘나 홀로’는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보수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참 특이한 현상이다. 그래서 보수야당이 선거 때 고안한 것이 “샤이 보수”다. 없을 수는 없는데, 보이지 않으니 이를 설명해야 했다.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보수유권자가 있다는 가정이다. 합리적인 가정으로 보였다. 그러나 결국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장은 외면됐다. 보수는 있었을지 모르나, ‘샤이보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은 너무 부끄러워 투표장까지 나가지 못한 것 같다. 더 이상 부끄럽고 싶지 않아 필자의 아버지처럼 보수정당에 회초리를 들기 위해 기권을 선택했을 것이다.

선거결과를 보고 정치인들은 ‘보수는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보수는 아직 건강하다. 그들의 건강성이 보수정당에 회초리를 든 것이다. 국민들은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정당에 연명치료를 거부했다. 투표를 하지 않는 ‘샤이’한 응징으로 의사를 표한 것이다. 찔끔찔끔 도와 줘 봐야 지난 대선때처럼 자신들이 ‘나름 잘 한다’고 생각해 더 오만해 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선이후 새 지도부는 위임된 권력을 사유화하기 바빴다. 이제 국민은 선거라는 최종심을 통해 사형선고를 내리고 다시 태어나갈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게 한국 보수가 할 수 있는 궁극의 처방이다.

“샤이 보수”에 기대를 갖은 정치지도자들은 그 “부끄러움”의 대상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선거참패 쓰나미에 밀려 우선 물러나 반성하는 척 했지만, 상황파악은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그 심정과 입장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보수정당 모두가 크건 작건 공범이었다. 그러나 억울하다며 ‘책임 떠넘기기’만 하는 사람들은 재기할 수 없다. 지금 정권을 잡은 ‘노무현 키즈’들을 생각해 보라. 故 노무현 전대통령이 스스로의 희생으로 ‘폐족’을 사면시켜 재기를 가능케 한 것 아닌가? 얼마나 대조적인가.

보수정당도 최소한의 책임지는 자세는 필요했다. 대선을 준비하기 전에 충분한 반성이 필요했다. 탄핵사태에 당시 여당지도부는 진심으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했다. 책임있는 중진들도 마찬가지였다.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누군가는 있어야 했다. 대선 패배이후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상황모면에 급급했다. 급히 외부에서 비대위원장을 모셔 칼자루를 쥐어주고 자리를 피했다. 그 후 상황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비대위 이후 대선패배의 당사자가 공백상태의 리더십을 차지하고 당과 지지자들을 볼모로 삼았다. 그는 개인의 유·불리에 따라 선별적으로 ‘징계권’을 활용했다. 말은 수시로 바뀌었고 일관성은 전혀 없었다. 모든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야 할 때는 그 지도자는 분열의 중심에 있었다. 피해 당사자들은 반발했고, 정당성이 없는 징계는 흐지부지됐다. 통렬한 책임은 실종되고, 시늉만 하고 넘어간 것이다. ‘처절한 투쟁’으로 보이고자 했지만, 국민이 보기에는 모두 쇼에 불과했다.

결국 6. 13 지방선거에 유래없는 패배를 겪었다. 그동안 ‘비겁하게 숨죽이던’ 초·재선 국회의원들은 이제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출구조사에서 한국당 참패소식이 나오자, 한국당 원외인사들이 "보수궤멸 책임지고, 홍준표는 사퇴하라"라고 입장을 밝힌 이후다. 늦었다고 할 때가 이른 때인지도 모르겠다. 초·재선의원들은 홍준표 대표가 사퇴하자 중진의원들이 연대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본인들의 정치적 입지도 생각했겠지만,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절박함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기회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시늉만이 아니라 알맹이의 변신이 필요하다. 책임질 사람은 스스로 알아서 선언을 해, 새로운 리더십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그리고 각급 단위에서 미리 해법을 정하지 말고 기한없는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국민이 ‘그 정도면 됐다’고 할 때 까지 말이다. 혼란 중에 옥석이 가려질 것이고, 알맹이와 쭉정이고 검증될 것이다. 그 때 자연스럽게 새로운 리더십이 세워질 것이다. ‘정당 해산(解散)급 진통’이 ‘해산(解産)의 고통’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것이다.

지금은 월드컵기간이다. 개막전에서 ‘5대 0’이란 참패를 당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배부른 우물안 개구리’였다. 그들의 경기력저하는 ‘경쟁없는 고연봉’이 원인이다. 치열함이 떨어지고 자기개발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가한 보수정당 의원들과 공통점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선수에겐 피하고 싶은 월드컵 기간이겠지만, 보수야당 의원들은 이 한 달을 잘 활용해야 한다. 그 기간을 충분히 쓰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앞에 돌아오길 바란다. 국민은 월드컵을 응원하는 동시에 보수정당의 건강한 재탄생을 응원할 것이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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