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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토사의 쇼' 끝나자 한미동맹을 깨는 트럼프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8.06.13 10:16 수정 2018.06.13 10:39

<칼럼>북핵 폐기 시동도 안걸렸는데 군사훈련 중지?

추상적 합의문 놓고 말의 잔치만 벌이는 남·북·미

북한 노동신문은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동성명 서명식 모습을 13일 보도했다.ⓒ연합뉴스 북한 노동신문은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동성명 서명식 모습을 13일 보도했다.ⓒ연합뉴스

'어이없고 황당하다'. '합의 내용이 너무나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다'. '역사의 후퇴다'. '새로운 내용이 없다(NOTHING NEW)'. '북한의 완벽한 승리다'. '만남 자체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을 보고 필자의 뇌리에 떠오른 생각이다. 아무리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지만 해도 너무했다. 아무리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해도 너무했다. 아무리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의 비핵화가 ‘원샷 빅딜’로 해결되기는 어렵겠지만 해도 너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기대 이상이었다. 환상적이었다”고 자평했지만 도대체 '처음에 무엇을 기대했길래' 기대 이상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차례 회담을 취소했는데 도대체 무엇때문에 취소했는지 알 수가 없다.

두 정상은 ‘평화와 고요’라는 뜻을 가진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만나 세계사에 길이 남을 세기의 악수를 나눴다. 내일 당장에라도 전쟁을 할 듯이 말폭탄을 주고 받고, 요란스럽게 핵 버튼의 크기를 자랑하던 두 정상은 12초간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너무나 빈약하고 알맹이가 전혀 없다. 대좌 결과 나온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도, 대략의 이행 시간표도 없었다. 곳곳에 ‘항구적이고 굳건한’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같은 현란한 수사들이 덧붙여졌지만 그 목표에 이르기 위한 절차나 시한, 보장방식 같은 구체적인 합의는 전혀 없었다.

우여곡절끝에 성사된 회담이 판문점 성명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라는 문구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말이 되는가? 2005년 9·19 성명에도 '검증 가능한(verifiable)'이라는 원칙이 담겼는데 이 보다 더 뒷걸음친 것이 말이 되는가?

솔직히 필자는 이번 회담에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이번 회담이 지난 25년 동안 한반도를 무겁게 짓눌러온 핵 공포를 걷어내줄 것으로 믿지 않았다. 현정권과 미국, 수많은 북한 전문가들이 마치 CVID가 금방 가능할 것처럼 국민들에게 '장미빛 환상'을 심어 왔지만 필자는 결코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동안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결코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이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안전 보장(CVIG)'도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 등을 고려할 때 결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고, 개방으로 인한 내부 붕괴 가능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일말의 기대는 가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CVID'가 회담의 목표라고 하루 전까지 못 박았기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 직전 “어떤 예측보다 좋은 결과”라며 회담 내용에 만족을 표시하면서 “새롭고 특별한 미·북 관계가 오늘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선언했고, 김 위원장도 “새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서명”이라고 화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대가 풍계리 핵 실험장의 폭파쇼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몇 개월의 외교적 격동이 한여름 밤의 꿈같은 쇼로 끝나버렸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대한 성공(great success)'을 가져오리라는 장미빛 전망으로 가득했던 북핵 담판이 사실상 뒷걸음질 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통해 한반도를 통일과 번영의 길로 인도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북핵 담판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철저한 국제공조와 강력한 압박으로 북한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비핵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만큼은 정말 북한을 '검증 가능한 핵 폐기'냐, 아니면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냐의 기로에 세워야 한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북한이 결코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단호하게 경고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합의문보다 더 걱정스럽다.

북핵 폐기에 시동도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선물부터 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 비핵화 로드맵도 만들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한미연합방위체계를 지탱하는 핵심인 연합훈련을 중단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연합군사훈련은 동맹 유지를 위한 필수 요건이다. 훈련 없는 군사동맹은 악기 없는 오케스트라다.(크리스토퍼 힐)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연합훈련을 조정한다면 동맹관계를 자해(自害)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훈련을 “매우 도발적”이라고 했지만 한미훈련은 북한을 위협하기 위한 게 아니라 철저한 방어훈련이다.

만약 두 정상이 한·미 훈련 중단과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를 놓고 ‘거래’하였다면 우리에게는 재앙이고 정말 ‘나쁜 합의’다. 정부는 책임지고 훈련 중단 철회와 안보 쇼크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북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조성의 길은 멀고 험난한데 날은 저물고 시간은 없다. 이럴수록 현란한 수사보다 차가운 이성으로 본질을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더욱 필요하다.

"역사적인 북·미 회담 성공을 뜨거운 마음으로 환영한다"는 문 대통령의 자화자찬(自畫自讚)식 논평으로는 결코 한반도의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글/서정욱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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