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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 꼭 기억해달라고…'허스토리'

부수정 기자
입력 2018.06.08 09:14 수정 2018.06.09 10:48

관부 재판 실화 소재…김희애·김해숙 주연

여성 인권 다뤄… 민규동 감독 연출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뉴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뉴

영화 '허스토리' 리뷰
김희애·김해숙 주연


"부끄러워서. 나 혼자 잘 먹고 잘산 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다룬 영화 '허스토리' 속 대사다. 극 중 문정숙(김희애)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6년간 관부 재판을 이끈 당찬 원고단 단장이다. 사업이 어려워져도 정숙은 할머니들을 놓지 않는다. 그녀에게 친구 신사장(김선영)이 묻는다. 왜 이렇게 이 일에 매달리냐고. 그러자 정숙이 피를 토하듯 뱉은 말이다.

'허스토리'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23회에 걸쳐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힘겨운 법정투쟁을 벌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명의 원고단과 이들의 승소를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관부 재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보상 판결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이룬 재판이지만,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는 일본 정부에 맞서 재판을 이끈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다뤘다.

1991년 부산의 여행사 사장 문정숙은 우연한 기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 전화를 개설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연을 듣는다. 피해자 할머니들 틈엔 정숙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던 배정길(김해숙)도 있었다. 거칠고 억세게 살아온 평양 출신 박순녀(예수정), 재판에 서는 걸 두려워하는 서귀순(문숙), 꽃신 할머니 이옥주(이용녀) 등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들고 세상 앞에 선다.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뉴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뉴

문 사장은 재일 교포 변호사 이상일(김준한)과 함께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진행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재판은 쉽지 않다. 일본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할머니들과 팽팽히 맞서고, 할머니들을 향한 비난도 이어지는데...

'허스토리'는 집단의 고통으로 환원될 수 없는 여성 개개인의 생생한 아픔을 다뤘다.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써 내려간 가슴 아픈 역사 이야기다. 감독은 할머니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건드리며 그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너무 아파서 감추고 싶지만, 용기 있게 아픔을 꺼낸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들린다.

위안부 소재 영화는 언제봐도 가슴도 아프다. 정숙의 말처럼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그때도 지옥, 지금도 지옥'이라고 외치는 할머니들의 외침이 가슴을 친다. 나는 할머니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영화의 백미는 재판 장면이다. 할머니들이 자신의 아픔을 토해냈을 때 마음이 울린다. "내를 본래 모습으로 돌리도!", "사과를 해라. 그래야 짐승에서 인간이 된다", "사죄 없이는 죽어도 온전히 못 죽는다", "세상이 안 바뀌어도 우리는 바뀌겠지" 등 대사가 가슴에 콕 박힌다.

영화가 마냥 무거운 건 아니다. 김희애는 부산 사투리를 쓰는 걸크러시 매력으로 통쾌함을 준다. 특히 김희애와 김선영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장면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할머니들이 서로 함께하는 장면에서도 자연스러운 유머 코드를 넣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내 아내의 모든 것', '내 생애 아름다운 일주일'을 만든 민규동 감독이 연출했다.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뉴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법정투쟁 가운데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판결인 '관부 재판'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뉴

민 감독은 10년 전부터 위안부를 다룬 영화를 만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1990년대 초반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최초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을 보고 돌멩이를 얹은 채 살았다. 10년 전부터 영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힘들고 불편한 이야기를 누가 보겠냐고 해서 좌절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러다 도저히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부끄러워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시나리오를 썼다"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 전혀 몰랐던 관부재판 이야기를 알게 됐다. 이 작은 승리의 기록이 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작은 승리 안에 큰 서사가 있다고 생각해 과감히 영화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숙의 대사를 인용하며 "이런 영화를 만들면 세상이 바뀌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세상이 꿈쩍 안 해도 영화 속 인물처럼 조금씩 바뀐다. 세상이 바뀌는 신호가 조금씩 있다"고 덧붙였다.

김희애,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김해숙은 "'그분들(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아픔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하고 겁 없이 뛰어들었다"며 "촬영을 시작하고, 그분들의 아픔을 단 0.001%라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고, 인물 각자의 아픔을 보며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저 자신을 내려놓고, 비우고 연기했다"며 "부족하지마 최선을 다해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겐 정말 힘든 작품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뜨거운 열정으로 작품에 참여했다. 배우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모습에 감동했다"고 전했다.

6월 27일 개봉. 121분. 12세 관람가.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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