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문 대통령 '중재자' 자처하다 독박쓰지 않으려면...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8.05.26 08:21 수정 2018.05.26 12:45

<칼럼>북이 우리를 무시하고 그 결과 미국이 우리의 효용가치 의심

냉철한 분석 상황 인식 객관적으로 추론해야 합리적인 대안 나와

24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같은 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가 거행된 만큼 외신들은 미국이 취소를 통지한 타이밍에 주목하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24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같은 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가 거행된 만큼 외신들은 미국이 취소를 통지한 타이밍에 주목하고 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20일도 안남기고 취소했다. 예정했던 12일 회담이 열릴 수도 있고 열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안개정국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다. 첫째는 미국이 주도권을 회복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의 중재자 역할은 끝났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취소발표 후 청와대의 반응은 ‘미북간 직접대화의 필요성’이었다. 한마디로 어중간한 ‘중간자’로는 지금 국면에서 대한민국의 위치를 잡기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냉정한 평가가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래서 복기해 보겠다. 북한의 외무성 갑·을이 개인의견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당국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긴장이 고조시켰다. 그러니 드디어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이 말했던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이 현실화시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회담이 열리기 전 상당기간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아직 기회는 있다. 다음 주에는 성사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던 트럼프가 한주 앞당겨 취소를 발표한 것은 성사를 위한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다음 주에 결정하면, 다음달 12일 정상회담을 다시 시작하기에 너무 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중하게 김정은에게 ‘재고하고 연락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 그 증거다. ‘극적인 연출을 좋아하면서도 실속을 중시하는’ 트럼프다운 발표다.

회담을 취소한 것이 단순히 북한의 ‘말폭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해 양측이 상대수장에 대한 원색적인 말폭탄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올해 들어 ‘언제 그랬냐’고 의심될 정도로 봄바람이 불어왔다. 이번에는 위기상황에도 양측 정상에 대해서는 자극을 최소화하려 신경쓰는 모습이 역역했다. 게다가 북한이 핵실험 갱도까지 공개적으로 폐쇄했다. 위성으로 확인했을 미국이 이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봐서 아직 그 ‘진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갱도 폐쇄이후 곧바로 정상회담취소를 발표한 것이 먹고 튀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과거와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렇게 전격적으로 취소할 것으로 예상할 예후를 보이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가 지나친 낙관으로 메시지를 놓쳤다는 지적도 있다). 남북이 나름 성의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왜 미국은 전격적인 취소결정을 내렸을까?

주도권을 잡으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회담 성공을 위해 상대의 신뢰도를 다시 한 번 시험하는 것이리라. 그 상대는 물론 김정은이다. ‘완전한 핵폐기(CVID)’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회담은 무의미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핵실험 갱도의 파괴는 신뢰의 단초가 될 수 없다. (그것도 입구만 폐쇄한 것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어차피 핵무기 완성을 공언했기 때문이고, 검증이 안 되면 핵보유는 정치적으로 사실이 된다. 이 시점에서 한번정도 이 부분을 따져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한편,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 대한 불신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일이 잘 될 때는 공을 나눌 수 있지만, 안될 때는 책임을 떠넘길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보인 문 대통령에 대한 트럼프의 성의없는 응대를 보면 일정한 선을 긋고 보겠다는 심산이 읽힌다. 정상회담 직전에 전화통화를 요청했던 트럼프가 정작 회담에서 건성 건성인 것을 보면 그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클 것이 뻔하고, 미·북, 한·중이 모두 기대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압박과 공격의 대상이 되고, 문 대통령과 시주석은 실패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질 대상이 된다.

만약 일이 계속 틀어져 회담이 최종 결렬되어 평화적 해결이 물 건너가면, 북한에 대해서는 ‘군사적 해결’의 요구가 더욱 커질 것이다. 제제·압박은 이미 많이 느슨해졌다. 다시 추스르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이다. 노력은 말할 것 없다. 압박의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이 과거와 같이 적극적인 협조를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중국국경이 느슨해진 데는 시진핑 주석의 의도가 있을 것이고 그 의도에는 배경이 있을 것이다. 그 배경을 문재인대통령이 만들어줬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북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차이나 패싱’의 우려를 나았을 것이고, 회담을 앞둔 북한은 그 틈을 노려 중국을 공략했다. 당연히 결과는 북의 의도대로였을 것이다. 불안했지만, 노벨상에 대한 욕심과 중간선거의 성공을 위해 트럼프는 이를 눈감아 줬다. 북한이 한국을 지레대로 미국과 중국을 움직였고, 종국적으로 중국을 국제제제의 대열에서 이탈시켰다. 제제와 압박에 숨죽이던 김정은이 돌고 돌아 주도권을 쥐는 형국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재자’를 자처하다가 ‘독박’을 쓸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그동안은 순풍이었다면 바람이 바뀌어 역풍이 됐다. 이제부터가 진짜 항해다. 목숨을 건...

우리나라 정치권은 일제히 ‘유감’이라는 반응이다. 청와대는 "북미 정상, 직접 소통방식 찾아 긴밀하게 대화해야"라고 했다. 당연한 대응이다. 회담의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다. 북한이 근래 우리를 무시하고 그 결과 미국이 우리의 효용가치를 의심하게 됐다. 우리는 설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연기를 김정은에게 통보하는 트럼프의 편지에도 ‘전해들은’의 주체인 우리 정부를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뉘앙스가 있었다) 양 당사자가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만만한 우리 정부만 두들겨 맞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이제라도 우리는 실속을 차려야 한다.

우리는 감상적으로 생각하고 기대를 앞세워서는 안된다. 냉철한 분석을 통해 상황을 인식하고 객관적으로 결과를 추론해야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성공했을 때 공은 누가 가져가나? 우리 정부는 지금 상황에서는 떡고물이 없다. 노벨상의 공동수상은 겸양이 아니라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만약 실패하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가나? 당연히 우리 정부다. 중국은 ‘빅2’의 한 축이다. 어차피 그들은 제국간의 게임이 있다.

이제 마지막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성공해도 먹을 것이 없다면, 갈등이 극대화될 경우 누구 편에 서느냐가 중요하다. 문 대통령의 말대로 ‘평화만 얻으면 된다’고 쳐도 마찬가지다, 평화는 어차피 힘의 균형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균형은 북·중과 한·미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 질 수 밖에 없다. 그 평화가 의미가 있으려면 우리의 선택은 명확하고, 증명되었듯이 미국의 편에 섰을 때 의미있는 중재도 가능하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중재자론’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겸손하게 ‘미국의 동반자’라고 대답한 문 대통령의 말은 매우 전략적이고 의미가 깊다. 적어도 외교현장에서 문 대통령은 프로다. 하지만 그것이 레토릭(rhetoric)이 아니라 더 깊은 인식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또,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도 그 전략이 바뀌어선 안된다. 우리는 외교적으로 구한말 이후 가장 민감한 시험앞에 놓여 있다.

글/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