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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노사 합의 끝나니 정부-GM 힘겨루기

박영국 기자
입력 2018.04.24 11:55 수정 2018.04.24 14:54

출자전환 후 차등감자, 10년 비토권, 외투지역 지정 등 쟁점 많아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왼쪽 두 번째)이 23일 인천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한국지엠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왼쪽 두 번째)이 23일 인천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한국지엠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출자전환 후 차등감자, 10년 비토권, 외투지역 지정 등 쟁점 많아

한국지엠 노사가 기나긴 대립을 끝내고 지난 23일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정부와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간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GM은 ‘한국지엠과 관계된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앞세워 정부와 산업은행의 지원을 촉구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최대주주 책임론’을 내세우는 동시에 철수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GM을 압박하고 있다.

GM 내에서 한국지엠 관련 사안을 총지휘하고 있는 배리 엥글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23일 노사 잠정합의안 확정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GM은 두 개의 중요한 신차를 한국지엠에 할당할 것”이라면서도 “노조와 합의에 이어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지원도 확정되면 할당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이해관계자들’인 산업은행과 정부가 지원 방안을 내놔야 신차 배정을 공식화하겠다는 의미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 역시 “노조 대표들이 회사에 양보를 해줌으로써 회사 회생계획이 진행되고 미래가 가능하도록 해줬다”면서 “다른 이해관계자들도 도와줄 것이라 믿는다”는 말로 정부와 산은의 지원을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최대주주인 GM의 지원방안 확정이 선행돼야 정부 지원도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잠정합의안 확정 직후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등이 참여한 관계기관 회의에서 “기존에 발표한 3대 원칙 하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실사를 진행하고, GM측과 경영정상화 방안을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3대 원칙은 ‘대주주의 책임있는 역할’, ‘주주·채권자·노조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장기적으로 생존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 등으로, 결국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 지원을 위해서는 최대주주인 GM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와 GM 모두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입장이 크게 갈린다.

정부는 한국지엠에 대한 GM의 지원과 생산기지로서의 역할 배정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내면서 GM이 한국에서 장기간 철수하지 않고 사업을 지속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2대주주인 산은으로 하여금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해 놓겠다는 복안이다.

반면 GM은 자사가 글로벌 사업계획에 맞춰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 계획을 주도하는 가운데 2대주주인 산은은 지분율 만큼 투자에 참여하고, 한국 정부는 세제혜택 등을 지원하라는 입장이다.

우선 한국지엠에 대한 자금지원 측면에서 GM과 정부의 입장이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 GM은 한국지엠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이자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27억달러(약2조9000억원)의 차입금을 출자전환한다는 방침이지만 이 과정에서 산은의 지분율이 기존 17%에서 1% 미만으로 축소되는 문제가 생긴다.

산은은 지분율이 축소되면 한국지엠 경영에서 GM의 독주를 견제할 권한(지분 15% 이상 보유시 갖는 주주총회 거부권)을 상실하게 되는 만큼 GM이 출자전환하면서 20대 1 수준의 차등 감자를 단행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GM은 27억달러를 날리고도 지분율 확대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사실상 출자전환이 아니라 ‘조건 없는 채무 탕감’이 되는 셈이니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GM이 출자전환 계획을 철회하면 한국지엠은 계속해서 채무 만기도래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맞아야 하고 막대한 이자 부담으로 경영정상화도 힘들어진다.

신차 배정과 맞물린 신규 투자에 있어서도 양측의 입장이 상충된다. GM은 한국지엠에 28억달러(약 3조원)을 투자하고 트랙스 후속 소형 SUV와 스파크를 대체할 CUV 등 신차 2종을 배정할 예정이다.

대신 2대주주인 산은에 지분율 만큼의 투자 참여를 요구한 상태다. GM의 요구대로라면 산은은 17%의 지분율에 비례해 5000억원을 투자해야 한다.

그동안 GM은 산은의 투자 참여가 확정돼야 신차 배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고, 23일 임단협 잠정합의가 이뤄진 직후 또다시 이를 강조했다.

반면, 정부와 산은은 GM에 10년 이상 지분 매각 제한과 산은의 비토권 등 경영 관여 권한 확보 등을 자금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른바 ‘먹튀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겠다는 것이다.

법인세 면제 등 세제 혜택이 동반되는 외국인투자지역(외투지역) 지정 문제도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한국지엠은 부평공장과 창원공장에 대해 각 지자체를 통해 외투지역 지정을 신청한 상태지만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이를 GM의 장기적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백 장관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가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국지엠 지원 방안으로)외국인 투자 지역 선정이나 조세감면 등의 방안이 있는데, 자율주행 기능 같은 것이 들어오면 신성장동력산업 투자 방식으로 다양한 형태로 정부 차원의 지원을 할 수 있어 신차 배정 문제에서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GM의 장기적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신기술을 탑재한 미래형 자동차가 배정돼야 ‘먹튀’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GM이 까다로운 조건들을 감수할 만큼 외투지역 지정에 따른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외투지역 지정을 받은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최대 혜택은 5년간 법인세를 100% 감면받고 이후 추가로 2년간 50%로 감면받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앞으로도 3~4년간은 흑자 전환 가능성이 높지 않은데다, 흑자를 내더라도 지난 4년간 누적 적자가 3조원에 달해 당분간 법인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외투지역 지정 요건을 갖추기 위해 GM 본사의 글로벌 제품개발 및 생산 계획을 재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굳이 외투지역 지정에 얽매이지 않고 신청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노사 합의라는 고비를 넘겼지만 앞으로 벌어질 정부와 GM간 협상에서 더 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어떻게든 결론은 나겠지만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줄다리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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