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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한국지엠 운명 가를 5일…노조, 냉혹한 현실 인정해야

박영국 기자
입력 2018.04.16 06:00 수정 2018.07.03 08:34

GM, 한국지엠 정상화 계획 철회하고 철수할 수도

지재권 없는 한국지엠, GM 철수시 빈 공장만 남아


한국지엠 노조원들이 3월 15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GM자본 규탄 및 한국지엠지부 임단협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한국지엠 노조원들이 3월 15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 본관 앞에서 열린 'GM자본 규탄 및 한국지엠지부 임단협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GM, 한국지엠 정상화 계획 철회하고 철수할 수도
지재권 없는 한국지엠, GM 철수시 빈 공장만 남아


공장 한 곳은 문을 닫았고, 수많은 동료들이 위로금 몇 푼 받고 실업자 신세가 됐다. 임금을 동결하고 성과급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회사는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며 각종 복리후생까지 없애자고 한다. 회사가 수조원의 적자를 내는 동안 최대주주는 돈을 빌려주고는 고리의 이자를 야멸치게 받아갔다. 그래놓고는 노동자들의 잘못이라고만 한다.

노동자들로서는 충분히 억울할 만도 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희생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고, 거리로 나가 투쟁하고, 사장실의 집기를 때려 부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런 원초적인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지난 2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국민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지엠의 최대주주인 제너럴모터스(GM)는 인건비를 줄이고, 2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지원에 참여하고, 한국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으면 한국지엠 경영정상화는 불가능하다고 사실상의 엄포를 놓았다.

우리 정부와 산은은 재무실사와 GM측의 채무 출자전환 등을 조건으로 협조에 동의했고, 한국지엠은 예년보다 서둘러 노조와 자구계획을 반영한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 착수했다.

하지만 두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엇 하나 마무리된 게 없다. 결국 GM은 한국지엠의 자금이 바닥나는 오는 20일을 ‘데드라인’으로 통보했다.

당일까지 포함해 불과 5일 남았지만 자금지원 여부의 판단 근거가 될 재무실사는 끝을 보이지 않는다. GM이 요구한 인센티브인 외국인투자지역(외투지역) 지정도 사실상 퇴짜를 맞았다.

정부와 산은, GM이 하는 일들은 회사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니 불가항력이라 쳐도, 한국지엠 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인 노사 임단협 교섭마저 여전히 평행선이다. 만나서 줄다리기를 하는 게 아니라 아예 2주 넘게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데드라인을 넘긴다면 GM은 두 달 전 했던 것처럼 충격적인 발표를 일방적으로 내놓을 수도 있다. 이미 GM 경영진이 한국지엠 경영정상화보다는 한국시장 철수 쪽으로 기우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20일 이후 법정관리 절차에 착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려온다.

물론 GM이 과거 고유가로 어렵던 시절 한국지엠을 소형차 생산기지삼아 재기의 발판으로 실컷 활용해 놓고, 활용 가치가 떨어지자 이자놀이까지 해가며 이익을 뽑아먹다 이제 와서 손을 털고 나가겠다고 한다면 비난 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GM의 이런 ‘비난 받아 마땅한’ 행위를 어디에다 호소할 것인가.

GM은 현대자동차가 아니다. 현대차라면 회사 전체가 위기에 빠지지 않는 한 단순히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국내 사업장을 폐쇄하진 않겠지만 GM은 다르다. 현대차가 고용대란으로 이어질 만한 일을 벌였다가는 정부 사정기관들이 달려들어 탈탈 털고, 경영진을 국회로 불러 면박을 주겠지만 GM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

GM을 ‘말없이 고이 보내줘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남은 한국지엠 사업장과 직원들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노동계 싱크탱크로 불리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냉철하게 잘 파악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직후 내놓은 ‘철수론 이후 한국지엠의 대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지엠은 어떤 지적재산권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GM이 철수하고 나면 누가 인수하건 한국지엠은 시장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GM이 철수하면 한국지엠은 쉐보레 브랜드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쉐보레 브랜드를 달고 판매되던 차량도 생산·판매할 수 없다. 즉 빈 공장과 수많은 유휴인력들만 남게 되니 인수자를 찾기 힘들다는 의미다.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남아 장사를 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끝까지 누구의 잘못인지 시시비비를 다퉈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짐 싸서 떠나도 아쉬울 게 없는 기업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기존에 누리던 것을 지켜내려다 일터를 송두리째 잃을 수도 있다.

“GM 자본은 당장 한국을 떠나라”는 구호는 속이 후련할 수는 있어도 현실적이지는 않다. 한국지엠 노조는 지금이라도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터를 지키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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