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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고려' 버리고 단호해진 산은…한국지엠 노조 선택은?

박영국 기자
입력 2018.04.10 11:43 수정 2018.04.10 20:17

대량해고사태 두려워 혈세 퍼주기 옛말

'지방선거 앞두고 설마...' 기대 버려야

한국지엠 노조 집행부가 5일 오후 부평공장 내 카허 카젬 사장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다.ⓒ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한국지엠 노조 집행부가 5일 오후 부평공장 내 카허 카젬 사장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다.ⓒ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대량해고사태 두려워 혈세 퍼주기 옛말
'지방선거 앞두고 설마...' 기대 버려야

유동성 위기 기업 구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정부와 산업은행의 태도가 과거에 비해 단호해지고 있다. 산은은 금호타이어와 STX조선해양 사태와 관련,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여론을 의식해 또다시 혈세 쏟아 붓기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구안 수용 없으면 법정관리’라는 단호한 태도로 해당 기업 노동조합의 협조를 압박했다.

이런 산은의 태도 변화가 한국지엠 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한국지엠 노조는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관심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STX조선 노사는 자구계획 이행에 대한 노사확약서 제출 시한인 9일 자정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시한을 넘긴 끝에 의견접근을 이뤄 잠정 합의까지는 했지만 최종 결론을 내리진 못한 것이다.

산은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STX조선해양 노조가 자구계획 제출을 거부함에 따라 창원지방법원에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향후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인 자구계획도 확보할 수 없게 된 만큼 이미 발표된 방침대로 회생절차로의 전환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법정관리 위기에 놓인 STX조선 노조는 이날 오전 황급히 비상대책위와 조합원 설명회를 잇달아 열어 지난 밤 회사측과 합의한 자구계획안에 대한 조합원 동의를 얻는 절차를 진행했다.

산은이 법정관리 방침을 철회할지 여부는 일단 STX조선 노사가 자구계획안에 대한 확약서를 산은에 제출한 이후가 돼 봐야 알겠지만 산은의 단호한 태도가 ‘무조건적인 버티기’는 더이상 통하지 않음을 노조에 보여준 결과로 평가된다.

앞서 금호타이어 사태와 관련해서도 산은은 단호한 태도로 노사간 자구안 및 해외자본 유치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금호타이어 노사는 법정관리 데드라인이었던 지난달 30일까지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진통을 겪었으나 당일 저녁 늦게까지 이뤄진 노사·채권단·정부간 간담회에서 극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산은은 노사 합의를 이룬 이후에도 각종 채권 만기가 도래하는 4월 2일 이전까지 조합원 동의를 구하는 등의 절차를 마무리할 것을 요구했고, 노조는 결국 주말인 1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합의안을 가결시켰다.

STX조선과 금호타이어의 사례는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산은이 대량 해고사태와 지역민심 악화로 이어지는 법정관리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허황된 것임을 노동계에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산은이 법정관리 사태에 따른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원리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게 된 것은 과거 부실기업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혈세를 투입했다가 비난을 받은 ‘학습효과’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 역시 부실기업의 처리 문제에 있어 ‘정치적 고려’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금호타이어 법정관리 데드라인인 지난달 30일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위시한 정부 경제팀 수장들이 “노조가 자구계획 및 해외 자본 유치에 동의하지 않으면 법정관리가 불가피하고 일자리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어 같은 날 청와대에서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설마 매각까지 하겠느냐’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은데 절대로 정치적인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밝혔다.

이처럼 단호해진 정부와 산은의 태도는 한국지엠 사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한국지엠은 앞선 두 회사와 달리 산은이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전권을 쥔 회사는 아니지만 산은이 2대 주주로서 GM 본사와 협의를 통해 경영정상화를 추진 중인 만큼 회사의 운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지엠의 회생 지원은 두 가지가 맞물려 돌아간다. GM 본사의 차입금 출자전환 및 투자, 신차배정, 그리고 우리 정부와 산은의 자금지원 및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등 세제혜택이다.

정부는 GM이 신차배정 등 ‘먹튀’ 우려를 지울 만한 충분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내놓아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GM은 한국지엠이 인건비 절감을 통해 충분한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투자타당성 평가를 통해 투자와 신차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한국지엠이 내놓은 고강도 자구안에 대한 노사 합의가 문제를 푸는 열쇠다. GM측이 밝힌 한국지엠의 데드라인은 오는 20일이다. 이 때면 한국지엠의 운영자금이 바닥나고 산은이 진행 중인 실사도 잠정결론이 나온다.

이 때까지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GM의 지원은 물 건너가고 한국지엠은 지급불능 사태에 빠진다. GM이 손을 떼면 정부와 산은도 한국지엠을 지원할 명분이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혹시 기대했었을지 모를 ‘정치적 고려’ 역시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STX조선과 금호타이어 처리 과정에서의 단호한 태도가 한국지엠에 대해서만 달라질 이유가 없다. 더구나 한국지엠은 외국 기업이 대주주인 만큼 혈세 투입에 따른 거부감이 더 크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일 한국지엠 부평 본사를 방문해 “노사간 조속한 합의안 도출이 한국지엠 경영 정상화에 대한 공감대와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구체적인 정부의 지원 방안도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먼저 GM 본사가 뭔가를 보여준 뒤 정부와 산은에 도움을 요청해야 되는데, 자구안 합의가 없으면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자구안 합의를 통해 투자타당성이 확보돼야 GM 경영진도 한국지엠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면서 “투자타당성에 대한 근거 없이 한국지엠에 대한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가는 GM 본사 경영진이 배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버티고 졸라댄다고 돈이 나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지엠 노사는 오는 14일 임금 및 단체협약 8차 교섭을 가질 예정이다. 지금까지 사측은 임금동결, 성과급 지급불가, 복리후생 축소 등의 내용을 담은 자구안을 바탕으로 교섭을 진행하자는 입장이었으나, 노조는 임금과 성과급은 양보하되 군산공장 폐쇄 철회와 복리후생 유지가 전제되지 않는 협상은 의미가 없다며 버텨왔다.

다만 최근 들어 노조가 고용권을 보장해준다면 단체협약에서도 큰 틀에서 합의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태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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