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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과 트럼프와 김정은, 3인 3색의 속내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8.03.19 05:41 수정 2018.03.19 09:25

<칼럼>트럼프, 회담장서 남북 민족주의자들과 맞서야

키진저, 노벨평화상 월맹, 통일 얻었지만 남베트남은...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데일리안/연합뉴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데일리안/연합뉴스


○문재인 = 외교적 천재이거나 자기 나라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자.
○도널드 트럼프 = 벼랑 끝 전술의 달인이거나 사기 게임의 졸(卒).
○김정은 = 이 엄청난 정치적 도박에서의 가장 비범한 도박사(일지도…).


지난 9일 BBC는 “트럼프와 북한의 대화-21세기의 정치적 도박”을 제목으로 한 기사에서 3인을 그렇게 묘사했다. 남‧북 및 미‧북 간 ‘북핵 대화’의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들에게 붙여질 별칭이겠는데, 이를 좌지우지할 자는 바로 김정은이다.

그는 신년사를 통해 올리브 가지(평화의 상징)를 한국 측에 내미는 기교 넘치는 선전술을 보여주긴 했지만 직접, 앞으로 있을 일련의 회담에 대해 말한 적은 없다. 물론 김영철을 보내 자신의 의도를 밝히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을 통해서도 문 대통령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메시지를 보냈을 게 틀림없다.

올리브 가지 덥석 받은 문 대통령

그걸 문 대통령이 덥석 받아 안았다. 뿐만 아니라 곧바로 이들을 트럼프에게 보내 ‘김정은의 뜻’을 전달케 했고, 트럼프는 전언(傳言)을 다 듣기도 전에 수용의사를 밝혔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김정은의 ‘올리브 가지’가 요술방망이 같은 조화를 부린 셈이다. 북한 책략팀의 교활하지만 교묘한 꾀가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로 인해 심각한 체제적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고난의 행군’ 때 상황이 재연되면 김일성 왕조는 3대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제재 완화’뿐이다. 그걸 얻어내려면 줄 게 있어야 한다. ‘핵 및 ICBM 포기’가 그것이다.
과거엔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거래조건이지만 지금은 변통의 여지가 생겼다.

①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핵무력은 이미 완성됐다. 아니라도 반걸음쯤만 남겨두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핵전쟁을 일으키자고 개발해온 것이 아니라면 이젠 ‘시설‧기술의 봉인’으로 큰 거래를 시도할 만하다. 봉인이란 언제든 뜯어버리면 그만이니까.
②미국이 이 조건을 수용할 것으로 기대하진 않겠지만 협상은 항복과 다르다. 미국이 협상의 형식을 받아들인다면 타협도 가능하다. ICBM을 완전히 포기하고 핵은 봉인하는 선에서 거래를 시도할 수 있다. 외교노선을 ‘친미’로 바꾸겠다는 조건도 생각해 볼만하다.
③때맞춰 한반도의 남쪽에는, 북한 체제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진보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국제사회에 대해 북한핵개발을 비호했던 과거 정부의 계보를 이은 정부다. 당장의 가시적 업적이 필요한 만큼 남북관계의 진전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면,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④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핵 문제와 관련해 결단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러다 정말 북한의 핵무력 완성을 세계가 확인하게라도 되면 트럼프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동아시아의 세력판도에 엄청난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 그때 가서 군사적 행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진퇴양난의 처지인 상대에게 ‘올리브 가지’는 훌륭한 미끼가 된다.

이 정도의 승산이라면 김정은이 아니라 누구라도 시도해 봄직하다. 물론 그에게서 핵포기는 정권 포기나 마찬가지다. 강성대국의 깃발은 핵무력의 깃대에 달려서만 펄럭일 수 있다.
북한은 그냥 독재국가가 아니라 사이비 신정체제다. 가짜 신(神)이라도 그 체제 안에서는 유일한 권위와 권력의 근원이다. 군사력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상대가 누구든 당당히 맞서 싸울 동안엔 추종자들과 주민들의 충성‧복종을 확보할 있다. 그러나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 순간 신은 이끼 낀 석상의 처지가 되고 만다.

김정은의 술수 對 트럼프의 계산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제재를 완화하는 길은 평화협상이다. 마주 앉아 평화를 논의 중인 상대에 대해 경제적 군사적‧압박을 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기존의 제재도 느슨해지기 십상이다. 이런 식의 ‘시간 벌기’ 계략은 그간에도 효과가 거듭 입증됐었다.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과 정부가 속아 넘어갈 리 있겠느냐고 하겠지만 알면서 끌려가야 할 경우도 있는 법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권력은 총구가 아니라 선거에서 나온다.

①문재인 정부는 취임 후 처음 맞는 전국 범위의 선거(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다. 빛나는 승리를 쟁취하지 못하면 문 대통령의 국정 장악 및 견인력이 약화될 위험성이 있다. 당장의 효과로는 북핵 위협의 경감 또는 해소만한 게 달리 없다. 일단 분위기를 띄우는 것만으로도 성과는 다대할 것이다.
②이른바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나 피로감이 커지기 전에 ‘혁명정부’로서의 혁혁한 공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김정은과의 관계 개선에 지극정성을 쏟아 온 게 아니던가.
③‘잘 되면 노벨 평화상 감’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거니와 북한 핵문제를 풀어내는 업적을 이룰 경우, BBC의 지적처럼 외교의 천재로 칭송받을 수 있다. 굳이 ‘혁명정부’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정통성 정당성을 인정받게 되고 개인으로서는 더 없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누군들 욕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트럼프로서는 말 그대로 꽃놀이패가 된다.

①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대해 거부감을 숨기지 않는 한국의 문재인 정부에 코뚜레를 꿸 수 있다. 김정은과의 대화로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자신의 외교적 업적이 되고 안 되면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책임이 된다.
②국내적으로 정치적 입지가 악화일로에 있다. 게다가 중간선거가 11월에 실시된다. 전도가 불투명할 뿐 아니라 어둡기까지 하다. 북핵 협상에서 진전이 있게 되면 정치적 위기 돌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협상을 시작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얻을 게 적지 않다.
③만약 협상을 통해 김정은의 굴복을 이끌어내고 친미정책 선회를 확약 받는다면 이야말로 트럼프식 정치리더십의 승리가 된다. 그의 기업가적 마인드 및 전략이 미국 대통령 리더십의 새 지평을 여는 것이다. 공적부에도 자신의 이름을 맨 앞에 올릴 수 있다.

각자의 속내는 뻔하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서로 속이는 게임임을 알고서 회담장에 나가겠다는 것이다. 다만 구도는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과거엔 한‧미 대 북한이라는 1대1 협상 구도였던 데 비해 지금은 한‧미‧북 3대3 구도다. 한국과 미국의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한국과 북한의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 트럼프는 남북한의 민족주의자들과 맞서야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핏발선 눈으로 총구 겨누는 북한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김정은 체제가 몰락하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우리나 미국의 기대에 순순히 부응해 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일단 남북 정상회담은 성사될 것이다. 거기서는 우리 측의 일방적 이해와 협조가 요청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은 평화 의지를 강조하며 문 대통령에게 대미 공조와 경제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남측을 향해 핵무기를 쓸 일은 없다”는 따위의 황당한 보장을 미끼로! 반면 미‧북회담의 성사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은 핵포기를 전제로 한 회담이 되기를 바랄 것이고, 북한은 일단 만나서 조건을 논의하자는 입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비접촉으로 시간을 끌지도 모른다. 그게 북한의 상투적 수법이니까.

회담이든 협상이든 반대할 까닭은 없다. 그렇지만 협상의 목표는 분명해야 한다. 5000만 국민이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사는 상황을 예방 혹은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불량배를 돈으로 달래는 식의 거래는 절대로 안 된다. 점점 요구가 커지고 거칠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에 매몰되어 동맹을 등지는 일이 없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을 대하는 상식적이고 무난하고 확실한 방법은 한미공조 강화다. 미국이 우리와 다른 길을 가려 할 때 우리에겐 가공할 사태가 닥칠 수도 있다. 우리는 민족공동체 아닌 국민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는 핏발선 눈의 동족보다는 우리 안전을 지켜주는 선량한 이웃이 백번 천번 낫다. 해방이후 70여년 간 경험으로 확인한 바가 그것이다.

< 사족 > 1973년 1월 27일 ‘베트남전쟁 종결과 평화회복’이라는 이름의 파리협정이 성립됐다. 이 공로로 당시의 헨리 키신저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과 레둑토 북베트남 측 대표단 특별고문이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가 됐다. 키신저는 수상했으나 레둑토는 아직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미국인은 노벨평화상을, 북베트남인은 통일을 챙겼다. 남베트남인이 얻은 것은 조국의 패망, 가혹한 숙청, 참담한 보트피플 신세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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