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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노조는 왜 임금 대신 복리후생을 택했나

박영국 기자
입력 2018.03.19 06:00 수정 2018.03.19 07:35

기본급 동결은 회사 상황 개선시 소급해 회복 가능

보편적 기준 크게 넘는 복리후생은 한 번 폐지하면 복원 힘들어

임한택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장이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주최로 열린 '공장폐쇄철회! 경영실사노조참여! 특별세무조사! 먹튀방지법제정!' 대정부(산업은행,국세청,국회)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임한택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장이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주최로 열린 '공장폐쇄철회! 경영실사노조참여! 특별세무조사! 먹튀방지법제정!' 대정부(산업은행,국세청,국회)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기본급 동결은 회사 상황 개선시 소급해 회복 가능
보편적 기준 크게 넘는 복리후생은 한 번 폐지하면 복원 힘들어


한국지엠 노사가 이번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5차 교섭을 예정 중인 가운데 노동조합이 기본급 인상 및 성과급 등 임금성을 양보하고 비임금성에 해당하는 복리후생을 택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지엠 노조는 앞서 지난 15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기본급을 동결하고 성과급을 받지 않기로 하는 등 회사측 제시안 일부를 수용한 요구안을 확정한 뒤 회사측에 제출했다.

임금성에서의 양보는 일견 엄청난 결단으로 비쳐지지만 업계에서는 노조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절묘한 수를 내놓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노조는 사측 제시안에 포함된 복리후생 항목 삭제 혹은 축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상 복리후생 항목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와 관련 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 국민들이 보기엔 기본급 동결과 성과급 포기가 주된 것이고, 복리후생은 부수적인 것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장기적인 비용구조 개선 측면에서 보면 복리후생 축소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지엠을 포함한 완성차 업체들은 그동안 강성노조의 압박에 밀려 일반 직장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복리후생 혜택을 단협 조항에 포함시켜왔다.

사측의 제시안을 보면 한국지엠은 그동안 휴직자에게 평균임금의 100%를 지급해 왔으며 이번 임단협에서 70%로 낮추자고 제시했다. 휴일중복수당도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해 왔다(100%로 낮추자고 제시). 근속연차휴가시에는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했다(100%로 낮추자고 제시).

공장이 멈춰 출근하지 않더라도 그 원인이 회사귀책사유일 경우 평균임금의 일정 비율을 지급해 왔다. 일명 ‘생계안정유지 프로그램’에 따라 연간 1~5일 휴업시 평균임금의 70%, 6~10일은 75%, 11일 이상은 80%를 지급했었다(폐지요구).

전 조합원들에게 복지포인트 10만원, 설·추석 특별 복지포인트 15만원을 지급해 왔고, 10년 이상 근속자에게는 위안 잔치도 열어줬다(이상 폐지요구).

통근버스 무료이용은 물론, 3년 이상 근속자에게는 월 50ℓ 상당 자가운전보조금을 지급했고, 중식도 무상으로 제공했다. 취학 전 자녀에게는 1년간 분기별 20만원(연 80만원)의 유아교육비를 지급했다.(이상 폐지요구)

학자금도 중·고교 입학금·등록금·육성회비 전액과 대학 입학금·등록금 전액(최대 12학기)을 자녀수 제한 없이 제공했다(자녀수 2명으로 제한, 2명 이내는 3년간 시행 유보 요구).

종합검진, 한방 건강관리 비용을 회사에서 지원해줬고, 입원시에도 본인부담금 월 10만원을 초과하는 비용은 회사에서 내줬다(3년간 시행 유보 요구).

임직원들이 한국지엠 차량을 구입할 때는 근속연수별로 21~27%를 할인해줬다(15~21%로 축소 요구).

회사측에 따르면 한국지엠이 비급여성 복리후생비로 연간 내는 비용은 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측 요구대로 일부 항목을 폐지·축소할 경우 절반가량인 1500억원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노조가 포기를 선언한 성과급 지급액인 1400억원(인당 1000만원 지급시)보다 많은 금액이다.

사실 이 정도의 복리후생은 일반 직장인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한 수준이지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크게 놀라울 게 없는 수준이다. 현대·기아차 등도 이에 못지않은 복리후생을 제공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 한 관계자는 “그동안 완성차 업체들이 강성노조와 매년 임단협으로 진통을 겪는 과정에서 과도한 임금인상을 막는 대가로 하나 둘씩 내준 복리후생 혜택이 다른 업종에서 보기에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런 실정인지라 노조 입장에서는 복리후생을 유지하는 게 기본급을 올리고 성과급을 받아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일 수 있다.

당장 실리적으로 기본급 인상분(노조 추정 250억원)보다 복리후생비 규모가 큰데다, 성과급은 해당 연도에 국한되지만 복리후생은 매년 제공받는다.

장기적으로 보면 복리후생 항목 유지는 노조에게 더욱 중요하다. 임금이야 앞으로 회사 상황이 나아지면 과거 동결분을 소급해 단숨에 회복할 수도 있고, 성과급도 다시 받아낼 수 있다.

특히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현 규정이 유지된다면 기본급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언젠가 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리후생은 보편적인 시각을 벗어나는 수준이다 보니 향후 회사 사정이 나아진다고 해도 이를 복원시키기는 쉽지 않다. 설령 일부 복리후생 항목을 복원시킨다 해도 기존 비임금성이었던 항목을 임금성에 포함시키는 변화가 가해진다면 최저임금 상승을 임금인상의 지렛대로 삼기도 힘들어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본급은 나중에라도 큰 폭으로 올려 기존 동결로 손해 봤던 부분을 단숨에 만회할 수 있지만, 복리후생은 중식제공 정도라면 모를까 보편적 수준을 벗어나는 항목은 이미 폐지된 것을 다시 살리긴 쉽지 않다”면서 “한국지엠 노조는 임금성 부문을 양보해 동정여론을 유도하면서도 복리후생은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기존 고임금 체제를 언제든 회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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