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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와 실격 사이’ 김빠지는 쇼트트랙 규정

김윤일 기자
입력 2018.02.14 15:33 수정 2018.02.14 18:04

최민정 500m 결승에서 진로방해로 실격

최민정 밀친 킴 부탱은 구제돼 동메달

최민정의 실격은 어쩔 수 없지만 킴 부탱의 동메달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 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최민정의 실격은 어쩔 수 없지만 킴 부탱의 동메달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 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의 전통적인 효자 종목 쇼트트랙이 이번에도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애먼 피해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앞서 여자 대표팀의 에이스 최민정(20·성남시청)은 사상 첫 500m 금메달에 도전했지만 결선서 아쉽게 실격 처리되고 말았다.

실격의 이유는 충분했다. 최민정은 2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 2위로 달리던 킴 부탱(캐나다)을 제치기 위해 아웃코스를 공략했고, 이 과정에서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왼손을 빙판에 짚었다. 그러나 이 부분이 문제였다. 심판은 비디오 판독을 통해 최민정이 킴 부탱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판정했다.

결국 최민정은 은메달이 취소됐고 4위로 돌아온 킴 부탱이 동메달로 승격되는 어부지리 기쁨을 누렸다.

진짜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분개한 국내 네티즌들은 킴 부탱의 SNS로 몰려가 한글은 물론 영어로 무분별한 욕설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킴 부탱 역시 최민정으로부터 진로를 방해받기 전 두 차례에 걸쳐 손으로 밀치는 모습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평소 SNS를 즐겨 사용하는 킴 부탱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결국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국내 네티즌들이 분노하는 까닭은 오롯이 킴 부탱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 원인은 모호한 판정을 내린 심판들이기 때문이다. 즉, 함께 반칙을 한 킴 부탱이 페널티를 받지 않은 부분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룬다.

쇼트트랙은 태생적으로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지닌 종목이다. 스피드 스케이팅처럼 기록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닌, 순위 경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쇼트트랙에서 세계 신기록 달성 여부는 그리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인, 아웃 코스 공략과 몸싸움, 자리 선정, 막판 스퍼트 등 상황에 맞는 치열한 전략 싸움이 크게 요구되는 종목이라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어이없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14 소치 올림픽 여자 500m 결승이다. 당시 출발과 함께 선두로 치고나간 한국의 박승희는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가 무리하게 안쪽을 파고들다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와 접촉했고, 함께 넘어지며 박승희까지 끌어들였다. 이때 금메달은 꼴찌였던 중국의 리지안루에게 돌아갔다.

쇼트트랙의 출발은 공정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다. ⓒ 게티이미지 쇼트트랙의 출발은 공정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을 경우가 있다. ⓒ 게티이미지

준결승을 포함한 예선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어드밴티지 출전권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결선에서 선수 구제책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이 따라도 우승할 수 있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곳이 쇼트트랙이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규정 297조 5항에는 ‘경기 결과에 영향을 주는 규정 위반이 발생하면, 심판장이 경기를 중단 시킬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다만 이 조항이 발동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ISU도 매 대회 때마다 논란이 불거지는 쇼트트랙에 대해 계속해서 규정을 손질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것이 쇼트트랙의 매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당하는 입장에서 손실과 충격이 어마어마하다.

물론 이번 최민정의 경우, 반칙을 범한 것이 사실이고 규정에 따른 실격 처리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킴 부탱에 대한 모호한 판정으로 심판진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것 또한 마찬가지다. 더욱 큰 우려는 이제 막 시작된 쇼트트랙에서 이보다 더한 일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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