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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이 열리는 나무를 키우는 청춘예찬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8.02.10 05:00 수정 2018.04.06 08:38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21> 우메오 대학교 유학생 김도희 씨

나와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 찾아 떠난 유학길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스웨덴 우메오 대학교에서 관광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도희 씨. 그는 행복은 희생이 아닌 자기 완성이라고 믿고 있다. (사진 = 김도희 제공) 스웨덴 우메오 대학교에서 관광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도희 씨. 그는 행복은 희생이 아닌 자기 완성이라고 믿고 있다. (사진 = 김도희 제공)

해방과 한국 전쟁, 그 엄혹한 시대를 보내고 나니 대한민국을 지배한 것은 한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은 가난이었다. 그 처참하고 비루한 삶을 겨우겨우 살아낸 인생들이 있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까지 가난과 그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안간힘, 그 안간힘에 기댄 군사독재의 퇴행, 마치 역사의 통과의례처럼 처절하게 싸우면서 살아남은 인생들이 있었다.

그렇게 힘겨움이 일상이었던 이들을 부모로, 또는 조부모로 두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생들은 어떨까? 풍요와 자유를 만끽하며 원대한 미래에 대한 꿈을 힘껏 펼치고 있을까? 가치 있는 도전 앞에 타당한 용기를 내며 내일의 찬란한 태양을 확신하고 있을까?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풍요니 자유니, 또는 도전이니 용기 같은 것들은 정해진 답이 없는 논술형 주관식 문제다. 더 정확히는 답이 정해지지 않은 교양 철학 시험이고,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 수학 공식이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은 제 나름의 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20세기를 살아낸 부모님들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

스웨덴 우메오(Umeå) 대학교에서 관광학 석사 과정에 있는 김도희(27) 씨도 그런 한국의 젊은이 중 하나다. 열심히, 죽어라 열심히 살기는 했지만 자신의 인생이 온전하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부모님의 세대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신의 행복이 사회의 행복을 견인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이 먼 땅 스웨덴에 온 것이다.

우메오는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640여 km, 자동차로 힘껏 달려도 7시간, 기차를 타도 6시간 넘게 걸리는 북위 63도 선 북극권의 턱 밑에 있는 도시다. 우메오 대학교가 도시의 중심인 대학 도시인지라 13만 명의 인구 중 젊은 대학생들의 비율이 높다. 수도인 스톡홀름에서도 꽤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점점 성장하는 도시의 표본이다.

도희 씨는 2016년 8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우메오에 왔다. 그를 스웨덴으로 이끈 것은 ‘관광학’이 아니다. 스웨덴 자체가 그를 불렀다. 그는 스웨덴에 오기 위해 ‘석사’라는 과정을 이용한 것이다. 스웨덴 정부의 전액 장학금은 그가 스웨덴에 오기 위한 아주 적절한 도구였다.

2016년 11월 우메오 대학교에서 열린 글로벌 빌리지. 유학생들이 속한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인데, 김도희 씨도 다른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참가했다. (사진 = 김도희 제공) 2016년 11월 우메오 대학교에서 열린 글로벌 빌리지. 유학생들이 속한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인데, 김도희 씨도 다른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참가했다. (사진 = 김도희 제공)

“사실 스웨덴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관광이라는 산업이 발달한 나라는 아니죠. 관광을 공부하려는 생각만 있었다면 굳이 스웨덴이어야 할 이유가 없었죠. 평소 행복한 삶과 좋은 사회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부모님 세대가 가족들을 위해 본인의 삶을 희생했잖아요. 정말 감사하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행복한 삶, 인간다운 삶의 조건은 무엇일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외국으로 눈을 돌렸고, 스웨덴에 오게 된 거죠.”

도희 씨는 수차례의 해외여행을 통해 유럽에 특별한 흥미가 생겼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나라가 하나의 연합체로 공생하는 게 흥미로웠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일과 삶의 균형과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 그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자신이 나고 자랐던 한국은 그 두 가지가 모두 결여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머리 스타일에 똑같은 옷을 입고 면접을 보거나 출근을 하고,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게 싫었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대학을 가고, 어렵사리 취업을 하고 일을 하는데도 사회에 불평불만이 쌓여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레 일과 삶의 균형이 자리 잡혀 있고, 꽤나 안정적으로 사회를 운용하고 있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스웨덴에 오기 전부터 도희 씨의 해외여행은 그런 삶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는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을 즐긴다. 카우치 서핑은, 여행자가 잠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는 것(surfing)’이다. 에어비앤비 형태의 숙박과는 다르다. 집 주인은 여행자에게 잠을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제공한다. 즉 알지 못하는 현지인과의 일시적인 동거인 셈이다.

‘여행자’이지만 도희 씨는 ‘관광객’이 아닌 낯선 곳에서의 살아보기를 추구했다. 관광 명소를 둘러보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경이로운 자연과 조우하는 것도 좋지만 잠시나마 ‘그곳 사람’이 돼 보는 것이었다. 스웨덴으로 유학을 오기 직전인 2016년 6월 스웨덴과 덴마크를 여행할 때 카우치 서핑과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직접 호스트를 찾았고, 덴마크 라트비아 이란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의 집에 신세를 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도희 씨는 ‘그곳에서 살아보기’로 스웨덴 사회의 합리적인 행복 추구를 알 수 있었다.

“스웨덴은 철저히 가정 중심의 사회예요. 우리 젊은이들이 꿈꾸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개인의 일(Work)과 생활(Life)이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 잘 실현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죠. 일하는 시간도 유연하고, 육아 휴직도 부부가 필요에 의해 번갈아가며 480일 동안 쓸 수 있고요. 이런 여러 가지 제도들을 통해 사회는 가정의 행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죠. 열심히 일한만큼의 타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 그것은 ‘행복이 실현되는 삶’이니까요. ‘행복한데, 왜 이리 힘드니’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죠.”

지난 해 2월 김도희 씨와 한국 유학생들이 주최한 '김밥 워크숍'은 우메오 대학교 안에서도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행사 중 학교 측에서 김도희 씨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 = 김도희 제공) 지난 해 2월 김도희 씨와 한국 유학생들이 주최한 '김밥 워크숍'은 우메오 대학교 안에서도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행사 중 학교 측에서 김도희 씨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 = 김도희 제공)

우메오 대학교에서 도희 씨의 삶도 이런 ‘워라밸’로 가기 위한 워밍업이다. 그의 유학 생활은 스스로의 행복한 노력으로 인해 흥겹다.

도희 씨는 지난 2월 다른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김밥 워크샵’을 개최했다. 음식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고 싶어 직접 기획했다. 새 학기에 우메오로 오는 한국 친구들에게 김, 단무지, 김밥말이 등 여기서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을 가져오게 했다. 45명이 접수해 두 개의 세션으로 나눠서 김밥 워크샵을 진행했다. 한국 음식도 소개하고 서로 음식을 만들면서 각자의 문화, 꿈, 여행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행사였다. 참가자들 모두 만족했다.

이런 행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우메오 대학교의 글로벌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덕이었다. 우메오 대학교는 굉장히 국제적인 대학교다.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에서 온 교환학생, 석사 등 많은 학생들이 다닌다. 한국의 대학들과 파트너십도 잘 돼 있다.

공부 분위기도 자유롭다. 특히 석사의 경우에는 강의식 수업보다 세미나 형식이 주를 이룬다. 우메오 대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매학기 이뤄진다는 것이다. 스웨덴과 외국 학생들이 4대 6 정도로 섞여서 그룹이 형성되는데, 함께 각각의 문화를 체험하기도 하고, 같이 요리를 하기도 하고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우메오 대학교는 ‘국제 학생 만족도 부문’에서 유럽 최고 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다.

도희 씨는 다른 학생들과의 글로벌한 만남만큼 교수들과의 관계도 특별했다.

“한국만큼 끈끈한 유대관계를 찾기는 어려워요. 워낙 혼자 공부해야하는 것이 많기도 하지만 스웨덴과 한국의 문화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할 때는 늘 상담해 주고, 조언을 해주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찾기 어렵죠. 하지만 학생과 교수 사이의 위계질서가 없다는 것은 합리적이고 이상적이에요.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 예의를 갖추고 항상 대화에 임하며, 교수도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니 힘든 점도 쉽게 털어 놓고, 함께 솔루션을 찾을 수 있죠.”

‘나를 완성하며 행복해지기’를 찾아가는 도희 씨의 여정은 이런 스웨덴이 품고 있는 다양성과 합리성, 그리고 ‘워라밸’을 통해 완성돼 가고 있다. 그것은 우메오라는 지정학적 개념 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의 유대감, 교수-학생의 이성적 연결고리, 그리고 스웨덴 사회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합리주의로 인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람 속 터지기 직전까지 몰고 가는 느린 행정 처리, 좀처럼 다가가도 좁혀지지 않는 스웨덴 사람들과의 마음의 거리, 그리고 기약 없이 심심해서 지루할 수도 있는 일상생활 등은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유학생으로서는 스웨덴의 부정적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스웨덴 유학을 꿈꾸는 이들에게 얘기한다.

우메오 대학교는 스웨덴 학생보다 외국 유학생이 더 많은 글로벌 대학교다. 김도희 씨와 동료 학생들이 공항에서 유학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 Yi Lu 제공) 우메오 대학교는 스웨덴 학생보다 외국 유학생이 더 많은 글로벌 대학교다. 김도희 씨와 동료 학생들이 공항에서 유학생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 Yi Lu 제공)

“모두 목적이 다를 거예요. 학위 자체의 관심, 스웨덴 사회에 대한 관심 등등. 목표를 분명히 하고 온다면 인생의 전환점이 되거나 새로운 기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 곳에서 보낸 시간은 인생에서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저는 여기서 가족이나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많이 깨달았거든요. 그 목적이 무엇이든 목표만 분명히 하고 오면 원하는 바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예요.”

도희 씨는 오는 6월이면 학위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에서 유학생들에게 주는 구직 비자로 이 곳에 더 머무를 계획이다. 스웨덴 사회 이야기를 한국에 알리고 싶다. 복지국가의 환상을 품고 왔지만, 여기도 겪고 있는 진통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성, 복지, 평등 등에 관해 우리 사회에 전할 수 있는 시사점이 많아 그런 것들을 한국과 나누고 싶은 것이다. 반대로 아직 한국이 낯선 스웨덴에게 한국을 알리고 싶다. 특히 한국의 음식이 핵심이다. 음식이야 말로 한 국가의 언어, 역사, 문화, 관습을 담고 있는 문화적 총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희 씨는 이미 그런 일을 제법 열심히, 그리고 관심 속에 하고 있다. 다음카카오 브런치에 ‘헤이 스웨덴(www.brunch.co.kr/@enerdoheezer)’이라는 이름으로 스웨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독자가 2000명에 육박한다. 하루 평균 300명 정도가 방문하는 등 제법 인기가 많다. 스웨덴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 그리고 한국에 살고 있는 스웨덴 사람들 사이에서 두 나라의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행복은 자기희생도, 고통으로 빚어내는 찰나의 영광도 아니라고 도희 씨는 생각한다. 21세기를 사는 한국의 젊은이는 행복은 누리기 위해 고단한 삶을 감수하는 게 아니라, 즐겁게 살면서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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