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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칼'을 잡는 손은 5년마다 바뀐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7.11.20 05:30 수정 2017.11.20 10:31

<칼럼>"그때 뭐했나"로 목소리 높이는 비서실장

제동이 안걸리는 적폐청산 강박증 '칼자루의 교훈'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등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임종석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등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전대협 의장으로서 임수경 전 의원을 북한에 파견한 학생 운동권의 ‘무서운 아이’로 기억된다.

“몰래 평양축전에 참가했던 한 여대생은 북한 당국의 엄호 하에 기어이 판문점을 통해 귀국하겠노라고 기세등등하다. 전대협은 ‘판문점 돌파 결사대’까지 조직해 그 학생을 환영하겠다고 기를 쓰고 있다. 하필이면 물난리까지 겸쳐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이때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임수경양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신부 한 사람을 북한에 파견하겠다고 한다.”

‘주관적 正義가 면죄부일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몸담고 있던 일간지에 썼던 89년 7월 27일자 사설 앞부분이다.

그때의 ‘임군’이 이젠 권력실세

“林秀卿양과 文奎鉉신부가 그예 고집을 꺾지 않고 板門店 군사 분계선을 걸어 넘어 귀환했다. 사실 넘어오면 그만인 것이 판문점의 분계선이다. 철조망이 쳐져있는 것도 아니고 그 판에 누가 총을 들이대며 위협할 곳도 아니다. (중략) 정부당국도 이 기회에 책임을 통감해야 할 줄 안다. 확실한 대안도 마련하지 않고서 통일에 대한 기대만 잔뜩 부풀렸던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는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터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7․7선언 정신에서 후퇴, 북한에 대해 상호주의를 제시하는 것도 바람직스런 자세는 아니다. (후략)”

이건 ‘林양 文신부의 板門店 귀환’ 제하 8월 16일자 사설의 일부다.

“우리는 林秀敬 양과 그녀를 평양으로 보낸 전대협의 행동을 ‘순수한 통일에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끝까지 믿고 싶다. 文奎鉉 신부의 입북 또한 오직 ‘어린羊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한’ 사제로서의 ‘신앙적 양심’의 발로였음이 입증되길 기대한다. 우리의 젊은 학생들이나 성직자들이 비록 일부일지라도 순수를 가장한 혁명을 기도한다고 의심하는 것은 고통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정부 측에도 문제는 없지 않다. 몇몇 사람의 행동에 대해 필요이상의 피해.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반사적 대응자세를 보이는 것은 정부다운 모습이 못된다. 민족통일에 앞장서겠다면서 형식주의에 치우쳐 스스로 명분과 논리의 그물망에 갇히는 愚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후략)”

8월 18일에는 ‘林양.文신부 처리 法에 맡기라’는 제목으로 위의 사설을 썼다.

그새 28년여가 흘렀다. 만 나이로는 40이 채 안 되었던 필자가 지금은 우리 나이로 70을 한 달 열흘쯤 앞두게 되었을 만큼의 세월이었다. 돌아보면 그 때는 좌파학생운동을 나름대로는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지금의 인식이라면 전대협에 대해 훨씬 비판적인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 사설들이 주는 더 큰 느낌은 “아, 그 때는 정말 만만한 게 정부였구나”하는 놀라움이다. 이른바 ‘물태우’시절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때까지 논설위원실에서 근무했다. 그 후에도 지금까지 매체를 바꿔가며 주로 정치칼럼을 써왔으니 일곱 명의 대통령과 그 시대의 정치에 대해 논평을 해 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기억 속에 가장 부담감 없이 비판을 했던 때가 바로 ‘물태우’ 재임기였다.

자유한국당의 전희경 의원이 임 실장을 상대로 청와대 참모들의 이념적 성향을 따졌다(6일 국회운영위의 청와대 국정감사).

“청와대가 전반적으로 한 축으로 기울어져 있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말끝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을 운운하는 게 얼마나 이율배반적이냐. 지금 청와대 전대협 인사들이 이 사고(주사파)에서 벗어났다는 증거도 없는데 과연 트럼프 방한에 맞춰 반미 운동하는 분들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

임 실장은 대단히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이 말을 받았다.

우리가 싸울 때 당신은 뭘 했나

“5공, 6공 때 정치군인이 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의원님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른다. 지금 언급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는데 의원님께서 그렇게 말할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현 정권의 실세라더니 과연 표현이나 언사나 여느 정부 관계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거야 나쁘다할 게 없다. 그렇지만 반박의 방식이 엉뚱했다.

“그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남에게 이런 식으로 따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위키백과에서 확인한 대로라면 전 의원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던 1980년엔 대여섯 살에 불과했다. 5공화국이 끝난 88년 2월에는 열두세 살쯤 됐다. 그 때 어떻게 살았어야 했을까? 전 의원에게가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따져서는 곤란하다. 다들 삶의 현장에서 열심히들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 의원에 의해 임 실장과 함께 거명된 운동권 출신 비서관·행정관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는 일일이 파악해 보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민주화투쟁의 일환이라 여겨 친북적 이념투쟁을 벌이지 않았을까 막연히 추측해 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 이유나 방식은 당시의 실정법에 위반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임 실장과 그 동료들은 이른바 ‘전향’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여전히 전대협 시절의 이념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 때의 ‘임 군’과 ‘임 양’은 일정기간 복역을 하긴 했으나, 끈질기게 이념투쟁을 벌인 끝에 국회의원을 지냈고, ‘임 군’의 경우는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됐다.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증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이게 잘못 알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정권 담당자들은 답해 주시라.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를 존중함은 물론 그걸 수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다짐할 수 있는가. 북한의 세습 왕조와 이들 집단의 주민에 대한 폭정에 결연히 반대하는가. 북한 체제가, 우리와 직접 무력대치하고 있는 주적임을 인정하는가. 북한의 동포들이, 우리가 김정은 체제의 학정으로부터 구해내야 할 겨레붙이들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들은 김정은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대다수 북한 동포들이라는 데 동의하는가.

전직 국정원장이 셋이나 구속돼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사람의 경우 구속은 면했으나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검찰은 영장 재청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활동비를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상납했다는 게 이들의 직접적인 혐의사항이라고 한다. 특활비는 용처를 밝히지 않는 돈이라고 하는데 사후에 어디 썼느냐, 잘못 썼으니 감옥에 가라고 하는 게 온당한지는 전문가가 아니니 알 수가 없다.

적폐청산 강박증은 위험하다

어쨌거나 이 정도가 되면 국정원은 해체과정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런 상태로 계속 그 역할과 기능을 계속하라는 것은 결국 정권의 입맛을 맞추는 기관이 되라는 것이나 진배 없다. 아무려면 ‘적폐청산’ 정부가 그런 의도를 가지기야 했겠는가만….

일본 동북부의 지진해일 광경을 온 세계가 충격과 공포 속에서 지켜 본 바 있다. 그 기세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스스로의 힘이 진하고서야 끝났다. 청산 작업의 동력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언젠가는 동력이 떨어진다. 반비례로 국민들의 피로감은 고조된다. 정부는 여론의 악화라는 (뻔히 보이는) 복병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일선 지검장들이 문무일 검찰총장 면전에서 국정원 사건 등 최근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는 조선일보 18일자 기사를 읽다가, 연상되는 기억들을 옮겨 두자 해서 시작한 글이다. 총장과 지검장, 지청장들 간 일련의 간담회에서, 지금의 분위기로는 아슬아슬한 쓴소리, 볼멘소리가 나왔던 듯하다. 이를테면 이런 말들이다.

“정치적 수사를 계속하니 하명 수사로 비치는 것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이 정치적 사건에 앞장서니 욕을 먹는 것 아니냐.” “(변창훈 검사 자살과 관련) 이른 아침 자녀들 앞에서 변 검사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문제다.” “4년 전 국정원 댓글 수사를 하다가 불이익을 당한 검사들이 이 수사를 하는 게 맞느냐. 사건 재배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다.”

YS정권 때 특히 두드러졌지만 역대 정권마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따랐다. 물론 ‘구악척결’의 대의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측이 검찰이라는 검(劍)을 앞세워 정권의 국정 장악력 견인력을 강화하고, 정적들을 겁주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갈수록 후자에 무게가 실린 것도 사실이다. 칼자루는 자신들이 쥐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믿었을 법하다.

새 정부 들어 검찰에 불려가고 투옥되고 하는 사람들도 한 때는 정권의 담당자이거나 그 핵심 실세들이었다. 지금은 자신의 손에 있는 칼자루가 임기 후엔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 간다. 거듭거듭 목격하고 경험했던 일이다.

‘불의를 징치하는 정의의 칼’은 그 주인에게 특히 위험하다. 언젠가 상대방도 자신을 악으로 규정해서 징벌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정의감에는 좀처럼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조사를 할수록 단죄해야 할 대상은 급격하게 늘어난다. 그걸 다 다스리지 않고 일부만을 처벌한다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개혁의 후퇴가 된다. 그러니까 일단 정의의 칼을 빼들게 되면 개혁 강박증에 사로잡혀 제동력을 상실하기 쉽다. 역대 정부의 산 교훈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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