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워홀의 지옥? 스웨덴 워홀, 어디까지 가봤니?”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7.11.20 07:09 수정 2017.12.21 17:24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11> 스웨덴 워홀러 이수경 씨

‘일상’을 버리고 ‘도전’을 선택하니 후회는 없더라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 이하 워홀)는 해외에서 여행이나 어학연수 등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제도다. 만 18세에서 30세까지만 신청할 수 있다. 2016년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한국과 워홀 협정을 맺은 나라는 20개국. 아시아에서 일본 대만 홍콩 이스라엘 4개국, 유럽에서 스웨덴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덴마크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포르투갈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등 12개국, 오세아니아에서 호주와 뉴질랜드 2개국, 그리고 캐나다와 칠레. 영국과는 청년교류제도(YMS) 협정을 맺고 있다. 지난 해 약 4만 명의 우리 청년들이 워홀을 경험했다.

스웨덴은 2011년 36명으로 시작했다. 2012년 44명, 2013년 42명, 2014년 46명, 그리고 2015년 47명으로 거의 비슷한 숫자가 이어지다가 지난 해 거의 2배 증가한 99명이 워홀로 스웨덴 사회를 경험했다. 2017년 공식 집계는 아직 없지만 신규 승인과 비자 만료 전 인원을 합친 대략의 숫자가 130명 수준이다. 같은 해 워홀을 시작한 같은 북유럽의 덴마크의 숫자가 줄고 있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스웨덴의 상당히 많은 워홀러(워킹 홀리데이 중인 사람을 뜻하는 말)들 사이에서 ‘스웨덴 워홀러의 대모’로 불리는 이수경(32) 씨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게 워홀의 길에 들어섰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이수경 씨는 ‘요즘 보기 드물게’ 단 한 번의 휴학도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원 도중 2010년 4월 느닷없이 호주 워홀 길에 올랐다.

호주 워홀을 다녀온 후 대학원을 마치고 남들 부러워 할,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공기관에 취업했다. 그런데 몸이 상하기 시작했다. 힘겨운 직장 생활이었다. 날이 갈수록 견디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다.

“스웨덴 워홀은 일종의 도망이었죠. 잦은 야근과 밤샘은 고질적 수면 장애를 불러왔고, 그 탓에 체중이 비정상적으로 불었어요. 남들 부러워할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몸이 망가지니 전혀 행복하지 않았죠. 이렇게 버티면서 살다가는 번 돈 병원비로만 쓰다 늙겠다 싶더라고요. 그때 호주 워홀을 떠올렸고, ‘한 번 더’라는 생각이 들면서 두 번째 워홀을 결심하게 됐죠.”

그런데 왜 하필 스웨덴이었을까? 그녀는 당시 워홀 유경험자들에게서 가장 ‘악명’ 높은 곳을 골랐다. 도대체 복지 천국 스웨덴이 어때서 거의 모든 워홀러들이 ‘워홀의 지옥’이라고 했을까? 그녀는 궁금했다. 그리고 만 30세 직전 스웨덴 이민청에 워홀을 신청했다. 어쩌면 도피일 수도 있는 그녀의 두 번째 워홀이 시작된 것이다. 남들은 사회 진출 직전에 경험을 쌓기 위해 하는 일, 그녀는 다니던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호주 워홀 당시 오페어를 했던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사진 = 이수경 제공) 호주 워홀 당시 오페어를 했던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사진 = 이수경 제공)

스웨덴에 들어오자마자 이수경 씨는 스웨덴 남부 스코네주에 속한 대학 도시 룬드(Lund)에서 오페어(Au-pair) 일을 시작했다. 워홀러가 스웨덴에서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데 좋은 출발이었다. 오페어란 현지 가정에서 같이 살면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일을 의미한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를 현지에서 직접적으로 배우는, 유럽에서는 흔한 직종으로 베이비시터나 가사 도우미와는 다르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했고, 또 호주 워홀 때도 해본 일이어요. 주로 하는 일은 아이들 등교 준비와 등하교 동행, 하교 후 돌보미 등이고, 약간의 가사 일도 돕죠. 한 주 최대 25시간의 일을 하면서 숙식을 제공받고, 언어공부 시간을 보장받아요.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름 유익해요. 특히 자유 시간이 많은 편이고, 자연스러운 생활 속 스웨덴어 접촉이 많아 언어 공부를 하기에는 아주 좋았어요.”

스웨덴에서 오페어를 고용하는 가정은 대부분 부유하다. 스웨덴은 아이들 보육을 무료 또는 최소 비용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굳이 오페어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 이수경 씨가 오페어로 일한 가정도 그렇다. 이수경 씨 입장에서는 살아보기 힘든 부유한 집에서 숙식 제공을 받으며 지낸다는 것과 그 나라 문화를 깊게 체험하고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한국에서 그녀가 다니던 직장을 감안한다면 수입이나 일의 내용에 있어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대학원까지 나와서, 결혼해 애를 낳아야 할 나이에 남의 나라 애나 보고 있냐?’는 비아냥거림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수경 씨는 한국에서 좋은 직장을 다닐 때보다 더 마음이 편했다. 일에 종속돼 일을 하는 이유조차 잊어버리고, 그 일에 매몰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마음만을 편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건강까지도 좋게 해줬기 때문이다.

스웨덴 룬드 바로 앞집에서 오페어를 하던 프랑스 친구. 오페어는 원래 프랑스 젊은이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진 = 이수경 제공) 스웨덴 룬드 바로 앞집에서 오페어를 하던 프랑스 친구. 오페어는 원래 프랑스 젊은이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사진 = 이수경 제공)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 워홀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오기 전 ‘워홀의 지옥’이라고 일컫던 것이 괜한 엄살만은 아니었다. 다른 스웨덴 워홀러들의 대부분은 제대로 일을 얻지 못해 힘겨워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든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렵죠. 그런데 스웨덴은 정말 어려워요. 한국인 워홀 케이스도 적은데다, 구인구직 시스템이 굉장히 폐쇄적이라 지인 소개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중요한 정보들은 대부분 스웨덴어로 쓰여 있죠. 그래서 스웨덴어를 해야 제대로 살 수 있어요. 영어가 통용된다고 해서 일상에서도 영어로 하지는 않기 때문에 애당초 외국인 대상이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의 구인 공고는 스웨덴어로 올리는 거죠.”

하지만 이수경 씨는 세상 어느 워홀이든 이 정도 힘겨운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스웨덴보다 더 어려운 곳이 한국이라고. 그녀가 아는 한국으로 워홀 간 외국 친구들은 아예 일할 생각을 안한단다. 아니 못하는 것이다. 일자리 정보도 부족하고, 한국어를 하지 못하면, 아니 한국어를 하더라도 일자리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한국 어디서도 아직까지 외국 워홀러가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못들어봤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그녀는 스웨덴 워홀을 계획하고 있는 후배들에게서 어이없는 얘기도 듣는다. 멋진 스웨덴 이성 친구를 기대하거나 백야, 오로라 그리고 뛰어난 스웨덴 제품들을 기대하며 스웨덴 워홀을 오겠다는 것이다. 그런 친구들에게 이수경 씨는 “어디서나 모델들이 걸어 다니는 것도, 언제나 멋진 백야와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것도, 멋진 스웨덴 제품이 널려있는 것도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면서 언어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최소한의 언어 능력이 필요해요. 비자 신청하는 것부터 현지에 와서 행정을 처리하는 것, 일을 찾고 일하는 것에 스웨덴어나 영어가 필요하죠. 그리고 스웨덴 입국 전에 최소한 자기 소개, 물건을 사고 길을 물어볼 수 있을 정도는 익히고 오는 것을 권해요.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익히고 쓰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일종의 예의라 할까요.”

스웨덴 오페어 가정과 함께간 지난 겨울 오스트리아 스키 휴가. 오페어의 부수적인 장점이기도 하다. (사진 = 이수경 제공) 스웨덴 오페어 가정과 함께간 지난 겨울 오스트리아 스키 휴가. 오페어의 부수적인 장점이기도 하다. (사진 = 이수경 제공)

이수경 씨는 호주 워홀도 그랬지만, 스웨덴 워홀에 대해서도 만족하고 있다. 만족한다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목표했던 일 대부분을 성취했다고 평가한다. 스웨덴 워홀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정했던 목표가 있다. 첫째 살 빼서 건강해지기, 둘째 스웨덴에서 지낼 만큼 돈 벌기, 셋째 스웨덴 구석구석 여행 다니기, 넷째 서바이벌 이 가능하게 스웨덴어 배우기,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친구 만들기. 그녀는 이 모든 목표를 이뤘단다.

그러면서 ‘워홀에 실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마디 한다.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너무 포괄적이었던 것은 아닌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표를 세운 게 아닌지, 한꺼번에 무리한 계획을 세웠던 건 아닌지 다시 돌아봤으면 하는 것이다. 결국 워홀의 성패는 본인이 만든 기준으로 답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수경 씨는 얼마 전 워홀이 끝났다. 그러나 아직 스웨덴을 못 떠나고 있다. 한국에는 가족들과 친구들도 있고 살 집도 있다. 말도 편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치열한 사회로 돌아가려니 과거의 기억에 겁이 난다. 스웨덴의 여유로운 생활 속도가 자신에게 잘 맞는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그래서 그녀는 쉬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녀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려고 한다. 새로운 취업에 도전하면서 책을 쓰고 있다. 스웨덴 워홀을 와 있거나 계획하는 이들에게 알음알음 ‘스웨덴 워홀의 교과서’로 통하는 그녀의 블로그 ‘언제나 feel free’를 통해 꾸준히 적어온 기록들을 책으로 엮으려고 한다. 앞으로 스웨덴 워홀에 도전할 친구들을 위해 언니, 누나의 마음으로. 헤매는 시간을 줄여 조금이라도 스웨덴 워홀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이석원 기자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