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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인이라 행복하고, 한국인이라 자랑스럽다”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7.11.04 05:04 수정 2017.11.09 17:37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9> 스웨덴 IT 컨설팅 전문가 허훈

자신의 선택으로 완벽한 한국인 가정을 만들어낸 이민 2세

외교부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3174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스웨덴에서 태어나고 자란 허훈 씨는 스웨덴 이민 2세다. 그는 대학에서 로봇 공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IT컨설팅 전문가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 허훈 제공) 스웨덴에서 태어나고 자란 허훈 씨는 스웨덴 이민 2세다. 그는 대학에서 로봇 공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IT컨설팅 전문가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 허훈 제공)
자신의 선택 사항이 아니었던 것들 스웨덴에서 태어난 것, 모국어인 스웨덴어, 스웨덴의 초중고등학교, 아주 많은 스웨덴 친구들......그리고 한국인 부모님.

스웨덴의 IT 컨설팅 전문가인 허훈(37. 스웨덴 이름 욘 후니 허(John Hooni Huh)) 씨는 명백한 스웨덴 사람이다. 스웨덴에서 태어났고, 스웨덴에서 자랐으며, 지금도 스웨덴에 살고 있는 분명한 스웨덴 시민이다. 그는 지난 2014년 스웨덴 총선거에는 투표했지만, 2017년 5월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는 투표하지 않았다. 스웨덴의 참정권은 있지만 한국의 참정권은 없는 스웨덴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들 보다 분명하고 명확하며 정확한 한국어, 한국에서의 유학과 직장 생활, 완벽한 한국인 부인, 한국인 아들, 한국인의 정서......그리고 완벽한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가족.

그는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가족을 만들었다. 그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그 보다 더 이전의 그의 가족과 같은 모습이다. 한국인인 부인과 함께 만들어낸 완벽한 한국인 가족. 그도, 그의 부인도, 또 그의 아들도 한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에게는 뜨거운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 완성된 가정인 것이다.

허훈 씨는 1980년 4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멜라렌 호수가 멋지게 펼쳐진 나카(Nacka)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스웨덴으로 이민 오고 3년 여 만의 일이다. 스웨덴이 속지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그는 스웨덴에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스웨덴 사람이 됐다.

외국인이 거의 살지 않았던 나카의 학교에서 그는 눈에 띄는 존재였다. 거의 모든 친구들은 순백색의 피부와 눈부신 금발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짙은 검은 머리카락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어린 시절,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일은 없었다.

“그냥 평범했어요. 가끔 어떤 친구들이 ‘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볼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분명하게 ‘스웨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죠. 나는 당시 스웨덴 이외의 나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어요. 9살 이전까지는 스웨덴 밖을 나가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9살 때 처음 비행기를 탔는데, 그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였어요.”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로봇 공학을 공부할 때 그는 유명한 과학자이자 의사인 빈센트 헨츠(사진 가운데)를 도와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로봇 공학을 공부할 때 그는 유명한 과학자이자 의사인 빈센트 헨츠(사진 가운데)를 도와

그에게 처음 만난 한국은 재밌는 나라였다. 놀이공원도 많고, 장난감 가게며, 놀이터도 많았다. 길에는 달콤한 사탕과 맛있는 과자를 파는 가게들이 널려 있었고, 자신이 나고 자랐던 스웨덴 스톡홀름에 비해 한국의 서울은 ‘완전’ 재밌는 세상이었다. 게다가 스톡홀름의 한글학교에서나 봤던 글자가 아무데서나 보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머리카락,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생전 처음 오는 나라인데 너무 익숙했다. 그에게 첫 외국은 한국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 그의 마음 어디에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 집에서 부모님이 한국말을 사용한 탓에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말을 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대학을 휴학하고 한국으로 간다.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이었다.

“집에서 사용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한국어였어요. 같이 한국어학당을 다니던 다른 외국 친구들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한국어가 늘었죠. 그렇게 익숙해지고 능숙해진 한국어는 단지 언어로써만이 아니라 정서와 의식으로써 나에게 보다 구체적인 한국이 된 것이죠.”

만약 그가 한국어학당을 다니지 않았다면? 가정의 역사는 가장 어리석은 역사의 관점이라지만, 그래도 가끔 그는 그런 생각을 한다. ‘스웨덴 사람’ 욘(John)이 ‘한국 사람’ 훈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허훈 씨는 대단한 스펙의 소유자다. ‘스펙 천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도 흔치 않을 그런 스펙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 최고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KTH(Kungliga Tekniska Högskolan 왕립 공과 대학) 출신일 뿐만 아니라, 그는 한국의 카이스트(KAIST)에서도 공부했다. 2003년과 2004년 그는 카이스트에서 한국 로봇 과학의 상징이었던 휴보(Hubo)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 스탠포드에서도 공부했다. 거기서는 외과 수술에 의한 인체 복원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과학자이자 의사인 빈센트 헨츠 교수의 연구를 돕기도 했다.

허훈 씨는 아들 윤이(사진 가운데)의 돌잔치를 스톡홀름의 한 한식당에서 치렀다. (사진 = 허훈 제공) 허훈 씨는 아들 윤이(사진 가운데)의 돌잔치를 스톡홀름의 한 한식당에서 치렀다. (사진 = 허훈 제공)

스웨덴 사람으로는 특히 탁월한 스펙을 쌓은 그는 ‘순간의 선택’으로 또 다른 ‘일생’을 결정한다. 한국 직장 생활이 그것이다. 비록 그 기간은 1년 남짓이었지만,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한 방’이 이때 터진다. 부인 김원진(스웨덴 이름 Wonjin Jennie Huh) 씨와 결혼한 것이다. 부인과 처음 만난 것은 KTH 시절이었다. 김원진 씨가 KTH에 교환 학생으로 오면서 두 사람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허훈 씨가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살아가기로 약속한다.

김원진 씨와의 결혼, 그리고 아들 허윤(2. 스웨덴 이름 John Leon Yoon Huh)의 태어남. 이것으로 허훈 씨의 ‘완벽한 한국인 가정’이 완성됐다. 그리고 그것으로 분명한 스웨덴 사람이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그의 정체성이 완성된 것이다.

그는 지난 해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로 회사를 차렸다. 인테그라투스(Integratus)라는 IT 컨설팅 회사다. 아직까지 직원은 허훈 씨 혼자다. 이제까지는 혼자서도 충분했다. 그런데 점점 일이 많아진다. 그래서 이제는 직원을 뽑아야만 한다. 그는 가능하면 한국의 젊은이를 뽑고 싶다. 한국은 어쨌든 분명한 IT 강국이고, 한국의 젊은이들은 IT에 익숙하다.

“어쩔 수 없이 영어는 할 줄 알아야겠지만, 굳이 스웨덴어를 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문제에 접근하고 이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 창의적이고, 적극적이며, 규격화 되지 않은 마인드가 중요해요. 그런 사고를 가진 한국의 젊은이라면 함께 일을 하고 싶어요.”

내년 2월 9일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때 만약 한국과 스웨덴이 아이스하키 대결을 한다면 어느 팀을 응원하겠냐고 물었다. 사실 아주 짓궂고 유치한 질문이다. 그런데 허훈 씨는 짓궂은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당연히 한국을 응원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유가 지혜롭다.

허훈 씨는 스웨덴 9학년(한국의 중학교 3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교 진학 멘토 자원봉사 활동도 한다. (사진 = 허훈 제공) 허훈 씨는 스웨덴 9학년(한국의 중학교 3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교 진학 멘토 자원봉사 활동도 한다. (사진 = 허훈 제공)

“스웨덴은 어차피 한국보다 아이스하키를 잘 한다. 어지간해서 스웨덴이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국을 응원하는 것은 더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경기를 하지 않나? 그러니 한국을 응원하는 것이 맞다.”

허훈 씨의 한국에서의 법적 신분은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약칭 재외동포법)’에 따르면 ‘외국 국적 동포’이고, 흔히 부르는 재외동포다. 이 법 제2조 2항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대한민국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는 이런 복잡한 것은 잘 모른다. 그냥 그는 자신을 스웨덴 사람이자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사람이기 때문에 행복해요. 그러나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자랑스럽죠. 이건 이중적인 것도 아니고, 복잡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나와 내 아내와 내 아들 윤이가 태어나면서, 자라고 살면서, 그리고 그냥 우리 가족의 정당한 정체성이죠.”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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