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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혁 “‘저녁이 있는 삶’은 회사의 요구이자 철학”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7.09.16 05:00 수정 2017.11.09 17:39

<한국인, 스웨덴에 살다 2> 스카니아 한국인 IT 담당자

'개인 존중'의 기업 문화는 '가족' 중심 삶 지향해줘

외교부의 2015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스웨덴 거주 재외 국민은 2789명. EU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웨덴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에 대해서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국가의 모든 것이 가장 투명한 나라로 통하는 스웨덴 속의 한국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스웨덴 속 한국인은, 스웨덴 시민권자를 비롯해, 현지 취업인, 자영업자, 주재원, 파견 공무원, 유학생,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까지 망라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스웨덴 사회는 한국과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점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스카니아 본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상혁 씨 (사진 이석원) 스카니아 본사에 근무하고 있는 이상혁 씨 (사진 이석원)
“저녁이 있는 삶. 한 동안 한국 사회에서 꽤나 관심사가 됐던 말이죠.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얘기지만 정치적인 입장과는 상관없이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심중을 잘 후벼 판 멋진 말이었죠. 하지만 ‘과연 실현될까?’하는 의구심을 떼어 버릴 수 없는, 이상적이지만 현실감이 결여된 그런 말이기도 했죠. 그런데 적어도 스웨덴에서는 그 ‘저녁이 있는 삶’은 철저한 현실이고, 자연스러운 생활이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더군요.”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덤프 트럭 메이커 ‘스카니아(Scania)’. 스웨덴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프리미엄 트럭/버스 제조사인 스카니아 본사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이상혁 씨는 스웨덴에 와서 가장 달라진 것이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 진출해 있는 스카니아 IT 아시아 본부(Scania IT Asia region)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한국인. 하지만 한국에서의 회사 생활은 보통의 회사원들과 다르지 않았다. 야근과 출장, 그리고 회식 등으로 대부분의 저녁은 업무 또는 업무의 연장선에 있었다. 능력을 인정받는 만큼 가족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한국의 직장생활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는 지난 2015년 8월 1일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스카니아 본사로 3년의 파견 근무를 왔다. 그는 스웨덴의 본사와 아시아의 지사들이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게 하는 일을 한다. 즉 워킹프로세스와 문화적 차이, 본사와의 거리, 시간차 등등 본사의 표준 시스템들을 아시아로 도입할 때 어려움이 많은데, 본사 직원들에게는 아시아를 이해시키고 아시아 직원들에게는 본사의 프로세스나 일하는 방법 등을 이해시키도록 코디네이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스웨덴 직장 생활 만 2년을 넘기고 3년 째 접어든 이상혁 씨는 스웨덴의 직장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우선 같은 회사라도 스웨덴에서 근무하는 것과 한국에서 근무하는 것에는 제법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초과근무가 거의 없죠. 개인의 삶도 일만큼, 또는 일보다 더 중요하기에 철저하게 개인의 삶이 존중되는 분위기죠. 또 수평적 조직관계입니다. 매니저라고 해서 함부로 일을 시키는 일은 있을 수가 없죠. 어제의 매니저가 미래의 부하직원이 될 수도 있는 조직이고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자기의 직급이나 직무는 회사에서의 역할일 뿐 사람의 레벨을 재는 척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자기 동료에 대한 존중 또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다고 봅니다.”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쇠데르탤리에에 위치한 스카니아 본사 (사진 이상혁 제공)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쇠데르탤리에에 위치한 스카니아 본사 (사진 이상혁 제공)

또 사내 복지, 직원에 대한 배려, 직원들의 자기 권리에 대한 부분에서도 한국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가족까지 이용이 가능한 직원 체육관, 자체 병원, 개인 연차와 연결되지 않는 병가를 비롯해 직원 본인 뿐 아니라 가족까지 복지는 만족스러운 수준이죠. 또 스카니아의 설립 철학 중 하나인 ‘개인 존중’으로 인해 개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부러운 수준입니다. 특별히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한 해고당하지 않고, 어떤 직무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맞는 자리를 찾아 그 사람을 계속 개발할 수 있게 돕는 등, 한국과는 전혀 다르죠.”

무엇보다도 이상혁 씨가 달라진 부분은 바로 가족과의 관계다.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업무의 강도와 양이 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개인’보다 ‘조직’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만큼 업무 외 인간관계에 대한 의무감은 회사를 위해 가정을 등지는 필연적 결과를 도출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스웨덴에서 그는 달랐다.

이상혁 씨에게는 아내와 14살짜리 아들이 있다. 한국에서 이상혁 씨는 아내에게나 아들에게 오랜 시간 얼굴을 보여줄 수도 없고, 함께 무엇인가를 즐길만한 시간도 절대 부족했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그는 보통 오후 5시면 퇴근해 이미 집에 도착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모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됐다. 집에서 멀지 않은 스포츠 센터에서 중학생 아들과 배트민턴이나 스쿼시를 치기도 하고, 인근 골프 클럽에 나가 골프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사진 왼쪽부터 마틴(Martin), 안데시(Anders), 페터(Petter), 티나(Tina), 이상혁, 빌리(Billy), 카린(Karin), 그리고 이상혁 씨의 매니저인 카타리나(Katarina). (사진 이상혁 제공) 사진 왼쪽부터 마틴(Martin), 안데시(Anders), 페터(Petter), 티나(Tina), 이상혁, 빌리(Billy), 카린(Karin), 그리고 이상혁 씨의 매니저인 카타리나(Katarina). (사진 이상혁 제공)

아내와는 늘 함께 시장을 본다. 집에서 아내 대신 음식을 만드는 일도 잦다. 원래도 음식 만드는 취미가 있는 이상혁 씨는 스웨덴에 와서는 거의 이탈리안 셰프 수준의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나 고기 요리를 한다. 그것은 ‘너의 시간을 회사보다 가족을 위해 더 사용해라’는 회사의 주문에 대한 행동인 셈이다.

“스웨덴에 와서 가장 달라진 점은 집에 일찍 간다는 점입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철저히 가족 중심이기 때문에 결혼을 한 경우 일과 후 술자리를 갖는다든가 동료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보내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경우에도 갈 곳이 없어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처음 몇 달 간은 가족들이 좋아하더니 나중엔 늦게 오라고 짜증을 부리기도 하더군요.(웃음)”

그러나 이상혁 씨는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은 천국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한 것들을 누리기 위해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특히 스웨덴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이기에 더 하다고 한다.

“스웨덴에 살면서 한국과 비교하면 행복해 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또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싸고 빠른 서비스와 시설은 그 어느 것도 스웨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본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해결되는 게 한 가지도 없는 나라입니다. 이런 것들을 정신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상당히 힘들어집니다.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면 한국을 잊어야 하지 않을까요?”

스웨덴의 기업 문화는 한 마디로 '개인 존중'이다. 그러나 직원들간의 화합은 자연스러움 속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상혁 씨가 동료들과 '피카'를 하고 있다. (사진 이상혁 제공) 스웨덴의 기업 문화는 한 마디로 '개인 존중'이다. 그러나 직원들간의 화합은 자연스러움 속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상혁 씨가 동료들과 '피카'를 하고 있다. (사진 이상혁 제공)

스웨덴은 공정한 사회다. 비리에 대해 병적인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그것은 다시 말해 스웨덴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강요되는 정서다. 그것은 익숙해지면 합리적인 일이지만, 체화되지 못한다면 이 사회와 자신이 괴리되는 것을 깨닫게 되는 무서운 일인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이상혁 씨는 2018년 7월 말 계약된 본사 파견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것은 3년 동안 몸에 익은 사회에서 다시 다른 사회로의 전환을 뜻한다. 3년의 시간이 40년도 넘는 삶을 지배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장 최근의 삶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저녁이 있는 삶’을 슬슬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금 한국을 그리워한다.

“스웨덴은 좋은 사회죠. 합리적이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하지만 우리가 40년도 넘게 내 피부 바로 아래 따뜻하게 보듬어놨던 ‘정’이 잊혀질 정도는 아녜요. 그걸 그리워하는 거죠. 그리고 스웨덴에 있으면서 요즘 급격히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도 실감해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이곳에 사는 동안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필자 이석원]

25년 간 한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등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그 전까지 데일리안 스팟뉴스 팀장으로 일하며 ‘이석원의 유럽에 미치다’라는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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