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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나라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7.05.15 05:27 수정 2017.10.16 09:57

<칼럼>문 대통령, 선 강조하면 남을 악으로 몰 수 밖에

국민 편가르는 리더십은 위험천만 선악의 잣대를 버려야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헌화, 분향했다. 문 대통령이 참배를 마친 후 방명록에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이라고 적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헌화, 분향했다. 문 대통령이 참배를 마친 후 방명록에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이라고 적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오전 중앙선관위로부터 당선증을 교부받은 후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현충원 방문록에 남긴 글은 “나라다운 나라, 든든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이어 정오엔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약식 취임식을 가졌다. 이날 취임사에서 그는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새로 시작하겠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라다운 나라’는 방명록에 처음 쓴 것도, 취임사에서 처음 강조한 것도 아니다. 그는 이전에도 자주 이 말을 되뇌었다. 아주 마음에 드는 표현이었던 모양이다.

“이게 나라냐 ㅅㅂ”은 ‘민중가요’ 작곡‧작사가 윤민석이 작년 11월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한 노랫말 제목이다. 그는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해서 악보와 함께 페이스북에 올렸다.

국민 모욕주기 언사는 피해야

“요 근래 벌어지고 있는 사상초유의 참담한 시국에 정말 많은 분들이 (심지어 어마무시하게 유명한 분들까지) 글과 노래, 영상물, 시국선언 등으로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굳이 나 같은 사람까지 나서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라고 글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30년이나 이 짓을 해 온 버릇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결국 또 이렇게 꼬물꼬물 노래를 만들었다”고 작사‧작곡의 변을 썼다.

문 대통령의 ‘나라다운 나라’ 슬로건을 이해하려면 윤 씨의 노랫말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http://www.tisdory.com/2562)

<1절>
이게 나라냐 이게 나라냐 근혜 순실 명박 도둑 간신의 소굴 범죄자 천국 서민은 지옥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 (후렴) 하야 하야 하야 하야 하여라 박근혜는 당장 하야 하여라 하옥 하옥 하옥 하옥시켜라 박근혜를 하옥시켜라
<2절>
2014년 4월 16일 일곱 시간 동안 너는 무얼했더냐 무참히 죽어간 우리 아이들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3절>
새누리당아 조선일보야 너희도 추악한 공범이 아니더냐 쇼하지 마라 속지 않는다 너희들도 해체해주마
<4절>
우주의 기운 무당의 주술 다까끼 마사오까지 불러내어도 이젠 끝났다 돌이킬 수 없다 좋은 말할 때 물러나거라

섬뜩하기까지 한 저주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에 ‘무당의 주술’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말이지만 이야말로 ‘조롱 증오 저주의 주문(呪文)’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일방적인 단정이고 단죄일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이 또한 예술행위이기 때문에 진실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이른바 진보 혹은 민중 예술인들은 저항의 명분으로 집요하게 보수정권, 보수정당, 보수이념을 말과 글, 특히 그림으로 공격해왔다. 이들은 비틀기, 비아냥거리기, 이죽거리기, 모욕주기, 협박하기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융단폭격을 퍼붓듯 했다. 촛불집회 시기 이들의 예술행위가 어떤 형태로 표출되었는지는 많은 국민이 목격했다. 으스스한 기분으로!

문 대통령이 하필이면 ‘이게 나라냐 ㅅㅂ’를(을) 자신의 정치적 모토, 진보정권의 현실인식 바탕으로 삼았다는 데서 ‘문재인식 세상 보기’의 단면을 읽게 된다. “이게 나라냐 ㅅㅂ”이라는 불만은 끼리끼리의 대화에서 홧김에 토로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정부의 현실인식, 정책수립의 이념적 기저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국민 편 가르는 리더십은 위험

언필칭 ‘반만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한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민족사상의 황금기를 이뤄왔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성취의 역사 가운데서도 빛나는 한 시기에 있다. 그런데 ‘이게 나라냐’며 기존의 가치관 질서체계 경제‧산업구조 등 우리 사회의 모든 이념적 물질적 얼개를 일시에 무너뜨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그게 진보정치라는 것인가? 문 대통령은 이들의 이념적 리더인가?

세계 200개도 훨씬 넘는 나라들 가운데 우리만큼의 경제력, 문명화와 인권의 수준을 누리는 곳이 몇이나 되는지를 일단 밝혀준 다음에 우리를 비난하는 게 순서다. 그들이 보기에 나라도 아닌 이 나라, 이른바 ‘헬 조선’에는 진보적 이념을 가진 사람들만 아니라 보수적 이념이나 탈 이념적 성향을 가진 사람도 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의적 판단으로 우리 모두의 나라에 모욕을 안기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러나저러나 국민의 상대적 다수가 선택한데 따라 이제 그들의 세상이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방의 역사’라고 자조적 사관을 드러내더니 그 상속정부는 ‘나라도 아닌 나라’라고 조국에 모멸을 안기고 있다. 만약 우리가 나라 같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면 대통령 임기 5년 동안에는 신의 힘으로도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가 없다.

콘스탄틴 V. 게오르규는 자신의 소설 ‘25시’를 “메시아의 강림으로도 구원할 수 없는, 최종적 시간에서 한 시간 더 나아간 시간”이라고 말했다. ‘헬 조선’이 가리키는 시간도 다를 바 없다. 문 대통이 설령 메시아로 강림했다고 해도 ‘헬 조선’은 구원받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어떻게 대통령에까지 오른 정치 지도자가, 국민 전체를 이처럼 처절한 자기모멸 속으로 몰아넣는 인식에 동조할 수 있다는 것일까.

의구심을 갖게 되는 부분은 그 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취임사를 통해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유권자들로서는 사면이라도 받은 기분이 들 것 같다. 승자의 관용, 대통령으로서의 국민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어쩐지 뭔가 찜찜한 느낌을 털어 버리기 어렵다.

‘저의 국민’이라는 표현이 많이 거북스럽다. 물론 자신이 섬길 대상으로서의 ‘국민’을 지칭한 만큼 풀어쓰기로 한다면 ‘제가 섬길 한 분 한 분의 국민’이 될 것이다. 그렇게 이해한다 하더라도 취임사의 표현으로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선심을 쓴다는 뉘앙스가 묻어나는 것 같아서다.

정치는 선악 대결과정 아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들께서도 저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당연히 성심을 다해 주인인 국민 한 분 한 분을 섬기겠습니다.”

민주적 정치리더의 화법이라면 주어와 목적어가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이라는 표현 자체가 거리감을 두게 한다. 이미 국민을 이쪽저쪽으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란 편을 갈라 싸우자고 만든 제도가 아니다. 대표를 결정하는 방식이고 절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결과이지 누가 누구를 찍었는가 하는 게 아니다. 개표가 끝나면 그것은 ‘국민 전체의 뜻’이 된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이라는 인식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격렬한 경쟁 끝에 1340여만 명의 지지를 받아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이 되었으니 조금은 오만해질 만도 하다. 그래서 ‘나의 백성, 나의 국민’에 대한 거룩한 책임감으로 전율하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겸손’으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을 이렇게 신칙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점령자가 아니다. 다만 국민의 명령으로 섬김의 책무를 진 국민의 하인일 뿐이다.”

정치를 선악의 대결 과정으로 보던 종전의 정치인식도 바꿔야 한다. 정치는 국가와 국민 전체의 발전 및 행복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영역이다. 선악의 대결은 신화시대의 서사시일 뿐, 현실정치의 표현일 수는 없다.

괜한 걱정을 하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20일, 안희정 충남지사의 발언에 대해 “분노가 빠져 있다”고 비판했었다. 안 지사는 그 전날 부산대에서 열린 ‘즉문즉답’ 행사에 참석 “그 분들(이명박 박근혜)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을 위해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고 말했었다.

다음날 이와 관련,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문 대통령은 “안 지사의 말에 분노가 빠져 있다.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분노는 각자의 감정 작용이다. 정의는 개인적 가치관의 표현이다. 문 대통령은 그것을 일반화할 수 있을 것처럼 여긴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문 대통령의 집권기간이 좌우, 진보보수의 화해와 상생이 아닌 대립과 상쟁으로 채워 질까봐 걱정스럽다. 자신의 선을 고집하면 남을 악으로 몰지 않을 수 없다. 거듭 말하거니와 정치는 선악의 대결과정이 아니다. 보다 나은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선의의 경쟁이 곧 정치다. 대통령이 신의 영역에 앉아 인간의 행위를 선악의 잣대로 재단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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