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경암동 철길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응답하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7.03.05 08:45 수정 2017.03.05 08:48

<어느 퇴직부부의 신나는 전국여행-스물두번째>

무주 나제통문~머루와인 동굴~적상산 안국사~경암 철길마을~군산항 뜬다리~은파유원지

【7.28(화), 스물두 번째 날】

평온한 '나제통문' 모습. 삼국시대 당시 보이는 쪽은 백제이고, 터널 지나서는 신라 땅이다.ⓒ조남대 평온한 '나제통문' 모습. 삼국시대 당시 보이는 쪽은 백제이고, 터널 지나서는 신라 땅이다.ⓒ조남대
무주리조트에서 바라본 안개가 자욱한 덕유산 모습.ⓒ조남대 무주리조트에서 바라본 안개가 자욱한 덕유산 모습.ⓒ조남대

아침을 컵라면과 요플레로 해결하고 10시쯤 펜션을 나와 어제 저녁에 간단히 본 나제통문으로 다시 가서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다. 나제통문이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와의 국경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통문에서 경비병이 지켜 서서 출입자를 검열하던 곳이란다. 지금의 휴전선인 DMZ를 생각하면 참 운치와 여유 있는 모습이 상상 된다. 아마 지금 유럽의 국경선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통문을 사이에 두고 삼국시대에서부터 고려로 통일될 때까지 풍속과 문물이 판이한 지역이었던 만큼 지금도 언어와 풍습 등 특색이 있어 설천면 장날에 가보면 사투리만으로 두 지역의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다음은 곤돌라를 타고 덕유산에 올라 전망을 보기 위해 무주리조트에 10시쯤 도착했으나 안개가 껴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도 아무것도 볼 수 없단다. 곤돌라 타고 올라가는 이유가 전망을 보기 위한 것인데 안개 때문에 안 보인다면 무슨 소용이랴. 안개가 산 중턱에 걸려 있다. 그래서 돌아 나와 머루와인 동굴로 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관광객들이 많이 와 있다. 7월 말 휴가철이지만 그동안 관광지에 사람이 거의 없어 좀 심심했었다. 여행하다 보면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밌는데 지금까지 여행은 거의 우리 둘이 다니는 것처럼 한산하다. 바다도 아직 해수욕하는 사람 구경을 못 했고, 관광지도 너무 한산해 다니기는 편하지만 좀 심심하였다. 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 오니 관광객이 많아서 반갑다.

와인터널은 무주양수발전소 건설(1988년 4월∼1995년 5월, 7년 간)을 위하여 작업용 터널로 사용하던 곳으로 무주군 특산물인 머루 재배 농가의 수익증대를 위하여 무주군에서 임대하여 운영하는 시설로 길이가 579m, 폭은 4.5m, 높이는 4.7m로서 연중 온도는 12도 정도란다. 시음을 하고 2병을 산 다음 입구로 나와 선물용으로 3병을 더 구입했다.

불교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안국사 경내에 있는 ‘성보박물관’.ⓒ조남대 불교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안국사 경내에 있는 ‘성보박물관’.ⓒ조남대
안국사 주변에 있는 적상산성. 축성방식으로 볼 때 백제시대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조남대 안국사 주변에 있는 적상산성. 축성방식으로 볼 때 백제시대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조남대

와인동굴을 나와 적상산 정상에 있는 안국사로 올라갔다.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 월인 대화상이 창건하였는데, 조선 광해군 6년(1614년)에 조선왕조실록 봉안을 위해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려고 이 절을 지었고, 1910년 적상산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호국도량의 역할을 하다 1989년 양수발전소 위쪽 댐 건설로 절이 수몰지역에 포함되자 원행스님이 호국 사지였던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단다.

특히 천불전은 ‘선원록’을 봉안했던 적상산 사고 건축물로 현존하는 유일한 사고란다. 또한 내부에 있는 성보박물관에는 세계 각국의 불상과 탱화, 불교 유물과 도자기 등 500여 점 이상이 전시되고 있다.

적상산 사고와 각종 왜란 등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적상 산성이 안국사 주변에 아직도 있다. 적상산성 축성 시기는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로 알려져 있으나 축성방식 등을 볼 때 삼국시대 백제가 축성했다고 여겨지며, 거란과 왜구 또는 임진왜란 때는 인근의 여러 고을 백성이 이곳에 의지하는 등 중요성이 인정되었단다.

또한 조선 인조 12년(1634년)에는 묘향산에 보관 중이던 조선왕조실록이 이안되었고, 인조 19년에는 선원각을 설립하여 선원록을 봉안함으로써 명실 공히 사고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사고가 폐지되었지만 현재 적상 산성 안에는 안국사가 이건되어 있고 적상산 사고지가 복원되었으며, 양수발전소 상부댐이 있다.

한편 안국사를 둘러보는데 산타페를 탄 스님이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경희와 나를 부르더니 얇은 시집 한 권과 자신이 그린 부적 하나를 주면서 차비나 하게 시주하란다. 성당에 다닌다며 거절하려다 오죽하면 그러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경희가 1만 원 주니 고맙다고 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지나가는 사람 중에 살 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계속 팔고 있더니 적상산 전망대까지 옮겨와 판매활동을 한다.

적상산 정상에 가니 전망대가 있다. 이곳은 전망대임과 동시에 무주 양수발전소의 중요한 발전설비인 조압수도란다. 조압수도는 상부저수지(적상호)와 하부저수지(무주호)의 지하발전소를 연결하는 수로 상단에 있으며, 발전기 급정지 시 수로 내부의 압력이 급상승하는 것을 완화하는 안정장치다. 계단을 통해 전망대에 올라가니 덕유산 주변 높은 봉우리가 모두 보이는데 제일 높은 봉우리인 향적봉(1,614m)은 구름이 둘러싸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에 적상산 사고지 유구를 둘러봤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면적은 6,083㎥이다. 우리나라의 사고는 여말선초에 이르기까지 역대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선원전과 실록전을 두었다. 세종 21년인 1439년에 경상도 성주와 전라도 전주에 사고를 신설하여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내사고인 춘추관과 외사고인 충주, 성주, 전주사고의 4곳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모두 불타 벼렸다. 이때 전주사고의 실록은 1593년(선조 26년) 내장산, 해주 등을 거쳐 평안도로 옮겨 난을 피함으로써 멸실되지 않은 유일한 사고로 남게 되었다.

그 후 선조 때(선조 36~39년) 실록을 다시 인쇄하여 전주사고를 정본으로 정본 3부와 초본 1부 등 모두 5부를 만들어 전화를 피할 수 있도록 깊은 산중이나 섬 지방에 사고를 설치하였다. 원본인 전주사고는 강화 마니산에 두었다가 정족산사고로 옮겨졌으며, 정본은 춘추관과 태백산, 묘향산 사고에 보관하였으며, 초본은 오대산 사고에 보관하였다.

그 후 북방의 후금 세력이 확장되자 이에 대비하여 1614년(광해군 6년)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적상산에 실록전을 창건하고 1618년(광해군 10년) 선조실록을 봉안한 후 1634년(인조 12년)에는 묘향산에 보관하던 실록을 적상산 사고로 이안하고 1641년(인조 19년)에는 왕실의 족보인 ‘선원계보기략’을 봉안함으로써 적상산 사고는 완전한 사고가 되었단다.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조남대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조남대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에 있는 옛 모습의 구멍가게.ⓒ조남대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에 있는 옛 모습의 구멍가게.ⓒ조남대

다음 행선지는 군산이다. 무주에서 군산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다. 170㎞로 2시간 반이나 걸린다. 진안, 전주, 익산 등을 거쳐 군산이다.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에 도착했다. 큰 도로 바로 뒤에 일제 강점기 때인 1944년 4월 4일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페이퍼코리아(주)가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었단다. 열차는 하루 2번 마을을 지나갔으며, 건널목이 11개나 되었고, 사람 사는 동네 가운데를 지나야 해서 속도가 10㎞ 정도로 느렸단다. 철길과 동네 집 사이의 간격이 1m도 안 될 정도로 가깝다. 기차가 들어서면 집과 기차와의 사이가 거의 없을 정도인 것 같다.

얼마 전 TV프로에서 태국인가 인도에서 경암동 철길마을과 비슷한 마을 풍경을 본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철길에서 장사하다 기차가 지나갈 때는 소리를 지르면 철길의 물건을 치우는 형편이다.

경암동 철길마을도 기차가 지날 때는 역무원 세 명이 기차 앞에 타서 호루라기를 불며 고함을 쳐 사람의 통행을 막았고, 주민들도 집 밖에 널어놓았던 고추 등 세간을 들여놓고 강아지도 집으로 불러들였단다. 그러나 2008년 7월 1일 통행을 완전히 멈췄다. 비록 기차는 사라졌지만 소유의 경계가 없는 문과 벽, 빨랫줄, 텃밭 등 고즈넉한 마을 일상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어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등 촬영지와 사진 애호가들의 출사지로 사랑을 받고 있단다. 평일인데도 젊은 연인 등 관광객들이 많다. 완전히 관광자원이 된 것 같다. 주변에는 60년대의 복고풍 가게와 그 당시 판매되던 뽀빠이나 라면땅, 뽑기 등의 상품도 보여 옛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경희도 뽀빠이 한 봉지를 샀다.

또 얼마 멀지 않는 거리에 있는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방문했다. 과거 일제시대와 60년대 모습을 전시해 놓았다. 전시물은 여느 박물관과 거의 비슷하나 일제 강점기 일본의 약탈 행태를 부각하는 내용이 많은 편이다. 군산지방은 일제 때 곡창지역인 호남지방의 쌀 등 곡물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착취가 심했으며, 이와 관련한 각종 악폐가 자행되었단다. 당시 조선은행,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군산세관 등으로 사용되던 일본식 건물을 활용하여 박물관 등으로 꾸며 관광객을 유치하는 한편 관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옛 시절을 회상하게 한다든지 애국심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군산 해양테마공원에 있는 탱크 등 군사장비.ⓒ조남대 군산 해양테마공원에 있는 탱크 등 군사장비.ⓒ조남대
수위에 따라 높이가 자동 조절되는 접안시설인 ‘뜬다리’.ⓒ조남대 수위에 따라 높이가 자동 조절되는 접안시설인 ‘뜬다리’.ⓒ조남대

인근에 해양박물관도 있다. 여기에는 각종 비행기류, 탱크, 군함 등이 전시되어 있다. 각 군에서 퇴역한 장비들이다. 전쟁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교육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옆 해안가에는 밀물 때 다리가 수면에 떠오르고 썰물 땐 내려가는 등 수위에 따라 다리의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선박의 접안시설인 뜬다리(부잔교)가 있다. 이 뜬다리는 1899년 군산항 개항 시 3천 톤급 배 4척을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4기의 다리로써 하루 150량 화차를 이용하여 호남평야 쌀들을 이 다리를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였단다.

경희가 군산이 고향인 회사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서 알아낸,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중국집 ‘빈해원’을 4시 반에 찾아갔더니만 저녁은 5시부터 식사 판매를 시작한다면서 조금 있다 오란다. 30분의 시간이 남아 과거 일제 때 군산 한국은행 등 건물을 건축박물관 등으로 꾸며놓은 곳을 방문했다. 군산의 역사를 잘 정리해서 전시해 놓았다. 일제 강점기 건물을 잘 보존하여 ‘근대화 거리’ 라 명명하여 관광자원화 해 놓아 지금 외지에서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다.

5시가 되어 ‘빈해원’으로 다시 갔다. 식당이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중앙에 홀이 있고 사방에 룸이 있는 등 규모가 상당히 큰 식당으로 중국풍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많은 사람이 와서 식사하고 있다. 5시부터 손님을 받는다고 해 놓고 벌써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어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잘나가는 집이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우리는 삼선짬뽕을 시켰다. 조금 있으니 짬뽕이 나와 먹어보니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조금 난다. 대체로 맛있으나 다른 곳에 비해 특별히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루 한 끼 식사 원칙 때문에 오늘 처음 식사를 한 관계로 맛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잘 되는 식당이 대체적으로 불친절한 것처럼 종업원들이 무감각하다.

산에서 유명한 ‘중동호떡’ 내부. 번호표를 뽑는 기계가 보인다.ⓒ조남대 산에서 유명한 ‘중동호떡’ 내부. 번호표를 뽑는 기계가 보인다.ⓒ조남대
군산 은파유원지 호수 주변 야경.ⓒ조남대 군산 은파유원지 호수 주변 야경.ⓒ조남대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경희가 군산에 오면 ‘중동호떡’은 꼭 먹어야 한다며 가보잔다. 조그만 호떡집인데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고 번호표 뽑는 기계까지 있다. 오늘은 평일이고 저녁 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금방 저녁을 먹었는데도 6개를 시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딱 해치웠다. 그리고는 내일 아침 대신 먹는다며 4개를 더 샀다. 종업원 6명이 작업대에 쭉 둘러서서 반죽하여 속 넣고 기름 없이 달구어진 판에 그냥 굽는다. 1개에 900원인데 맛은 있다. 그러나 특별히 맛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입소문 때문인가. 1박2일에도 나온 모양이다.

군대 시절 추억이 있는 월명공원에 갔다. 옛 기억이 조금 난다. 정상에 있는 수시탑과 조각공원을 방문했다.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가 편안하다. 1977년에 군산에서 군대생활 할 때 와보고 처음 와 본다. 거의 40년 만이다. ‘그동안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강산이 4번이나 바뀐 꼴이다. ‘수시탑’은 군산시를 지켜주는 탑이라 하여 이렇게 명명되었단다. 수시탑 야경이 멋있다는데 아직 6시가 조금 지난 시점이라 불을 밝힐 때가 안 되어 야경을 보지 못해 좀 아쉬웠다. 이곳도 사람들이 거의 없다.

경희가 인터넷을 찾아 물색한 홍인장모텔에 도착해 짐을 대강 내려놓고 은파유원지로 향했다. 군산에서 군대 생활하던 시절에 한번 와 봤을 때는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도심지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야간 조명이 멋있다. 은파호수 주변에 데크를 깔아놓아 걷기 좋도록 만들었다. 8시가 넘은 야간인데 걷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 식당과 주점, 커피숍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불야성을 이룬 듯했다. 많은 예산을 투자한 것 같은데 시민들의 활용도는 그 이상인 것 같다. 대구에 있는 수성못도 이렇게 꾸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1시간 정도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무주에서 진안, 전주, 익산을 거쳐 220㎞를 달려왔다. 컵라면 사면서 경희가 준비한 군산 특주 막걸리를 한잔 했더니만 무척 취한다. 하루 일정을 다 정리하지 못했는데 너무 졸려 안 되겠다. 내일 아침 좀 일찍 일어나 정리하기로 하고 잔다. 숙소가 가격(3만 5000원)에 비해 아주 양호하다. 기분 좋다.

글/조남대 전쟁과 평화연구소 연구위원

----------------------------------------------------------

이 글을 쓴 조남대 씨는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현재 경기대 정치외교학 박사과정중에 있으며 정년퇴직한 부인과 함께 일상에서 탈출, 55일간의 전국여행을 끝마치고 '부부가 함께 떠나는 전국 자동차여행'(북랩출판사 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서 독자들로 부터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 여정의 하루 하루를 데일리안에 재편집해 연재를 시작하는데 내용안에 부부애가 듬뿍 담겨있어 평소에 '닭살' 돋는 것을 못참는 독자는 조심하시길...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