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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가로수의 향연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7.02.19 09:26 수정 2017.02.19 09:28

<어느 퇴직부부의 신나는 전국여행-스무번째>

운림산방~팽목항~5·18 기념공원~담양 메타세쿼이아길~관방제림

【7.26(일), 스무 번째 날】

소치 헌련선생이 창작활동을 하던 명승 제80호인 ‘운림산방’.ⓒ조남대 소치 헌련선생이 창작활동을 하던 명승 제80호인 ‘운림산방’.ⓒ조남대

오늘도 아침을 컵라면으로 해결하고 진도 팽목항을 향하여 8시 50분에 해남 남도모텔을 출발하였다. 팽목항은 특별히 볼 것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침몰로 사회적으로 1여 년간 크게 이슈화되면서 팽목항이 그 주 무대였기 때문이다. 운전하며 가다가 경희가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성당에 가야 한다고 하여 진도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기로 하고 시간을 계산해 보니 운림산방을 먼저 구경하고 미사를 드린 다음 팽목항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운림산방에 도착하니 9시 반쯤 되었는데도 벌써 관람객이 많다. 오랜만에 관광지에 관람객이 많은 것을 보니 반갑다. 여름 휴가철인데도 그동안 사람들이 없이 한가하여 국민경제에 어려움이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이다.

운림산방은 명승 제80호로 소치 허련(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면서 창작과 저술활동을 하던 곳이다. 소치 선생은 20대에 해남 대둔사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나이 42세 때 현종대왕을 알현하고 왕 앞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등 남종화의 대가가 되었으며, 조선 말기에 남종 화풍을 토착화시켰던 분이란다.

운림산방을 소개하는 그림을 보았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그림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그림이야 카메라의 눈으로만 볼 수 있지만 직접 보면 주변까지 볼 수 있으니 더 멋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병풍처럼 둘러싼 산 밑에 화실과 그 앞에 연못, 연못 가운데 붉게 핀 백일홍 그리고 화실 뒤에 초가로 된 살림집 등이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관광버스로 사진동호회에서 단체로 출사를 나왔는지 많은 사람이 줌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촬영하느라 바쁘다. 운림산방 옆에는 기념관이 있는데 소치의 작품과 4대에 걸쳐 내려오고 있는 소치 후손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10시 반 미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중요한 것만 보고 진도성당으로 달렸다.

천주교 진도성당.ⓒ조남대 천주교 진도성당.ⓒ조남대
진도 팽목항의 모습.ⓒ조남대 진도 팽목항의 모습.ⓒ조남대

진도성당은 조그마한 시골 성당이지만 교중미사인데도 자리가 많이 빈다. 휴가철이라서 그런가. 신부님께서 미사 중에 타 본당에서 온 사람 손 들어보라 하시고는 박수로 환영해 주신다. 여행 중에 미사를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하느님께 우리 여행에 함께해 주시고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아들과 딸에게 손자를 점지해 달라고 기도했다.

미사를 마치고 진도항(팽목항)으로 향했다. 휴가철인데도 도로가 한적하다. 항구에 도착하니 뉴스로만 보던 노란 리본이 아직도 펄럭인다.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있다.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도 보인다. 방문한 사람들은 별 이야기 없이 둘러보기만 한다. 팽목항에서 사고가 난 곳까지는 30㎞ 정도 떨어진 맹골도 부근이란다. 그런데도 팽목항이 제일 가깝다는 이유로 대책본부가 차려지고 보도진이 몰려와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반면 전국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이 있다. 이제는 가끔 관광객만 들릴 뿐 조용하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자 선장과 선원들은 탑승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뒤 자신들만 탈출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구조를 기다리던 304명은 모두 바닷속에 잠겼다. 배 안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학생 250명도 있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세월호 기억의 벽을 만드는 어린이문학인들’ 주관으로 전국 26개 지역의 어린이와 어른들이 타일 4,656장에 쓰고 그려 이곳 팽목항에 ‘세월호 기억의 벽’을 세웠다.

광주 ‘다비정’의 보리굴비정식 식단 .ⓒ조남대 광주 ‘다비정’의 보리굴비정식 식단 .ⓒ조남대

팽목항을 뒤로하고 광주로 향했다. 5·18 관련 공원과 묘지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점심시간이 되어 경희가 전에 가보았던 보리굴비 정식을 먹기 위해 ‘다미정’을 찾아갔다. 1인당 15,000원 하는데 녹차 얼음물로 밥을 말아서 보리굴비와 함께 먹는 맛이 다른 음식점에서 먹어본 맛하고는 많은 차이가 날 정도로 맛있다. 굴비 맛이 쫄깃쫄깃하고 밥도 꼬들꼬들한 것이 너무 맛있다. 종업원이 밥을 더 시키지도 않았는데 3그릇이나 준다. 먹다 보니 밥이 좀 부족해서 나머지 1그릇을 둘이서 나누어 먹으니 적당하다. 다른 손님들도 보니 2인당 1그릇씩 더 준다. 밥이 다른 음식보다 많이 당기게 되는 모양이다.

식사하고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5·18 기념공원을 갔다. 한낮이라 날씨가 너무 덥다. 얼굴을 가리고 우산을 쓰고서도 등허리에 땀이 줄줄 흐른다. 기념 조형물만 보고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경희는 너무 힘들어 돌아다니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차를 타면 에어컨이 나오니까 괜찮다.

5·18 민주묘지로 향했다. 아직도 날이 무척 덥다. 분향소에 도착하여 묵념과 기도를 했다. 영령들이 평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묘지는 잘 조성되어 관리되고 있는 느낌이다. 영상관에 들어가니 5·18의 발단과 전개과정 등에 관해 설명되어 있다. 대부분이 피해자들의 피해사항 등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왜 피해를 봤는지, 그 당시 광주시민들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어떻게 저항했는지 등 주로 피해자들이 행동한 사항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착잡하다. 대강 보고 나왔다.

‘국립 5·18 민주 묘지’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과 당시 다쳤거나 구금되어 옥고를 치른 후 사망하신 분들이 안장된 곳으로, 1994년부터 1997년 사이 묘지성역화사업을 거처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 2002년 7월 27일에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국가에서 관장하게 되었다.

담양 메타세퀘이아 가로수길.ⓒ조남대 담양 메타세퀘이아 가로수길.ⓒ조남대
천연기념물 366호인 담양 ‘관방제림’ 을 걷고 있는 작가 부부.ⓒ조남대 천연기념물 366호인 담양 ‘관방제림’ 을 걷고 있는 작가 부부.ⓒ조남대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갔다. 광주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있다. 멋있다. 그림과 사진으로만 봐 왔지만 실제로 보니 너무 아름답고 운치 있다.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평화롭다. 아이스커피를 한 잔씩 사서 마시면서 거리를 걸었다. 젊은이들처럼 여러 자세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1972년 정부의 가로수시범사업의 일환으로 담양을 연결하는 국도변에 총 4,700여 본이 식재 되었으며, 2000년 이후 담양-순창 간 4차선 도로확장 공사로 벌목위기에 있었으나 시민들의 보존운동을 거치면서 유명해져, 2002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과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국민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길이란다.

바로 인근에 있는 관방제림으로 가 보았다. 관방제는 담양천변의 제방으로 조선 인조 때 담양천의 홍수를 방지하기 위해 당시 부사를 지낸 성이성이 제방을 쌓은 뒤 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고, 그 이후 부임하는 부사들이 꾸준히 관리하여 현재 느티나무, 벚나무, 뽕나무, 푸조나무 등 15종의 낙엽활엽수 32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단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2㎞ 구간 안에는 200년 이상 된 나무들이 신묘한 기운을 뿜으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2㎞ 이상 제방길을 1시간 정도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걸어가니 기분이 너무 좋다. 이번 여행 중에 제일 잘 선택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방제림은 메타세쿼이아길 시작점에 연이어 있을 뿐 아니라 1㎞ 정도 걸어가면 죽녹원과 또 만난다. 죽녹원 부근에는 저녁 8시가 넘었는데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담양은 메타세쿼이아길, 관방제림, 죽녹원 등 자연환경 덕으로 먹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잘 가꾸어 지금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뿌듯한 마음을 갖고 담양 읍내로 들어와 숙소를 찾아보았다. 원래 시골은 군청이나 읍사무소 주변이 제일 번화가다. 오래된 지역이라 낡은 숙박시설이 모여 있다. 교외는 새로 숙박시설을 짓기 때문에 시설은 좋지만 비싸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건물이 좀 오래된 것 같은 중앙장모텔을 발견하고 들어가 보니 내부는 꽤 괜찮은데 3만 원이란다. 두말하지 않고 들어갔다.

오늘은 해남에서 진도를 거쳐 서해안고속도와 함평-광주간 고속도로를 지나 광주를 거쳐 담양까지 왔으니까 270㎞를 달렸다. 아주 많이 달려왔으나 달리다 관광하는 것을 반복해서 그런지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다. 샤워하고 낮에 땀을 많이 흘린 탓에 목이 출출하던 차에 경희가 센스 있게 준비한 담양의 특산물인 막걸리 ‘죽향’을 한잔하니 잠이 절로 온다. 푹 잤다.

글/조남대 전쟁과 평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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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조남대 씨는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현재 경기대 정치외교학 박사과정중에 있으며 정년퇴직한 부인과 함께 일상에서 탈출, 55일간의 전국여행을 끝마치고 '부부가 함께 떠나는 전국 자동차여행'(북랩출판사 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내서 독자들로 부터 아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 여정의 하루 하루를 데일리안에 재편집해 연재를 시작하는데 내용안에 부부애가 듬뿍 담겨있어 평소에 '닭살' 돋는 것을 못참는 독자는 조심하시길...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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