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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화속 흙수저 의사는 가능한가

김헌식 문화평론가
입력 2016.12.18 05:19 수정 2016.12.18 12:11

흙수저 의사가 불가능한 현실을 그려야

-흙수저 의사가 불가능한 현실을 그려야

불패의 흥행 코드라고 불리는 메디컬 소재가 나란히 연말에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와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가 이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트렌드 때문인지 흙수저 코드가 이런 드라마와 영화에 흐르고 있다. 대중적인 정서를 생각해서인지 흙수저 코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흙수저 코드가 정말 현실에 주의환기 혹은 나아가서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까. 아니면 그냥 판타지에 불과하게 될까. 적어도 이들작품들에서는 현실을 성토하고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부각시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렇게 소망을 극대화하면 현실에서 정말 우리가 이뤄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에서 한수현(김윤석, 변요한)은 근래 유행하는 흙수저 의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서 폭력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어버지가 자신의 꿈을 대리 실현하기 위해 아들을 괴롭힌 위인도 아니었다. 알콜 중독은 물론 빈곤에 시달렸다. 물론 그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난과 폭력의 피해는 어머니에게도 고스란히 씌워졌다. 그에 따른 고통으로 어머니마저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에 한수현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에 말년에 병든 아버지는 레지던트로 있는 한수현의 병원에서 오히려 그를 힘들게 했을 뿐이다. 어쨌든 한수현은 그런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돈이나 성공만이 아니라 아픈 환자들을 끝내 챙기는 훌륭한 인성의 의사가 되었다. 그 덕분에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선행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좋은 결말을 최선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소망사항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사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꿈꿀 만도 하다. 그러한 불우한 환경이라면 잘못된 방향으로 엇나가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매우 중요해진다. 좀 더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도 흙수저 의사는 등장한다. 바로 강동주(유연석)이다. 강동주는 응급실에서 아버지를 읽는다. 마침 고위층 수술 때문에 수술이 늦어져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아버지가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흔히 그렇듯이 강동주는 병원에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저항을 하기에 이른다. 이때 강동주를 제압하며, 충고 아닌 충고를 하는 이가 바로 김사부(한석규)다. 그는 강동주에게 저들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흙수저 금수저 차별하지 말고 의료행위에 평등하게 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다. 그런 동기부여 탓인지 강동주는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인턴이 된다. 금수저에게 밀리는 흙수저 집안의 강동주는 결국 의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는 의대 수석 출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노력파 열혈 의사 윤서정(서현진)의 경우에도 금수저들의 패악에 대해서 당차게 지적하고 저항도 한다.

물론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와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의 시대적 배경은 다르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배경은 주로 1985년이고,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는 2016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30년의 시간차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에서 김사부 역의 한석규가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의 한수현 역을 맡은 김윤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는 그렇게 불우한 환경 속에서 의사가 되는 일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6년에는 좀 다른 환경적 조건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많은 통계와 연구결과를 살핀다면,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흙수저가 금수저되는 계층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불우한 환경 출신의 의사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정말 그런 일이 빈번하다면 애써 이런 문화콘텐츠에 등장할 이유가 없다. 현실에 없고 결핍되었기 때문에 그랬으면 좋겠다는 이상적인 바람이 작용했기 때문에 등장하는 것이겠다. 그런데 설령 개천에서 용이 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정상적인 예컨대 자애로운 의사가 될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지난 시기의 트라우마가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동주나 김사부에게서 그러한 기미가 보이듯이 독불장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성공 스토리는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신화가 될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의사가 되고자 하는 동기는 주로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가족의 죽음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하얀 거탑’의 장준혁(김명민)처럼 대놓고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의사도 있었다. 악역의 의사이다. 하지만 그러한 결과로 그는 일찍 임종을 맞아야 했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에서 한수현이 그래도 더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세속적인 욕망덩어리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선행 때문에 어쨌든 가능했던 일이었다. 선행하는 바람직한 의사가 더 행복하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소망은 현실이 그 반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말 상처투성이 흙수저 가정의 아이들이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정책이나 제도는 갖춰져 있는가 문제 않을 수 없다. 이미 집안 환경이나 토대가 대학 진학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천재성이나 노력만 강조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으니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는 흙수저 출신의 불가능한 현실을 그릴 필요도 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얼마나 환자의 권리를 배제하고 있고 그것이 심화되고 있는 지 말이다.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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