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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천 “몸 낮춰 ‘향기 나는’ 정치인 되겠다”

고수정 기자
입력 2016.05.06 10:13 수정 2016.05.06 10:14

<20대 국회를 주목하라-당선자 릴레이 인터뷰>

이정현·김부겸과 지역통합포럼 구성 논의할 것”

20대 총선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안일한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은 준엄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라는 새로운 정치 지형을 조성했으며, 집권여당은 원내 1당을 야당에 넘겨줬다. 영호남에서 여야의 독점 체제도 무너졌다. ‘쇄신’과 ‘협치’가 정국 화두로 떠오르며 20대 국회 당선인 개개인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에 ‘데일리안’은 대안 정치인으로서 기대를 받거나, 두각을 나타내는 여야 당선인 7인을 만나봤다. < 편집자 주 >

정운천(전북 전주을) 새누리당 당선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정운천(전북 전주을) 새누리당 당선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이따 나하고 무조건 셀카(셀프카메라) 찍어야 해” 전북 전주을 새누리당 정운천(62) 당선인이 자신의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리며 기자에게 셀카를 함께 찍길 권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만나는 이들과 함께 촬영 한 뒤 집에서 휴대 전화 사진첩을 열어 몇 번이고 되새겨본다고 했다. 셀카는 정 당선인의 ‘사람 공부’다.

그가 여권의 불모지인 전북 전주에서 32년 만에 빨간색 깃발을 꽂게 된 비법도 ‘사람 공부’에 있다고 했다. “한두 번 만나도 사람 얼굴이랑 이름이 기억나지 않더라고. 자꾸 그런 일이 생기다 보니 미안하자나? 그래서 셀카를 찍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다시 만나면 얼굴이랑 이름이 생각나니까 상대방 입장에서는 ‘아... 나를 기억해주는구나’ 생각하지. 너무 좋은 거야 소통하는 게”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정 당선인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건 6년 만이다. 19대 총선과 전북도지사 선거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짝사랑하는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전주만 바라봤다. 그의 끈질긴 구애는 20대 총선에서 전주 민심을 응답하게 했다.

만나고 싶었다. 지역주의를 극복한 아이콘으로서, 정부 요직을 경험한 초선 의원으로서 이번 총선의 의미와 20대 국회, 또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듣고 싶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3일 오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그는 지역에서 곧바로 올라왔다고 했다. 국회 일정을 마치고 다시 전주에 간다 했다. 그래서인지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은 훈장과 같아 보였다.

그는 ‘향기 나는 정치’를 꿈꾼다. ‘한철골 박비향(寒徹骨 撲鼻香·뼈를 깎는 추위를 견디고 나서야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다)’이라는 신념을 가슴 깊이 품고 그 향기를 국민에 전하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한 분 한 분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향기가 될 수 있는지를 많이 고민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모든 것을 내려놨을 때 향기가 난다. 전 그런 향기가 나는 정치를 하겠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정운천(전북 전주을) 새누리당 당선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정운천(전북 전주을) 새누리당 당선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 이번 총선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한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당선 소감을 듣고 싶다.

“32년 만에 전주에서 당선됐는데 그분들이 기존의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줬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전주 시민의 선거혁명이다. 전북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모두 낙선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운천만은 꼭 국회에 보내야 한다는 의지로 읽힌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111표차로 이기고 나니까 한 분 한 분이 정말 소중하다.”

- 선거 운동할 때 현수막에 ‘전북의 설움을 풀겠다’라고 했다. 정 당선인이 그만큼 민심을 잘 읽었다고 평가받는데, 당선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전북 민심은 지금까지 야당만 32년간 선택했는데, 그에 따른 실망감이 컸고 염증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또한 6년 간 정운천이라는 사람이 정말 현장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함께 했기 때문에 두 개의 요인이 겹쳐 선거 혁명이 일어났다고 본다. 야당이 싫은 것만으로는 안 된다. ‘정운천이 새누리당 옷은 입었지만 꼭 필요하다’는 기대를 가지고 뽑아주신 것 같다. 자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전북은 새누리당의 불모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선거 운동 과정에서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정치는 ‘말’ 아닌가. 행사장 가면 말할 기회를 안 준다. 정치 분위기가 야당에 몰려 있으니까 여당 출신 한 사람이 끼어들 구멍이 없다. 행사 기획하는 사람도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심정적으로는 저에게 발언권을 주고 싶어도 해 줄 수가 없는 거야. 몇 년 동안 맨땅에 몸을 던졌다. 그래서 저는 비록 앞에서는 공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더라도 뒷전에서 한 분 한 분 진심을 다해 만났다. 시민들이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간다고 했다. 택시 기사, 미용실·세탁소 사장, 구두닦이 사장 등 서민층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변화가 일어나는 걸 느꼈다.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드디어 변화가 있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시민들이 딱딱하게 대했지만 1~2년 지나면서 친구가 되고, 형님이 돼 있더라. 예전에는 ‘묻지 마 2번 투표’ 했는데 1번(새누리당 후보)이 직접 와서 만나고 대화하고 친해지고 하니까 분위기가 바뀌더라. 그게 선거혁명을 일으킬 수 있던 기반이었다.”

- 여러 도전 끝에 금배지를 달게 돼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가 클 것 같다. 당선인이 그리는 20대 국회는 어떤 모습인가.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굉장히 불신 받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인이 해 온 것들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 국민은 이번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서도 본 바와 같이 ‘이제 제발 내려놓으라는 명령’이었다. 기득권을 많이 내려놔야 한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 지역 장벽에 균열이 일어났는데, 다음 선거에서도 이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꼭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정치의 비정상을 정상화 시키는 것이다. 호남 정치인의 99%는 야당 소속이고, 영남의 99%는 여당 소속이다. 이런 비정상이 어디 있느냐. 민주주의는 양당 체제로 가야 꽃이 피는데 정당정치가 실종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껍데기는 민주주의이지만 속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최소 여야의 비율이 7:3으로 돼야 한다. 정치인들이 줄기차게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이를 위해 온몸을 던진 사람은 없다.

경제의 비정상도 바꾸려고 한다. 지난 30~40년간은 경부고속도로 중심으로 지역 발전이 이뤄졌다. 경부고속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은 경제가 낙후돼있다. 지금 세계 경제는 중국이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인구 15억 명이 역동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FTA를 하고 있어 중국을 향한 서진 정책을 펴야 한다. 서해안 지역 중 가장 낙후돼 있는 곳이 전북이지만 최고의 성장 동력인 새만금이 있는 만큼 새만금을 서진 정책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 글로벌 경제특구로 지정해 ‘허브’로 만들어야 한다. 100만 평짜리 공업단지 50~60개가 들어갈 수 있어 성장 동력의 중심 메카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경제의 정상화에도 포함되고 지역 균형 발전은 물론 전북의 성장 동력도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이 융성할 수 있다.”

- 정치의 정상화 일환으로 과거부터 주장해 온 ‘석패율제 도입’을 관철시킬 것인가.

“전두환 정권 이후 소선거구제로 개헌한 지 30년 가까이 됐다. 5년 단임제로 개헌했는데, 우리 정치 상황과 제도와는 맞지 않는다. 만약 큰 틀을 바꾸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석패율제(지역구 선거에서 석패한 후보에게 비례대표 의원직을 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석패율제는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제도다. 2011년 한나라당 최고위원할 때 대통령 앞에서 ‘석패율 위하여’라는 건배 제의도 했다. (웃음) 그만큼 간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영 논리가 짜여 있어서 안 되더라. 민심 현장에서 정치 혁명하라고 저를 국회로 보내줬는데 꼭 이뤄내야지.”

정운천(전북 전주을) 새누리당 당선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정운천(전북 전주을) 새누리당 당선자.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 20대 당선인 대회에서 큰 환호를 받은 것으로 볼 때 당선인에 대한 당의 기대가 큰 것 같다. 향후 당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지금 국회는 상생, 협력, 통합, 소통에 취약하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아 교집합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야 협상도 이뤄진다. 그런데 여야의 신뢰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불신 때문에 정치가 엉망이 됐다. 국민의 준엄한 명령으로 3당 체제가 된 상황에서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소통이 이뤄지려면 신뢰가 기반이 돼야 한다. 저는 6년간을 아사리 밭에서 신뢰 얻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신뢰를 가지고 신뢰를 만들어내는 데 앞장설 수 있다.

제가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내려놓는 것이다. 자리를 위해 나서거나 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자리와 관계없이 정말 ‘일꾼 정운천’이 되겠다. 정치권에는 ‘말꾼’은 많은데 ‘일꾼’은 별로 없지 않나.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일꾼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도록 노력하겠다. 다만 자리가 당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것까지 거부할 생각은 없다. 당의 일원으로서 당이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을 때 풀어나가도록 하는 것도 해야 할 도리다. 하지만 저는 국회의원 직만으로도 감사하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

- 지역주의 극복한 대표적인 인물들과 연대 생각은 없는가.

“마음과 마음이 움직여야 하니까 만나는 게 중요하다. 김부겸(대구 수성갑)·이정현(전남 순천) 당선인 등과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국민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내친김에 ‘지역 통합과’를 하나 만들자고 했다. (웃음) 그게 잘 이뤄지면 지역 통합 또는 지역 화합, 포럼이나 모임을 만들 수 있다. 동서화합 위원회 등이 가능하지 않을까? 다만 지금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라 의견을 모아야 한다.”

- 마지막으로 전주 시민과 국민에 한 말씀해 달라.

“2008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시절 겪은 광우병 파동 촛불 정국 이후 깨달은 얻음이 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차가움이 한 번 뼈 속을 사무치지 않으면, 쟁득매하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어찌 매화꽃의 코 찌르는 짙은 향기를 얻으리오’라는 뜻이다. 안동 도산서원에 가서 이 시를 받았는데 100일 만에 마음에 깨달음이 와서 화합과 소통의 전도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한 분 한 분에게 희망의 향기를 드릴 수 있느냐를 고민해왔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더 낮은 자세로 내려가면 향기가 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의 행동이 거만하면 냄새가 난다. 저는 향기가 나는 정치를 하고 싶다. 이상일지 모르지만 향기 나는 사람, 향기 나는 정치인이 되겠다. 지켜봐 달라. (웃음)”

‘향기 나는 정치인’ 정 당선인과의 인터뷰는 그의 전매특허인 ‘셀카’로 마무리됐다. ‘향기를 드립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전송된 그와의 사진은 봄을 알리는 매화처럼 국회의원으로서의 그의 향긋한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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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정 기자 (ko0726@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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