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1년, 가격규제 정책 역시나 실패했다
입력 2015.11.21 10:21
수정 2015.11.21 10:21
<칼럼>시장과 가격, 소비자에 대한 고려 없이는 백약이 무효
법 시행 이후 지난 1년의 시장의 성과를 보면 도서정가제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도서의 거래가격을 법으로 통제하자 도서의 체감가격이 높아졌고, 소비자들은 도서소비를 줄이는 반응을 보였다. 2015년 2분기 가구당 서적 구입비는 9009원으로 작년 동기와 비교해 19% 감소했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매년 6~8% 감소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 폭이 매우 크다.
도서가격의 상승에 따른 이익은 중소서점이 아닌, 대형온라인 서점에 돌아갔다. 2015년 상반기 대형온라인 서점 매출액은 2.8% 증가했고, 중소서점과 출판사들의 매출액은 감소했다. 한 온라인서점의 경우 영업이익이 500%까지 증가했다는 발표가 나오고 있다.
시장에는 새로운 형태의 가격경쟁이 등장했다. 도서가격 인하경쟁을 차단하자 출판사와 서점들이 앞 다퉈 사은품 경쟁, 신용카드 할인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영화예매권, 라면, 무릎담요, 냄비받침까지 다양한 사은품이 등장하고 있다. 사은품을 받기 위해 책을 구매한다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다.
도서정가제의 필요성을 논할 때 언급되는 출판시장의 ‘과열경쟁’은 경쟁을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데서 나온다. 그러나 경쟁은 경쟁상대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과열’이라든가, ‘과당’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다수의 생산자가 있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면 필연적으로 경쟁이 생겨나고, 이는 소비자들에게 기업이 봉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쟁’ 대신 ‘경쟁자’를 보호하는 도서정가제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방해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편 도서정가제는 중소서점을 보호한다는 공익적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지 못했듯, 경쟁력 없는 중소서점들은 도서정가제 하에서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책이 있고, 가격이 싸고, 환불이 용이하며, 쾌적한 환경을 갖춘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을 이용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서가격이 올라 도서소비를 줄이고, 대형서점들이 운영하는 중고서점이 인기를 끌면서 영세서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다.
이처럼 정부의 가격규제 정책은 도서유통시장을 위축시키고,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법으로 모든 업체의 가격을 ‘담합’시켜 과열경쟁을 막고, 대형서점, 온라인서점으로부터 영세서점을 구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정부의 자만일 뿐이다. 정부의 선한 의도대로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 까닭은 도서소비의 주체인 소비자가 받을 피해를 간과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실제 도서정가제 제정, 개정 과정을 보면 어디에도 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고려는 없다. 국회 공청회나 관련부처 협의 과정에도 소비자에게 어떤 이득이나 피해가 갈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출판계와 영세서점의 이익만 강조했다. 이런 탓에 법으로 소비자의 경제적 이득을 도서정가의 15%라고 못 박는 황당한 법이 탄생하게 됐다.
책의 가치는 소비자들이 판단하고, 이들의 구매의사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서점 간 경쟁을 통해 형성된 가격으로 도서를 구입할 수 있어야 하며, 도서가격에 근거해서 서점을 선택할 권리도 있다. 또 팔리지 않는 구간도서를 싸게 구입할 권리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는 이런 소비자의 많은 권리를 빼앗아갔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도서를 구입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분야의 문화소비를 늘렸다. TV, 유튜브, IPTV, 스마트폰 등의 영상매체들이 주변에 포진해 있는데 굳이 비싼 돈 내며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중소서점의 경쟁자는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이 아니라 스마트폰일지 모른다. 최근 문화관광부는 도서소비가 감소한다며 ‘책읽기 수업 의무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시장과 가격, 소비자에 대한 고려 없이는 백약이 무효하다.
글/곽은경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