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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평화공원에 6.25때 남침한 인민군 사단장 위패도...

하윤아 기자
입력 2015.03.30 08:52
수정 2015.04.13 15:55

<4.3을 다시 말해야하는 이유②>103기는 불량 위패 확실

희생자 재심사·불량 위패 척결 위해 4.3위 인사들 바꿔야

“역사란 편한대로 취사선택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게 아니며, 역사에 대한 인정은 진보를 향한 유일한 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삼일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향해 한 역사학자의 지적을 그대로 전했다. 이는 대한민국 현대사인 제주 4.3사건에 대한 평가에서도 역시 비껴갈 수 없는 일침이다.

정부는 지난 2003년 5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4.3위원회)의 ‘4.3진상조사보고서’를 채택하고 특별법까지 시행하면서 해당 사건이 군·경에 의한 ‘정부책임’으로 일단락시켰다. 1998년 11월 당시 ‘한라일보’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제주 4·3은 공산폭동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제주 4.3사건을 사실상 ‘공산당의 폭동’임을 분명히 했음에도 그 결론은 엇갈린 셈이다.

이에 ‘데일리안’은 여전히 ‘4.3 희생자 재심의’여부가 정리되지 않아 남로당원에게 억울한 죽임을 당한 도민이 그 가해자와 함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상황, 4.3사건의 진상규명을 이끌어 온 4.3위원회의 정치적 편향성에 ‘공정성’ 의혹을 받고 있는 비판, 제주 4.3 헌정 앨범에 북한의 혁명가요인 ‘적기가’가 버젓이 올려져있는 내용 등 아직도 진행중인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들여다봤다. < 편집자 주 >


제주4.3평화공원에 4.3희생자 각명비가 세워져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제주4.3평화공원 4.3희생자 위패 봉안실에 올려진 이원옥의 위패.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에 따르면 이원옥은 1947년 가을에 입산해 연락임무를 띠고 1948년 10월 이북으로 건너갔다가 6·25 전쟁 당시 인민군 남하 때 사단장으로 7000명을 거느리고 내려와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제주4.3평화공원에 위치한 제주4.3평화기념관 내부 전시실. 제주 인민위원회 직인.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제주4.3평화공원에 위치한 제주4.3평화기념관 내부 전시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저희 할아버님을 죽인 자의 위패가 어떻게 나란히 놓일 수 있단 말입니까.”

제67회 4.3추념일을 한 달여 앞둔 9일.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발생한 소요사태 당시 희생된 고 오훈주 씨의 손자 오균택 씨(84)의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제주4.3평화공원에 모셔진 조부의 위패가 조부를 무참히 살해한 가해자의 위패와 함께 놓여있는 모습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는 그는 통화 도중 여러 차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국가기념일로 정식 지정된 4.3추념일은 올해 역사상 두 번째로 국가 행사로 치러지게 됐다. 그러나 오 씨를 포함한 다수 유족들은 4.3추념일의 국가기념일 지정이 달갑지만은 않다.

4.3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만큼 앞으로 매년 4월 3일이 되면 약 1만4000여개의 위패가 모셔진 4.3평화공원에는 국가 주요 인사들이 참석하게 된다. 그러나 4.3사건 당시 무고하게 죽어간 희생자뿐만 아니라 이들을 처참히 살해한 가해자들까지 위패로 모셔진 상황에서 국가기념일 지정은 일부 유족들에게 그저 씁쓸함을 낳을 뿐이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족 오 씨 “나는 (4.3평화공원에) 한 번 가보고 다시는 갈 생각이 없어서 안 가고 있다”며 조부의 위패가 조부를 살해한 자들의 위패와 같은 공간에, 그것도 같은 희생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놓여있다는 점에 대해 화를 감추지 못했다.

오 씨는 “지금 고모가 살아계신데 90세가 넘었다. 고모는 할아버지가 끌려 갈 때 쫓아가서 살려달라고 매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저희 고모가 직접 옆에서 그놈들을 봤다. 같은 동네 사람 2명에 이웃마을에 사는 외사촌 형제까지 사상적으로 이념이 다르다고 죽였다”며 “할아버지를 죽인 사람들의 위패가 가나다 순(이름)으로 싹 올려져 있는데, 몰랐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견딜 수가 없다”고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이었던 아버지도 4월 28일 자택에 침입한 무장 세력에 끌려가는 모습을 기억한다고 했다. 다만 그 무장 세력들이 동네 사람이 아니어서 얼굴을 몰라 가해자가 누군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희생자와 가해자의 위패가 함께 놓인 이 같은 상황을 바로잡고자 그는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이하 정립유족회)의 공동대표를 맡았고, 현재 희생자 재심사와 불량 위패 척결을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4·3평화공원에 불량 위패 수천 기 추정…103기는 불량 확실”

정립유족회는 4.3평화공원에 놓인 불량 위패만 최대 수 천여 기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중에는 제주 4.3사건 당시 무고한 제주도민을 죽인 남로당 제주도당 핵심간부와 인민군 사단장 등 과거 행적을 뚜렷하게 밝힐 수 있는 103기의 불량 위패가 포함돼있다.

정립유족회에 따르면 남로당 제주도당 경리부장 현복유, 남로당 제주도당 선전부장 현호경,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해방군사령관 김의봉,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김완식, 북한 인민군 사단장 이원옥 등이 불량 위패 103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정립유족회가 공개한 불량 위패 103기 명단에 따르면 현복유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대학에서 수학한 뒤 광복 이후 제주도에 들어와 조천중학원장으로 사회를 가르치며 청년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48년에는 남로당 제주도당 경리부장을 맡았다.

현호경 역시 일제강점기 때 토목공사 노동자로 오사카에 넘어가 일본공산당에 입당, 광복 이후 귀향해 좌익 활동을 이어오다 남로당 제주도당 선전부장을 역임했다.

북제주군 와흘리 출신의 김의봉은 와흘리 청년회 단장으로 마을에서 신임을 쌓고 광복 이후 와흘리장과 인민위원장을 겸했다. 제주 4.3사건 당시에는 인민 유격대원들을 통솔하고 인민해방군사령관으로 각종 투쟁의 선봉에 선 것으로 정립유족회 측은 파악하고 있다.

정립유족회는 또 김완식은 제주 4.3사건 때 입산해 남로당 제주도당 인민해방군 참모장 역할을 했으며, ‘관음사 전투’를 지휘하다 산에서 자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원옥은 1947년 가을에 입산해 연락임무를 띠고 1948년 10월 이북으로 건너갔다가 6·25 전쟁 당시 인민군 남하 때 사단장으로 7000명을 거느리고 내려와 낙동강 전투에서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좌측 일변도 4·3중앙위원회와 4·3실무위원회, 불량 위패 부풀리기에 한몫

정립유족회는 이러한 인물들이 희생자로 둔갑해 4.3평화공원에 불량 위패가 놓이기까지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중앙위원회)의 입김이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8월 28일 발족한 4.3중앙위원회 위촉직 위원에는 당시 정권의 색채에 따라 좌측 인사들이 대거 임용됐다. 이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약 14년간 4.3중앙위원회 위촉직 위원은 좌측 인사들이 줄곧 장악해왔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제주 4.3사건을 ‘민주항쟁’으로 규정하고 당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수가 3만명에 달한다는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정립유족회 측은 실제 희생자가 약 1만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정립유족회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이하 실무위원회)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물들을 모두 희생자로 규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지조사와 검토가 미비한 상태에서 희생자 신고가 들어오는 대로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아울러 4.3실무위원회에서 걸러진 희생자 명단을 최종 승인하는 4.3중앙위원회도 최소한의 원칙마저 지키지 않은 채 무작정 통과시켰고, 그 과정에서 남로당 제주도당 핵심간부는 물론 당시 경찰들과 제주도민을 무참히 살해한 자들까지 희생자로 지정됐다는 설명이다.

“희생자 재심사·불량 위패 척결 위해 4.3위원회 인사들 바꿔야”

때문에 정립유족회 측은 좌편향된 4.3중앙위원회와 4.3실무위원회 인사들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희생자를 재심사하고 제주4.3평화공원에 놓인 불량 위패를 척결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여러 시민단체들도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나라사랑실천운동·대한민국정체성회북국민협의회·사단법인 건국이념보급회·자유민주수호연합 등 10여개 단체가 참여한 ‘제주4.3사건진상규명국민모임’(이하 4.3국민모임)은 세미나 등을 개최, 불량 위패 척결에 대한 당위성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2월 열린 ‘제주 4.3 불량위패 척결 긴급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한 바 있는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 서장은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남로당 핵심간부나 북한 인민군 사단장, 인민군 3대 사령관들을 희생자로 해서 위패를 봉안했으니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라며 “위원들을 교체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런 것들이 바로잡혀질 수가 없다”고 일갈했다.

김 전 서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하려고 지서를 습격하고 선거관리위원들을 죽이고 선거 사무소를 방화한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절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대통령에게 절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건국을 위해 희생한 군경이고, 선거관리위원들이고, 진압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지 인민유격대 대장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14년 6개월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위원회 위원들을 전부 교체해 희생자를 재심사하고 불량 위패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이미 나온 4.3정부보고서를 수정할 수 없다면 추가조사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동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모임 사무총장도 본보와의 통화에서 “중앙위원회나 실무위원회에 보수 인사들이 없고 100% 좌편향으로 돼 있어서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다”며 “거기에 올바른 사람들만 들어가면 불량 위패 척결을 위해 일반 시민들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정부 측에서는 불량위패 103기 중 53기에 대해 재심사를 하겠다고 확고하게 말한 바 있다”면서도 “그러나 위원회 위원들을 교체하지 안고서는 이를 바로잡을 방법이 전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사무총장은 “국가 정체성 측면에서 건국을 반대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대통령이 내려와 절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재차 “4.3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국무총리가 맡고 있으니 위원회 위원 교체를 위해 국무총리가 총대를 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오는 3일 제주에서 열리는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념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추념식이 열리는 제주 4·3 평화공원에 안치된 희생자 가운데 골수 좌익 계열 인사가 포함돼 있다는 의혹이 해결되지 않아 대통령 참석은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하윤아 기자 (yuna1112@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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