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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in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은 곧 영화다’

여행데스크
입력 2015.02.06 14:33 수정 2015.02.06 14:38

[Wanna Be There]열정의 탱고, 그리고 문명의 도시

ⓒ Get About 트래블웹진 ⓒ Get About 트래블웹진

여행은 영화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있지만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많이 경험할수록 삶을 이해하는 스펙트럼이 넓어지며,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삶에 큰 영감이나 힘을 주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여행은 나만의 영화를 연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행담을 제가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한 편의 영화로 놓고 봤을 때, 이 영화에는 로맨틱 코미디가 있고 위험천만한 스릴러도 있으며 가슴이 묵직해지는 휴먼다큐의 장르들이 저만의 방식으로 담겨있어요.

정열의 탱고, 피아졸라, 가르델, 에바페론, 축구.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단어들입니다. 이 단어들은 대중적이라기보다 마니아적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마니아라는 것은 무언가에 광적으로 열중한다는 것이고, 광적인 것에는 반드시 운명적인 요소가 필요합니다. 아르헨티나는 우리에게 낯설고 먼 나라임에 틀림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 그곳으로 떠나는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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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해볼게요. 영국 유학 시절, 친구와 한동안 느와르 영화에 심취했었는데, 그 날의 영화는 ‘희랍인 조르바(Alexis Zorbas, 1964)’였어요.

영화는 폐광마을을 배경으로 영국의 젊은 신사 버질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조르바의 도전과 여정을 담은 내용입니다. 등장인물을 살짝 소개하자면 버질은 생각이 진중하고 논리 정연한 전형적인 책벌레 타입인 반면, 조르바는 이미 인생의 풍파, 산전수전 다 겪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60대 노인이에요. 이렇게 상이한 두 사람이 영화 말미에 진정한 교감을 나누며 춤을 추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제가 마지막 장면에 감명을 받았던 것은 오직 순간에 몰입하며 춤으로 교감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진정 자유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춤을 추는 그들의 표정에서 묘한 위로를 받았고, 낯선 곳에서 완벽한 이방인이 되어 춤을 추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카잔차키스는 인간의 자유라는 묵직한 주제를 '춤'으로 풀어낸 것 같아요.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보던 잡지에서 저를 사로잡은 사진이 있었어요. 상체를 완전히 밀착시킨 채 서로를 열렬히 끌어안은, 찰나의 순간을 담은 탱고의 한 장면이었어요.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낯선곳에서 춤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를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정리되었고, 아르헨티나에서 만큼은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지내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특별한 동기로 여행을 떠납니다. 여러분의 특별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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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 하면 탱고, 탱고 하면 부에노스아이레스. 이 도시에서 탱고 공연이 가장 많이 열리는 곳은 산 텔모(San Telmo) 지구와 라 보카(La Voca) 지구입니다.

탱고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약 100년 전이라 하니 한 장르로서는 짧은 역사지만, 지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관광산업 분야에서 탱고를 빼면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탱고는 그들의 삶에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럽 극빈층의 노동자들은 아르헨틴드림(Argentine dream)을 꿈꾸며 대서양을 건너 보카항으로 흘러 들어왔어요. 그러나 그들의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여전히 거칠고 고된 노동과 고향에 남겨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 커져갔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 춤이 탱고의 시초입니다. 그래서 초창기의 탱고는 남자들끼리 추었다고 해요.

그래서였을까요. 남미여행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즈음이 큰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여서 탱고를 추며 서로에게 의지하고 마음을 달랬을 그들에게 감정이입이 됐고,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물론 그 이면엔 각종 범죄와 비위생적인 환경에 따른 질병, 환락가 조성 같은 어두운 면이 존재하지만 초반에 언급했듯이 이 여행담은 1인 영화제작이란 관점에서 제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으니 과감히 편집하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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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1997)’를 보면 주인공은 세상을 등지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흘러들어와 호객꾼이 되고, 밤마다 손님을 유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산 텔모 지역이에요.

산 텔모 지역은 매주 일요일마다 탱고 공연은 물론 특이한 것들로 가득한 벼룩시장, 악사들의 연주회가 열리는 활기찬 곳이에요. 저는 이 영화를 세 번 봤어요. 처음 볼 때는 끝까지 보지 못했고, 두 번째 볼 때는 충격을 받았고, 세 번째 볼 때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라는 생각을 했어요. 동성애 코드여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제멋대로 식의 사랑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주성치의 풋풋했던 시절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왕자웨이 감독의 천재성을 볼 수 있다는 평론기사들이 대부분인 걸 보면, 대단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특히 두 사람이 주방에서 탱고를 추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 될 명장면이에요. 영화의 애틋하고 쓸쓸한 감성이나 아르헨티나의 옛 향수를 느끼고 싶은 분들은 평일에 가는 걸 추천합니다.

라 보카 지구의 거리. ⓒ Get About 트래블웹진 라 보카 지구의 거리. ⓒ Get About 트래블웹진

산 텔모 만큼이나 탱고로 유명한 라 보카 지구. 이곳에서 탱고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아까 언급했던 아르헨틴드림을 꿈꾸던 유럽 이민자들이 보카항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이곳에 터를 잡았고, 탱고가 시작되었고, 지금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소개됩니다. 저 역시 이 지역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하루 일정을 몽땅 라 보카 지구로만 채웠답니다.

라 보카 지구는 사실 카미니토 거리가 유명한 건데, 카미니토 거리는 노동자들이 남은 페인트를 가져와 자신의 집을 칠하면서 생긴 전통으로 알록달록한 건물들과 탱고로 가득 채워진 벽화가 상징인 곳이에요. 거리는 200m 남짓으로 길지 않습니다. 카미니토거리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여행할 필요가 있어요. 부담스러운 호객행위에 불쾌해지는 대신 골목 구석구석을 천천히 둘러보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하는 그런 것들이요. 요컨대 라 보카 속에 녹아드는 거죠.

탱고 음악에 대하 언급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음악가 두 명이 있습니다. 바로 까를로스 가르델과 아스트로 피아졸라입니다.

가르델은 "스텝이 엉키면 그게 탱고다"라는 주옥같은 대사를 남긴 영화 ‘여인의 향기(1993)’의 OST ‘Por Una Cabeza’의 작곡가에요. 이 노래를 배경으로 알 파치노와 가브리엘 앤워가 탱고를 추는 장면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차용될 정도로 멋진 장면입니다.

그리고 천재적인 탱고 음악가 피아졸라. 가르델의 제자였던 피아졸라는 반도네온 연주가로 가르델과는 달리 아르헨티나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를 떠나 클래식과 재즈에 전념하며 떠돌았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피아졸라는 탱고에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시킨 새로운 탱고(Nuevo Tango)라는 장르를 개척합니다. 피아졸라로 인해 탱고는 더 이상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 아닌 감상을 위한 음악이 된 것이죠. 가르델이 탱고를 대중화시킨 인물이라면 피아졸라는 탱고의 '격'을 높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엘 아테네오(El Ateneo) 서점. ⓒ Get About 트래블웹진 엘 아테네오(El Ateneo) 서점. ⓒ Get About 트래블웹진

일정이 여유롭다면 하루쯤은 엘 아테네오(El Ateneo) 서점엔 꼭 가보길 추천합니다. 엘 아테네오는 1919년에 지어진 오페라하우스를 개조해 서점으로 재탄생한 곳이에요. 과거 가르델과 피아졸라 역시 이 무대에 올라 연주했다고 해요.

엘 아테네오는 세계에서 가장 예쁜 서점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웅장하고 아름다워요. 게다가 피아졸라가 연주했던 무대에서 커피를 마시고 로얄석에 앉아 여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저는 여행을 가면 그 도시에서 가장 오래됐거나 유명한 서점을 꼭 찾아갑니다. 엘 아테네오는 가 볼 가치가 충분한 곳입니다.


문명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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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는 문명도시입니다. 이곳에는 문학이 있고 음악과 미술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를 들 수 있어요. 얼마 전 우리를 열광케했던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은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이란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엔 보르헤스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가 많다고들 하죠. 소설가 알랭 드 보통 역시 보르헤스를 그의 작품에 끊임없이 언급하고 있어요. 이처럼 보르헤스는 우리 대중과 지식인들의 사고 일부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에요. 또 삼류배우에서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 된 에바 페론을 들 수 있어요.

우리에겐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로 유명하죠. 에바페론의 일대기를 담은 애런 파커 감독의 ‘에비타’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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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명한 예술가들을 길게 언급한 이유는 아르헨티나는 문명도시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에요. 영화 ‘비긴어게인’에 나오는 댄(마크 러팔로)이 말합니다. 일상은 평범한 것들의 연속인데 그 평범한 일상에 음악을 더하면 그 순간이 특별해지고 의미 있어진다고. 많이 공감했던 대사였어요. 엘 아테네오의 무대에 올랐을 수많은 예술가들의 탁월한 재능과 그들이 남긴 음악으로 우리의 삶은 더없이 의미 있고, 생동감 넘치며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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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느꼈던 편린은 어찌하든 이곳은 '라틴 아메리카'라는 겁니다. 오랜 시간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다가 결국 독립한 아르헨티나. 남미의 파리라는 애칭이 있을 정도로 유럽스타일의 세련된 정취를 느낄 수 있지만, 디폴트 이후 경제적으로 휘청거리며 대통령 궁앞에선 시위가 끊이질 않는 나라죠.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잿빛의 벽돌과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된 초라한 이면을 볼 수 있어요. 대체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여행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어떤 장르의 영화가 될까요? 적어도 공포, 호러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에 꼭 당부하고 싶어요.

혼자 하는 여행이 대부분이었던 저에겐 "밤늦게 혼자 다니지 않기"라는 나름의 철칙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치안이 안 좋기로 악명 높은 곳이니 절대 밤늦게 혼자 다니지 않고, 안전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해요. 이곳에서 만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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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약간의 광기가 필요해요. 안 그러면 줄을 끊어버리고 자유로워질 엄두를 절대 못 낼 거예요."

조르바의 대사처럼 자유로운 마음을 갖고 용기를 내서 아르헨티나 여행을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마치면서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카페’를 추천합니다. 탱고카페는 제가 느꼈던 도시의 색채를 가장 비슷하게 담은 영화이고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모든 노래가 정말 좋습니다./글·사진-한유림

데일리안과 하나투어GetAbout(getabout.hanatour.com)의 제휴 글임을 밝힙니다.

하나투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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