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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하나 달랬다가 쫄딱 망한 한국 대기업 사연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3.06.15 08:55 수정 2014.02.11 11:13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프랑스 대기업과 합작 깨져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서 성공하려면 글로벌 매너부터

윤창중 성추문 하나가 그저 대한민국 망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못해도 수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날렸다. 동시에 수만 개의 일자리도 날아갔다. 명품 탄생도 십년 정도는 더 늦추었다. 허나 이 나라엔 어떻게 해서 그런 계산이 나오는지를 아는 이조차 없으니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으랴! 아무튼 미국으로 박 대통령 주재 조찬 모임에 달려간 경제인들 참 허탈했겠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기술개발과 열정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면에는 얼토당토않은 실수로 망신당하고, 그로 인해 놓쳐 버린 기회와 일자리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헌데 그것들이 무슨 기술상의 중차대한 문제가 아닌 사소한(?) 매너 때문이라면 얼마나 황당하고 원통하랴. 국민적 관심사인 청년실업 대책이 의외로 여기에 달려있다 하겠다.

독립적 인격체로 글로벌 무대에 당당하게 나서야

90년대 중반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의 모 유명 회사 직원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IT기술 수집에 혈안이 되어 헤매고 다니다가 매우 중요한 특허를 가진 나이 지긋한 미국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 노인은 자신이 가진 특허를 아시아 쪽 기업에 팔고 싶던 차에 서로 뜻이 맞아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자며 일요일 오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며칠 후 일요일 느긋한 오후,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문을 연 노인은 깜짝 놀랐다. 칼 정장을 하고 007가방을 든 동양계 장정 세 명이 초인종을 누른 것이다. 여기서부터 핀트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노인은 한 명만 오는 줄 알고 있었고, 또 굳이 일요일 오후에 집으로 초대한 건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헌데 정장에다 세 명씩이나!

아무튼 이왕에 왔으니 손님을 안으로 들였다. 헌데 그 집에는 두 노부부만 살고 있어서 거실에 의자가 두 개밖에 없었다. 하여 노마님께서 식당의 의자를 하나씩 거실로 끌고 나와 자리를 만들었다. 좁은 거실에 불편하게 앉아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자 마님이 남편을 주방으로 불러들였다.

주방에서 두 노인의 고성이 오가더니 잠시 후 할아버지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나와 이제까지의 일은 없던 걸로 하자며 손님들을 밖으로 내쫓았다. 세 직원들은 졸지에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나고 거래는 수포로 돌아갔다. 얼마 후 그 기술은 실리콘밸리를 서성거리던 한국의 어느 중소기업 사장에게로 넘어갔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저 따위 야만인들한테 당신의 분신 같은 기술을 넘기려 하느냐!”면서 호통을 친 것이다. 졸지에 세 명이 떼거리로 찾아온 것도 모자라, 할머니가 식당에서 무거운 의자들을 낑낑대며 거실로 끌고 나올 동안 한국의 대기업 엘리트 신사분들께서는 도와주기는커녕 내내 뻣뻣이 서 있었던 것이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됨임을 주지시켜주는 사건이었다.

소스 하나 때문에 깨어진 합작 사업

역시 90년대 중반, 한국의 모 대기업과 프랑스의 국민적 대기업 간 합작 사업이 거의 성사단계까지 진척되었다. 이미 구두로는 합의가 끝난 상태로 내일쯤 계약서에 사인할 일만 남겨 놓았다. 그때 프랑스 회장님이 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별일은 아니고 그저 저녁 몇 시에 들어오는지를 묻는 전화였다. 해서 그 회장이 오늘 중요한 합작사업 건으로 한국측 손님들과 외식을 할 작정이라고 하자, 안주인이 반색을 하며 그들을 집에서 대접하겠노라고 했다.

안주인이 생각하길 한국이라면 아직도 미개한 나라로 알고 있는데, 프랑스의 대기업과 합작할 정도라면 이는 대단한 일이다,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니 집으로 초대해서 축하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안주인이 수소문해 보니 한국인들은 스테이크를 좋아한다고 해서 소스와 메인 요리를 직접 만드는 등 디너를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난생 처음으로 한국 손님들을 맞았다.

드디어 저녁, 메인 요리 스테이크가 나오자 한국인 사장이 안주인에게 ‘A1’ 소스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함께 한 전무도, 부장도 줄줄이 “저도요!”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한국인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프랑스 기업측 직원의 전화가 왔다. “합작 계약은 모두 없었던 걸로 한다.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는 짤막한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나!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인 사업이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도무지 원인을 몰라 수소문해 보니 파탄의 결정적인 원인은 ‘A1’ 소스였던 것이다. 그만 일로 합작 건을 뒤집다니 한국인들로선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선진 문명권에선 어쩌면 당연한 처사였다고 하겠다.

패밀리레스토랑에서나 나오는 소스를 개인 집에 초대 받아가서 찾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매너다. 인터넷 화면 캡처. 패밀리레스토랑에서나 나오는 소스를 개인 집에 초대 받아가서 찾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매너다. 인터넷 화면 캡처.

상대국가의 문화와 품격을 알아야 비즈니스도 가능

유럽의 하층민이나 시중에서 파는 소스를 사다 쓰지, 중류층 이상이면 대개 소스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A1’ 소스 같은 것은 만일을 대비해 비상용으로 준비해 둘 뿐이다. 당연히 그 소스를 만드는 데 여간 공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고급 와인과 좋은 버섯, 치즈 등 양념으로 거의 두 시간 반 정도 적당한 불에서 정성들여 만든다.

한국 임직원들은 그날 이 소스 하나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우선, 소스에 대한 치하를 하였어야 했다. 먼저 여주인이 스테이크 위에 올려놓은 소스를 살짝 음미하고서 귀에 듣기 좋은 평가와 함께 조리 과정의 노고에 대해 리피트하며 치하하는 것이다. 그게 호스티스의 존엄성을 세워 주는 환대에 대한 감사 표현법이다. 자신이 만든 소스는 아예 맛도 안 보고 천박한 미국 양키즘의 대표격인 ‘A1’을 찾았으니 안주인을 완전 개무시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스테이크가 나오기 전에 자신들이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떠벌렸다. 그런 사람들이 소스에 대한 기본 예의도 못 갖췄다? 소스가 요리의 하이라이트임을 모르다니! 디너 후 두 부부는 대판 싸움을 벌였는데, 안주인이 “저런 야만인들과 합작할 것 같으면 나하고 이혼부터 하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소스에 담긴 사회학적 의미를 모른 데서 일어난 대형 사고였다. 상점에서 파는 대중용 소스에 그런 의미가 담겨 있을 리 없다. 선진 문명사회에선 정성들여 준비한 요리에 대한 감사 표시가 사회적 대화의 기본 기법임을 몰랐던 것이다. 요리에 대한 풍부한 지식 없이는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권위적 DNA를 못 버리는 일그러진 한국적 소영웅식 환대

10년 전 또 다른 한국 굴지의 모 회사가 처음으로 전 세계 VIP급 딜러 40여 명을 부부 동반으로 초청한 일이 있다. 해외시장을 좀 더 개척해 보자는 의도였다. 당시 모 부회장이 디너테이블 사이를 돌며 손님들과 악수하는 사진을 보자 “아이쿠, 저런!”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각 나라에서 초청받은 딜러들은 잔뜩 기대를 했을 것이다. 부부 동반 초청이었으니 당연히 멋진 리셉션과 댄스파티를 기대하고 준비해 왔을 것이다. 일부 손님들은 턱시도를 입었고,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나온 부인들도 보였다. 헌데 바로 테이블에 앉혀 놓고 만찬? 아무렴 그러려고 한국에까지 부부 동반으로 왔단 말인가?

부부 초청 환대라면 디너테이블 직행이 아니라 우아한 스탠딩 리셉션 파티 도입부가 필수였어야 했다. 밥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고 교류하기 위해 한국에까지 온 것이다. 테이블에 앉아서는 고작 옆사람과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다. 스탠딩 리셉션이라야 모든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명 인사들과 만나 본국에 돌아가 자랑할 인증샷도 찍고, 회사의 다른 임직원들과도 만나 친교를 나누려고 온 것이다.

특히 프랑스, 스페인 등 남유럽과 중국, 중남미의 구문화권에선 파티의 엔터테인먼트(단순한 유흥, 오락이 아닌 대접, 환대)를 매우 중시한다. 헌데 부부 초청의 의미도 모르고, 디너테이블과 리셉션 중 어느것이 딜러들을 초청한 목적에 맞는지조차 모른 채 그저 배고팠던 시절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물 안적 세계관으로 먼 나라의, 그것도 각 나라 비즈니스 주도층 그룹의 아주 잘사는 손님들을 부부 동반으로 불러다 앉혀 밥만 먹여 보내는 넌센스를 저지른 것이다. 1년 뒤 결과는? 당기순이익 전년의 20% 대로 추락, 본사인력 절반감축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회오리!

우물안 개구리의 우물 밖 나들이

예전에 한국과 베트남 간의 경제개발 노하우 전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KDI원장을 지냈던 모씨가 베트남 총리에게 자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본받아 전 국민이 경제개발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처럼 군대도 건설에 동참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가 배석했던 육군참모총장이 분기탱천하여 권총을 빼들고 겨누는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총리가 부랴부랴 사태를 진정시켰지만, 세상의 모든 군대가 한국처럼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줄로만 알았던 KDI원장님, 제대로 혼쭐 난 것이다. 베트남 군대는 세계 최고의 자부심을 가진 군대다. 프랑스와 중국, 미국을 물리친 군대로 국민들로부터 거의 신성시 여겨지고 있다. 그런 성스러운 군대에게 길 닦고, 벽돌 찍고, 도랑 치라고? 모욕도 그런 모욕이 다시없다 하겠다.

오래 전 모 그룹이 한중일 청년세대 간의 교류와 소통 분위기 조성을 위해 서해상에서 삼국 청년들의 선상 토론을 개최했다가 역사 문제로 과열되어 대형 패싸움으로 끝난 적이 있다. 민감한 문제를 다룰 적엔 더없이 냉정해져서 객관적인 토론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충실한 세 나라 청년들에겐 무리였던 게다.

이런 일이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간혹 일어나는데 아무튼 당시의 중국쪽 청년들은 지금쯤 중국 각계에서 국장 내지는 차관급 정도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들이 한국인들에 대해 가진 선입견이 어떨지는 물어 보나마나겠다. 한순간의 경솔한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인식하지 못해 좋은 기회를 망친 선례라 하겠다.

또 수년 전 한국의 모 통신회사가 스리랑카 모바일 사업의 교두보로 진출하기 위해 현지를 방문 협상하는 과정에서 함께 따라간 부품공급업체 젊은 직원의 말실수로 스리랑카 측과 시비가 붙는 바람에 사업이 깨지고 말았다. 애국심이나 패기를 내세운 젊은이들의 말싸움 역시 음주 사고처럼 비즈니스 세계에선 자살골이다.

한국인의 두뇌가 세계 최고?

노벨상 하나도 못 받은(평화상은 빼고) 한국인들은 뻑하면 자신들의 머리가 유대인 못지않게 우수하다고 자찬해댄다. 아무렴 그랬으니까 이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겠지. 허나 머리 좋다고 지혜롭다던가? 지식과 지혜가 동의어가 될 수 없다. 세계 10위의 무역대국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을 못 넘어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아직도 세계인들은 한국 상품이 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값이 싸니까 사주는 것뿐이다. 그렇지만 한국,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낮기 때문에 실질적인 제품값 이상은 지불하기 싫은 게다. 팁, 즉 마진을 얹어주는 데 인색하다는 말이다. 역으로 우리가 우리보다 못한 후진국 물건 사줄 때도 마찬가지겠다. 한국이 명품을 못 만드는 이유다.

명품은 기술로 만드는 게 아니라 품격으로 만드는 것이다. 최고 품질이라고 명품이 되는 것 아니다. 품격으로 대접받을 때 비로소 명품이 된다. 제품의 품격, 기업의 품격, 오너의 품격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명품이 탄생한다. 기술, 문화, 매너 중 어느 한 요소가 부족해도 결코 명품으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해서 한국이 제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열심히 일해도 소득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게다. 고품격 매너가 아니고는 결코 부가가치를 높일 수 없다. 기업마다 글로벌을 외쳐대지만, 정작 소통의 도구인 글로벌 매너를 제대로 갖춘 대기업 하나 없다. 고작 토익 점수가 소통의 조건인 줄로만 알고 영어만 되면 소통은 걱정 없단다. 아무렴! 그냥 소통 위에 ‘품격 있는 소통’이 있는 줄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다.

시중 서점에는 글로벌 매너를 내건 책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하나같이 서비스업 종사자나 출신자들이 만든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위한 서비스 매너다. ‘A1’ 소스와 같은 것이겠다. 그런 매너에 품격이 있을 리 없다. 따라서 결코 비즈니스 글로벌 매너를 대신하지 못한다.

그런 저품격 매너를 익혔다간 결코 글로벌 중상류층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돈만 벌면 된다는 청맹과니 저자들, 스타 강사들, CS아카데미 원장님들. 그들에게서 배운 한국의 내로라하는 최상류층 리더들조차 글로벌 사교계에 발도 못 디뎌보고 문전에서 쫓겨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완성된 인격체로서 갖춰야 할 정품격 매너는 따로 있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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