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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가정환경조사서´ 개선해야


입력 2006.03.09 09:12 수정

불필요한 항목이 매년 3월 학생과 학부모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행정은 제 기능을 할 수 없어

# 단상 하나 학기 초가 되면 어김없이 선생님이 손에 서류 한 뭉치를 들고 하나씩 나눠 주시면서 말씀하시곤 했다. “자, 앞으로 너희들이 어떤 아이인지 알기 위한 거니까 내일까지 꼭 작성해 오도록”

어디선가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불쑥 묻는다. “이거 안내면 어떻게 되요?”선생님은 가당찮다는 듯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1년동안 너희는 선생님 책임이야. 집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학교 생활은 어떤지 부모님께 연락드려야 하니까 필히 적어 와야 한다”

# 단상 둘 “안녕하십니까? ○○○학생 어머님 되십니까? ○○학생의 성적 향상에 도움을 드리고자 저희 XX학원에서 안내 전화 드렸습니다”

최근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로 개인 정보 유출 사례가 늘어나면서 명의 도용, 긱종 스팸메일 등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학생 개인의 성적이나 학습 부진과 관련하여 교육관련 업체의 안내 전화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업무상의 이유”로 학생 개인의 정보를 요구하는데 반해 관리에는 미진한 실정이며 개선의 움직임도 미약하다.

◇ 학생의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2005년 10월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의 시,도교육청 및 초중고교와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 ’개인정보통신 및 정보통신 보안 실태 점검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기관장의 관심도가 낮으며 개인정보의 개념과 유형, 보호 범위, 판단규범 등에 있어 명확한 인식이 미흡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공공기관에서 컴퓨터로 처리되는 모든 개인 정보가 보호대상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DB로 구축한 경우에 한정한 것이다.

이는 교육 당국에서 얼마나 안일하게 개인 정보를 인식하고 있는가를 반증한다.

서류로 보관하는 경우도 다르지 않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전해의 가정환경조사서는 전량 폐기처분된다고 하나, 문서 분쇄가 아닌 대충 찢어 버리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며,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학생의 사생활 침해도 우려된다.

더욱이 일부 학교에서는 취급 부주의나 편의 등의 이유로 학생의 성적, 전화번호 등이 기재된 명단이 학원이나 사업자에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어 심각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가정환경조사서는 학생을 위한 기초 공사

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소개서와 가정환경 조사서는 매우 중요한 척도로 작용할 수 있다.

인간의 인격은 성장과정에서 형성되고, 학급당 인원수가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담임 한 명이 감당하기에는 아직 학생 수는 많은 것이 현실이므로 짧은 시간 내에 학생들의 개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섣불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

학기 초 담임의 업무의 아이들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자기소개서와 가정환경조사서는 기본적인 사항을 숙지케하고 학업 성취도, 지도 방향을 가늠하고 설정하는 보조자료로 활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적인 자기소개서가 한 아이의 사고와 가치관, 이상을 담기는 힘들고 가정환경조사서의 불필요한 항목이 학생과 학부모 모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 아버지 뭐하시니?

비록 과거와는 달리 공개적으로 학생의 가족관계, 가정 형편을 묻는 절차가 줄었다고는 하나, 가정환경조사서의 항목은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부모님 동거 여부, 월수입, 주택소유여부, 직장과 학력 등 세부적인 사실을 적도록 되어 있기 때문.

학력와 직업을 적는 난을 없앤 학교도 있으나 부모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적을 것을 요구하는 학교가 다수이다. 형편이 어렵거나 이혼 가정의 학생들은 친구들의 놀림과 집단 따돌림, 선생님들의 가정 형편에 따른 차별 대우, 수군거림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입을 모은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토론 게시판에서 ‘그때 그사람’이란 ID의 네티즌은 “아버지가 공무원이라고 했더니 직급과 소속을 꼬치꼬치 캐묻더라”며 불만을 토하는가 하면 또다른 네티즌, kjock0521은 “손들고 대놓고 물어보는 선생님도 아직 있다”면서 “이혼가정의 아이들에게 ‘너는 엄마가 없느냐’며 화를 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 누구를 위한 가정환경조사서인가

한 가정의 소위 “형편”을 아는 것이 학생의 진학 지도에 큰 기여를 하진 않는다. 아버지의 직급과 부모의 학력으로 대변되는 계량화된 수치가 그 학생의 인격과 인생을 증명하는 표식은 아니며, 오히려 선입견을 부를 공산이 크다. 부모의 풍부한 학식이 학생의 발전 가능성과는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정환경조사서를 기초로 개인별 유대감을 높이고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한국적인 "정"이 흐르는 좋은 교육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학생과의 진지한 상담과 이해의 노력 없이 그저 의무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일부의 경우, 교사의 노골적인 촌지 요구의 자료로 악용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절차의 실효성은 행정적으로는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 안목에서 교육의 이념과 필요성을 증진시키는데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

이혼율과 독신 부모의 증가, 명퇴의 조기화 등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행정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교육은 더욱 그러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자 지향점이라 본다면 가정환경조사서가 학생에게 상처를 입힐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학생의 개인 정보는 학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세심하게 다루어야 한다. 인권이란 결국 이와 같은 기본적인 사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개인 정보 보호의 중요성 제고와 적법성, 안전성을 확보하여 권리 침해의 잠재요소를 줄이는 노력이 요구된다.

정보 유출을 막고 사생활 보호를 내세우며 NEIS를 적극 저지했던 교사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는 유연함과 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지, 과거의 은사가 오늘날에는 사라진 이유와 해결방안을 현재 네티즌 사이에서 일고 있는 가정환경조사서 폐지 움직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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