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시대’ 이진영이 역대 수입 2위?
입력 2013.0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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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억 벌어들인 김동주 부동의 1위
2번째 FA 이진영, 4년 뒤 추월할 듯
역대 누적 수입 상위 5명. 심정수(왼쪽부터)-박진만-양준혁-이진영-김동주
100억원. 고액 연봉을 자랑하는 프로야구 선수들도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엄청난 액수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삼미 장명부가 최초의 억대 연봉(1억 484만원, 1985년)을 받은 뒤 1993년 선동열이 국내 선수로는 최초로 1억원을 받아 본격적인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다.
그로부터 7년 뒤 현대 정민태는 2억원을 거치지 않은 채 단숨에 연봉 3억대에 진입했고, 2002년 요미우리에서 돌아온 한화 정민철이 사상 첫 4억원대를 돌파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었던 2003년은 연봉 눈치 싸움이 극에 달했던 해다.
먼저 현대는 일본에서 복귀한 정민태에게 사상 첫 5억원의 연봉을 안겼다. 그러자 LG는 팀 내 마무리였던 이상훈에게 1억원이나 더 얹은 6억원에 재계약을 완료했다. 하지만 정작 최고 연봉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라이언 킹’ 이승엽이었다. 2월까지 이어진 재계약 협상은 6억 3000만원에 완료됐고, 당시 연봉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9년 차 최고 연봉 기록으로 남아있다.
7억원대도 고작 1년 만에 깨지고 말았다. 최고 투수로 군림했던 정민태는 2004년 7억 4000만원을 받았고, 다시 1년 뒤 삼성으로 이적한 거포 심정수가 역대 FA 최고액 기록을 다시 쓰며 7억 5000만원의 연봉을 수령했다.
심정수의 연봉은 7년간 난공불락에 가까웠다. 김동주와 손민한, 양준혁 등 시대를 풍미한 대스타들도 7억원에 머문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일본에서 돌아온 이승엽이 11억원(옵션포함)을 받으며 연봉 10억 시대를 활짝 열더니, 김태균은 이보다 4억원이나 많은 15억원으로 역대 한 시즌 최다 연봉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한 시즌 연봉보다 중요한 것이 있으니 바로 누적액수다. 순수 국내에서 활동한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선수는 역대 FA 최고액의 심정수도 아니고, 최다 연봉자 김태균도 아니다.
5위 심정수(1994~2008, 76억 1900만원)
1994년 OB에 고졸 신인으로 데뷔한 심정수는 고작 3800만원의 계약금만 손에 쥐었다. 하지만 이 ‘소년 장사’는 데뷔 2년 차에 21홈런을 쏘아 올리며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2001년 현대로 트레이드된 뒤 이승엽과 벌인 홈런왕 경쟁은 프로야구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FA 직전 시즌, 이미 6억의 고액 연봉자였던 심정수는 FA 시장에 나오자 4년간 60억원이라는 초대형 잭팟을 터뜨렸고, 이는 지금껏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계약으로 남아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은퇴가 너무 빨랐다는 점이다. 잦은 무릎 부상 등에 시달렸던 심정수는 삼성과의 계약이 종료된 2008시즌 후 미련 없이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나이는 고작 서른셋에 불과했다. 만약 그가 롱런했다면 100억 돌파는 물론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선수가 됐을 것이 확실하다.
4위 박진만(1996~현역, 76억 9600만원)
소리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박진만은 어느덧 올해 18번째 시즌을 맞는 베테랑이다. 그리고 FA 계약도 두 번이나 이뤄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데뷔 후 첫 번째 FA 자격을 얻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연봉이 떨어진 적 없던 박진만은 2005시즌을 앞두고 4년간 총 39억원에 삼성으로 둥지를 틀었다. 사실 박진만의 방망이는 위력적이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한 수비는 롱런의 원천이 되기 충분했다.
FA 재자격을 얻은 2009년에는 KBO의 기이한(?) FA 계약 규정에 의해 축소 발표가 되었지만 연봉은 6억원으로 이전 시즌(4억 5000만원)보다 더 뛰어올랐다. 박진만은 삼성에서 방출된 뒤 고향팀 SK에 입단, 여전히 2억원 이상을 받는 고액 연봉자다.
3위 양준혁(1993~2010, 82억 5500만원)
굵고 긴 야구 인생을 살았던 양준혁은 프로야구의 각종 타격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신(神)’이다. 삼성 유니폼을 입기 위해 프로 입단을 1년 늦췄던 양준혁은 1993년 신인왕에 오르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양준혁은 데뷔 5년 차였던 1997년 억대 연봉을 밟았고, 2009년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한 시즌 최다 연봉을 받아보지 못했다. 이는 홈런왕에 오르지 못하면서도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한 그의 야구 인생과도 똑 닮아있다. 하지만 양준혁은 SK 박경완과 함께 FA 계약을 무려 3번이나 이룬 유이한 선수다.
첫 번째 FA 자격은 2002년이었다. 당시 오갈데 없었던 그였지만 친정팀 삼성이 손을 내밀어주며 4년간 23억 2000만원을 손에 쥐었다. 이후 2006년 2년간 13억원, 2008년 2년간 24억원 등 굵직한 계약을 이뤄낸 양준혁은 2010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역대 누적 수입 상위 10명(?와 +a는 세부사항 비공개)
2위 이진영(1999~현역, 약 87억원)
‘국민 우익수’ 이진영의 2위는 다소 의외일 수도 있으나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두 번째 FA 계약을 해냈고, 나이 역시 아직 33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진영은 첫 번째 FA 자격을 얻은 2009년, 원소속팀 SK로부터 4년간 35억원을 제의 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달랑’ 3억 6000만원 연봉에 LG 입단을 확정지었다. 박진만과 마찬가지로 다년 금지 조항이 만들어낸 촌극이었다. 당시 이진영의 계약 규모는 4년간 40억원대 규모로 추정된다.
LG에서의 지난 4년간 특출 난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사례도 아니었다. 이진영의 기량을 인정한 LG는 지난 시즌 후 4년간 34억원에 재계약을 완료했다. 계약기간이 끝나는 2017시즌, 이진영은 37살의 베테랑이 된다. 몸 관리만 잘 된다면 김동주, 홍성흔, 이호준처럼 다시 2~30억원 대의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다. 향후 100억 돌파가 가장 유력한 선수 중 하나다.
1위 김동주(1998~현역, 108억 4700만원)
아마추어 시절부터 줄곧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김동주가 영예의 1위다. 입단 당시 그가 받았던 4억 5000만원의 계약금은 2001년 SK 정상호와 함께 아직까지 깨지지 않는 역대 신인 야수 계약금이기도 하다.
김동주 역시 데뷔 후 15년간 단 한 차례도 연봉 삭감이 된 바 없다. 데뷔 후 4년 만에 곧장 억대 연봉을 돌파했고, 2007년 4억 2000만원을 받으며 두산의 최고 연봉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FA 자격을 얻은 2008년, 일본 진출이 좌절됐지만 소속팀 두산은 1년간 총 9억원에 김동주를 붙잡았다. 사실상 4년간 50억원의 대형계약이었다.
이후 2009년부터 3년간 프로야구 최고 연봉은 7억원을 받는 김동주의 몫이었다. 최근 기량이 눈에 띄게 떨어졌지만 두산은 다시 한 번 3년간 최대 32억원을 보장해주며 ‘두목곰’의 자존심을 살려줬다. 2014년까지 계약된 김동주는 올 시즌 후 꿈의 100억 고지를 돌파하게 된다.
